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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가기 전 사진전 어때요?
'골목, 그 삶의 이야기' 사진전을 가보다
2013-11-12 09:49:00최종 업데이트 : 2013-11-12 09:49:00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가을이 가기 전 사진전 어때요?_1
골목, 그 삶의 이야기
요즘 말못할 고민이 생겼다. e수원뉴스에 기사를 쓰면서부터다.
어찌어찌 글은 쓰겠다. 그런데 사진이 문제다. 다른 시민기자가 쓴 기사에는 근사한 사진이 많다. 기사내용과 어울리는 사진들은 완벽해보였고 편집도 깔끔하다.
집에 디지털 카메라가 몇해전부터 있었지만 사용방법이 어려워 진작 포기했다. 계속 무성의한 사진만 올린다면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텐데 고민만 깊어간다.

'사진에 관심있으신분 시간 비워두세요'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언니의 문자는 반가웠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전문가가 추천하는 사진전이고 그간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고민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않을까 기대된다.

가을하늘에 겨울바람이 불던 11월 11일 오후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다. 화려하고 근사한 사진이 눈앞에 펼쳐지면 뭐라고 탄성이 터져나올까?
'역시 전문가는 달라~'
'어머~놀라워요'   좀 더 세련된 표현은 뭐가 있을까...처음이 아닌척 애써 침착해야지 그리고 사진을 배울 기회가 될수도있어.

가을이 가기 전 사진전 어때요?_2
어딘가에 외할머니가 서 계신다.
전시관앞에 도착하고 현관에 걸린 제목을 보고부터 이내 내 표정이 바뀐다.

골목, 그 삶의 이야기

핸드폰을 다시 확인해보니 사진전 안내장도 있고 대표사진도 있다. 지난주는 차분하게 확인할 시간여유가 없었다는 핑계를 대본다.

사진은 모두 흑백이었다. 1층은 빨래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40점 정도의 사진은 사라져가는 철거지역의 골목이 배경이다. 들여다 보지 않아도 이집에 누가 살고있는지 알려주는 빨래는 낯 뜨겁게 내걸려있다. 
고층아파트를 배경으로 쓰러져가는 판자집은 겨우 틀을 유지하고 있다. 집앞골목에는 호박과 나물이 말라가는 중이다. 
아픈곳이 많은 할아버지는 지팡이에 온몸을 의지하며 걷고, 분명 관절염으로 고생할 할머니는 가파른 계단앞에 숨고르기 중이다.

내가 먹지도않는 말린 호박나물이며 갖가지 나물을 외할머니는 해마다 머리에 이고오셨다. 점심도시락에서 나물반찬이 나온날은 하루종일 짜증이났다.
친구들은 유명메이커 신발을 신고 내앞에서 뽐내고 그날밤 이불 뒤집어 쓰고 울어도 엄마는 들은 척도 안하신다. 시장바닥에 널부러진 짝퉁옷가지를 위로삼아 사다줘도 소풍날 입고 나서지않았다. 사진속 골목 어디쯤인가 엄마는 몽둥이를 들고 나를 쫒아오신다.
속바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 아무도몰래 내손에 쥐어주시는 외할머니는 내 결혼식 2주앞에 하나님곁으로 가셨다. 

작가는 사진속에서 내 지난날을 끄집어내고 있다. 감추고싶은 과거인데.
보란 듯이 잘살고있는 나를 예전 철없이 골목길을 뛰어놀던 그모습으로 되돌려놓고 있다.
같이간 일행들은 저마다의 사연들속에 빠져드는지 일정 간격을 유지한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달라 뒷이야기는 끝이없다. 

작가는 친절하게 안내하고 우린 그동안의 여정을 가감없이 듣는다. 고가의 카메라가 부담스럽게 보일까봐 뒤로 감추고,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갖추는 작가의 모습이 전달되었다. 오랜기간동안 함께하면서 가족이 되어버린 이야기도 부담스럽지않다.

고층아파트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흙을 밟지않고 하루를 살고있는 우리딸들은 이 사진들을 보고 뭐라고할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맞춤이 기본인데 흑백사진이 웬말이냐 그러겠지. 60년대 시대극 드라마에서 본적있다고 아는척하다 이내 시큰둥하겠지.

가을이 가기 전 사진전 어때요?_3
각자 지난날의 모습을 찾는 기회를 갖다
그래서 지난날 추억이 사라지는 모습에 아련함을 느낄 내또래 아줌마들은 한번쯤 가볼 사진전이라고 결론지었다.
교복입고 빗물 피해 까치발로 걸어본 사람. 아랫목은 연탄불로 달궈지고 윗목은 얼음장인 방에서 만화책 읽고 친구와 노닥거린 사람. 출세한다며 엄마곗돈 들고 야반도주했다가 빈손들고 나타난 오빠를 둔 사람. 친구 메이커옷 빌려입고 남의집 높은 담벼락에서 내집마냥 사진찍어본 사람. 간밤에 응큼한 남자가 창문 두드려 언니에게 전달해달라는 쪽지받아본 사람.
재개발 딱지를 받고도 돈이 부족해 아파트에 입성하지못하고 떠밀려 쫒기는 신세를 한탄하는 엄마를 둔 사람.
어쨌든 내 삶이고 지나간 과거일뿐이니 더 많이 잊혀지고 사라지기전에 봐둘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현재의 삶일수있으니 겸손함은 기본이 되겠다.

기사작성하고 올릴 사진을 생각하니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살아있는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싶다는 약삭빠른 결론을 내고 나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나 역시 다큐작가로 거듭나지 않았나 사진전 관람의 의미를 부여해본다.
이상임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첫 사진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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