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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가을을 밟으며
2013-11-17 00:46:44최종 업데이트 : 2013-11-17 00:46:44 작성자 : 시민기자   최미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에는 집 뒤쪽에 있는 매봉산을 오른다.
어김없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커피한잔을 들고 걷기 시작한다. 매봉산 입구에 있는 예전 낚시터는 수련이 떠있는 작은 호수로 바뀌었고 주변은 산책로와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쁘게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그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잠시 정자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가을햇살에 투영되어 보석처럼 빛나던 낙엽이 스르르 내 발 밑에 떨어진다. 이미 수북이 쌓여 버린 낙엽들로 공원 주변은 꽃보다 아름다운 낙엽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떨어진다는 것, 비운다는 것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왜 예전엔 몰랐을까? 저토록 온몸을 열정을 다해 불사르고 그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스스로 비워낼 수 있는 마음이기에 이 가을을 느끼고 보는 이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저무는 가을을 밟으며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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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가을을 밟으며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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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가을을 밟으며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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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가을을 밟으며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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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가 되었을 때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늘이 눈부신지도, 바람이 상쾌했었는지도, 길옆에 작게 피어있는 들꽃이 신이 만든 꽃 중에 가장 완벽한 꽃인지도...사십 중반이 다 되어서야 서서히 깨닫게 되었지만 그 조차도 감사한다.

며칠 전 8년 가까이 연락이 끊겼던 예전 직장 동료이자 무척이나 친한 친구를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중국 선교를 위해 가족과 함께 과감히 중국으로 갔던 친구였다.
거짓 없고 늘 진실하고 자녀들 또한 믿음으로 키우는 신실한 크리스찬이다. 그 친구 남편 또한 아내의 말이라면 늘 존중해주고 서로를 위해주는 아주 부러워 할 만큼 모범적인 가정이었다.
그 친구와 커피 한잔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범적이고 아주 착한 아이들이 사춘기가 오면서 무척 힘들어 했고 학교조차 그만두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대안학교를 다닌다고 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그 친구는 지금이 참 감사하다고 한다. 

매일 울며 기도하는 가운데 깨달은 것은 자신의 잘못임을 알고 회개 했다고 한다.아이들이 절대 정해진 길 이외에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은 자신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결국 아이들로 하여금 숨조차 편히 쉬게 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고...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이미 예전에 다른 30년 지기 친구 또한 아이가 비행청소년이 되서 담배와 술을 일삼고 학교를 결석하고 해서 너무 힘들어 했다고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친구 또한 부부금실이 너무 좋았고 내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남편이나 아이들에게도 잘했다. 그런데 아이들 때문에 무척 힘들어 했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하다. 결혼생활 20년이 넘는 동안 남편의 사업이 여러 번 힘들게 되면서 부부는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동안 한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고 일을 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온전히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6살짜리 아이에게 2박3일 수련회를 보내고, 스스로 목욕하고 머리감는 법을 가르쳤고, 사과 깎는 법을 가르쳤고 울지 않는 법을 가르쳤다. 만약 나 또한 일을 하지 않고 그 친구들처럼 아이들에게 신경을 썼다면 나는 더했으리라 생각해본다. 나의 젊었을 적 다소 완벽주의 적인 성격과 욕심으로 내 의지대로 아이들의 방향을 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아이들은 더 반항적이고 더 힘든 사춘기를 보내지 않았을까한다. 삶이 힘들었고 부지런히 일해야 했기에, 아이들에게 이미 어려서부터 자유의지를 주었다. 스스로 결정하고 결정한 일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자유의지를. 아마도 모르는 낯선 곳에 데려다 놓아도 나의 아이들은 강하고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나는 정신결정론을 믿는다. 어떤 행동에도 원인이 있다는 가설이다. 우연이란 없다는 것이다. 내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되돌아보면  늘 원인은 있었고 그 원인 또한 결국 자신이 만든 것임을 알았다.
절망의 끝에도 서 보고, 많이 아파도 보면서 지금의 나로 있는 이 순간을 감사한다. 어차피 욕심을 부려 힘들어 해도 시간은 가고,  고민하고 아파해도 하루는 가고, 즐겁게 웃어도 하루는 간다.

순간순간 즐겁고 감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다보면  하루가 행복해지고 남은 내 삶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이제 조금 씩 조금 씩 알아가고 있다. 철이 늦게 들은 것 같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수북이 쌓인 낙엽위로  떨어지는 또 다른 낙엽을 보면서 저무는 가을을 위한 고운 춤사위를 보는 듯 했다. 물론 나는 그 향연장에 초대된 손님이었다. 오늘은  가을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게 행복하다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 지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이며, 행복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 받을 때 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이 근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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