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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 보다 시집을 읽으라는 선배에게
2013-11-03 09:35:46최종 업데이트 : 2013-11-03 09:35:46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선배, 선배는 늘 저에게 '대중소설은 이제 작작 읽어!' 라고 말씀하셨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글쓰기에 더없이 좋은 것은 끊임없이 시집이나 인문학 서적을 사들이고 틈나는 대로 읽어, 내 것으로 만들어라'라고 충고하셨습니다. 과연 문학인으로 앞서간 선배의 안목이 맞을까요.

며칠 전 페이퍼 신문지상에서 이런 글귀를 만나 어찌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서두는 늘 선배가 하던 말 '소설책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글귀였어요. 저는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선배가 기고한 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글의 요지가 선배에게는 여전히 못마땅한 글이란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짧게 제 스타일대로 소개합니다.

소설책 보다 시집을 읽으라는 선배에게_1
소설책 보다 시집을 읽으라는 선배에게_1

'현실세계에서 발생한 사건만 진실이라고요! 고로,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허구를 통해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문학적 방식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은 결국 '소설적 허구는 진실을 담는 언어예술'이란 사실을 부정한다는 겁니다. 아니 이해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요, 선배. 이런 견해를 반박하는 글이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호에 실렸다고 합니다. '독서와 감성지능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였는데, 논픽션만을 읽는 사람보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감성지능 면에서 훨씬 높게 나왔다고 하네요. 특히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순수문학작품이 효과가 크다는 결과와 함께요. 결론은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야 타인과 공감하는 감성지능이 발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배, 물론 시와 대중소설 문학작품은 동일선상으로 봐도 무관하겠지요. 그러니 저의 의견은 소설읽기의 취미를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달라는 겁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선배는 유독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인기 소설가들 이를테면 김연수, 성석제, 김장환, 천명관, 김애란, 정이현, 구한나리, 정영문....그리고 요즘 제가 최고로 좋아하는 정유정과 위화 그리고 모옌까지 그들의 소설은 단숨에 읽어버리는 '읽기의 즐거움'을 절로 가르쳐 줍니다.(선배도 소설읽기 탐독에 빠지신다면 저의 처지를 이해하실 것임)

한번 잡으면 놓기 힘들다는 저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선배는 초지일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너만의 글쓰기가 월등히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詩를 가까이 하라고, 그리고 정독하라고'
그러면서 틈나는 대로 선배는 시인들과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셨죠. 시를 알거나 말거나, 저는 선배의 이끌림대로 그들과 사석에서 혹은 행사장에서의 공식적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자연스레 시낭송이나 시모임에서 함께 흥에 취하는 날이 부지기수였지요.

그런 날이 많아지자 저에게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신간 소설이 나오는 대로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더불어 한권 두 권 시집도 구입한 것이죠.(세상에나!)
물론 소설책처럼 완독한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저 뒤적이다 눈길에 머무는 시구들만 찾아 읽었을 뿐임을 분명이 밝혀둡니다.

시인들과 가까이하다보니 수어지교(水魚之交) 친구가 된 양 저녁 무렵이면 문인들이 즐겨 찾는 선술집으로 발길이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곳에서 굉장한 선물을 받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에 대해선 문외한이니 그날도 나는 침묵의 언어로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았죠. 그러면서 입은 연실 막걸리를 홀짝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시인이 내게로 다가와 책 한권을 건네는 겁니다. 알고 보니 수원지역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홍문숙 시인이었습니다.

소설책 보다 시집을 읽으라는 선배에게_2
소설책 보다 시집을 읽으라는 선배에게_2

그런데 세상에나, 선물은 그이상의 기쁨을 내게 주었습니다. 자신이 그간 출간한 시집 중에서 정수만을 모아 재편집한 책이었는데, 겉표지와 속지를 가장 한국적인 한지로 디자인 한 작품이었습니다. 한정판이었던 셈인데, 글씨와 그림의 고급스러움이 더해져 시인이 선택한 시어들이 향기가 되어 다가오더군요. 

선배, 시인들의 시어는 이처럼 평범한 것에서 건져올리는가 봅니다. 책을 받아드는 순간 가슴이 쿵쿵 울리며 하염없이 벅차오르던걸요. 그러면서 시어들이 막 입에서 터져 나올 것처럼 근질근질함을 느꼈습니다. 
이제부터 선배의 충고대로 '시는 언어 예술의 그 이상'이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시를 접해 보렵니다. 물론 소설읽기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요. 저의 취미를 잃지 않고 시 읽기도 더불어 묻어간다는 얘기랍니다. 

관찰자에서 소비자가 되어 홍문숙 시인이 준 선물 안에 숨겨둔 '담'이란 시를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길고 고즈넉해진다/ 지난여름의 무성했던 나팔꽃들이 제 몸을 줄이고/ 햇살들 그 반대편으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나팔꽃들의 행렬이 하행의 날짜를 붙들기 시작하고/ 그러나 그 휘파람들은 이제 더 멀리 떠날 것이다/ 가까이 다가왔던 퇴근들/ 누군가 잘못 들른 추억의 주소들이/ 낡은 담장 속에서 낙서처럼 지워질 것이다/ 그러나 뿌리가 남긴 날들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 시월의 담장은 환하다/ 그 안의 부주의한 건망증과/ 추억의 목록들이 빠져나가고/ 분주했던 일상도 다 내려놓아야 한다/ 이제 먼 길 함께 온 계절들은 창고 속에 저장될 것/ 이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치는 중이었고/ 다시 저 무수한 희망들이 저녁으로 몰려드는/ 사이/ 저것들, 내 삶의 왼쪽에서 거주했었다.

선배, 시에 눈뜨게 해줘서 고마워요. 아직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추신: 홍문숙 시인의 시가 궁금하다면?
수원지역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준기 시인과 초등학교 동창생인 홍문숙 시인이 손을 잡았다. 팔달문 옛 중앙극장 뒤편에 자리한 크로키(남창동 133-2· 031-248-3033)에서 '2인 시화전'으로. 
만추의 계절, 따뜻한 시어들을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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