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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에서 본 가을의 절정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문경새재
2013-11-03 08:58:22최종 업데이트 : 2013-11-03 08:58:22 작성자 : 시민기자   공예지
가을의 절정을 보기 위해 경북 문경에 위치한 문경새재에 다녀왔다.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 옛 문헌에 초점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 또는 지릅재와 이우리재사이의 '새(사이)재' , 새로 된 고개의 '새재' 등의 뜻이라 한다.  

거꾸로 출발한 문경새재 산책로 코스
 

등산 목적이 아닌 가을 산책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산책로 코스' 로 갔다. 
물론, 산책로 코스도 최소 2시간 가량(6.5km) 걸리기 때문에 이 코스도 만만한 코스는 아니었다. 그래서 제1관문부터 가는 코스가 아닌 제3코스부터 가는 코스로 변경해서 갔다. 원래 제1관문부터 출발했다면 평지로 시작해서 점점 오르막길로 가서 정상에서 내리막길로 가는 길이었지만, 제3코스로 가는 코스로 출발했기에 초반부터 오르막길이 펼쳐진 것이다.

오르막길 중턱에 다다르자, 쉼터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들의 모습과 물푸레
나무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판이 보였다. 우리 일행도 잠시 숨을 돌렸다. 오르막길 거의 끝 지점에서는 문경관문이 눈에 보였다.

이 관문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차 고사갈이성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으로, 영남 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며 또한 군사적 요새지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초부터는 이곳 초참을 혹은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이라 짓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동문 혹은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지었다 한다.

주흘관은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으며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라고 한다. 
 정면 3칸(間)과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며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 길이 188m이고, 부속 성벽은 높이가 1~3m, 폭 2~4m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조곡관은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中城) 이라고도 한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關)은 영성(嶺城 : 3관문)과 초곡성(草谷城 : 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鳥東門) 또는 주서문(主西門)을 설치하였다.

조령관은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으며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 4.5m,
폭 3.2m, 길이 185m이고 성벽의 높이는2~3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며 대문의 높이는 3.9m, 폭 3.56m 두께 19㎝이다.

제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했을 때, 회사 단체나 학생들 수많은 무리들이 모였고, 우리
일행도 그 안에서 사진 몇 컷을 찍었다. 

문경새재에서 본 가을의 절정_1
오르막길 코스

문경새재에서 본 가을의 절정_2
제3관문 조령관 진입과정

조령관을 통과한 뒤, 제1관문까지 이어진 내리막길 코스가 펼쳐졌다. 
제2관문인 조곡관(조동문) 근처에는 쉼터와 약수터가 보였는데, 특히 제2관문의 약수터인 조곡약수로 갔을 때, 계곡물이 흐르는 돌 징검다리를 통과해야 했기에 물에 빠질까봐 조심조심 건너갔다.. 이 곳에서 띠를 두르고 백두대간을 홍보하는 단체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무리들도 보았다. 모두 산행으로 지친 갈증을 달래기 위해 시원한 약수를 마시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약수로 갈증을 해소한뒤 다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문경새재에서 본 가을의 절정_3
제2관문 조곡관과 조곡약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유적과 명소 

아름답게 물든 단풍들과 은행잎들 사이로 조곡폭포, 응암폭포가 흐르는 물레방아,
산불됴식 표석, 소원성취탑, 교귀정, 주막, 조령윈터 등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원성취탑은 옛날 문경새재를 지니는 길손들이 이 길을 지나면서 한 개의 돌이라도 쌓고 간
선비는 장원급제 하고, 몸이 마른 사람은 쾌차하고, 상인은 장사가 잘되며,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은 옥동자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기자도 소원성취탑을 지나며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세련된 가옥 디자인의 교귀정은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 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 하던 교인처로 1470년경(성종초)에 건립되어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896년 3월(건양 1년) 의병전쟁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폐허로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6월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경상감사 교인식 재현행사를 이곳에서 거행하고 있다. 건물의 양식은 팔작지붕에 이익공,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령원터는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해있으며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액과 원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새재내에만 동화원, 신혜원, 조령원 등 3곳의 원터가 전해지고 있다. 

전체면적은 1,980m2(600평)이며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돌담은 너비 2.8m-3.0m,
높이 2.9m 내외이고, 동쪽57.6m, 남쪽 38.9m, 북쪽 37.7m의 대칭변 길이가 모두 다른 남북으로 길게 쌓여진 장방형이다. 서쪽 돌담 중간에 문지가 남아 있는데 돌담을 성벽의 육축 모양으로 마무리하고 그 사이에 2매의 방형 석주를 문설주를 세웠다고 한다. 기자는 '조령원터' 라는 생소하게 들리는 이름에 시설이 궁금해 이곳 저곳 살피며 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가다보니 어느새 제1관문인 주흘관에 도착했다. 문경사과축제를 홍보하는 전동차
버스가 다니고, 어린이집에서 온 교사들과 원생들, 동아리 모임 등 여러 팀들이 보였다. 또, 사과 모양 디자인의 의자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식당에서도 사과 샐러드가 반찬으로 나와서 사과의 고장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기다란 산책길 뒤에 점심으로 먹은 삼겹살 석쇠구이는 그야말로 별미였다.
갈비를 항상 1순위로 꼽았지만 좋아하는 음식의 순위를 바꿀만큼, 특히 양념의 위력이 '신의 한수' 라 여겨질 정도였다. 

문경새재에서 본 가을의 절정_4
사과축제 현장과 삼겹살 석쇠구이
 
몸은 힘들었지만 각 코스를 돌며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느끼며 불붙는 단풍의 절정도 볼 수 있었고, 문경의 역사 등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된 잊을 수 없는 낭만적인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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