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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의 가을, 하루가 길다
2013-10-28 12:53:24최종 업데이트 : 2013-10-28 12:53:24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우리나라 봄꽃의 하루 북상 속도는 20km이고, 가을 단풍은 매일 해발고도 100m씩 하산하며 대략 25km 속도란다. 
그런데 왔어도 진즉에 도착해 만산홍엽(滿山紅葉)의 풍광으로 빛나야할 수원의 주산 팔달산은 그러지 못하다. 단풍놀이 명산으로 치는 대한민국 곳곳의 산들이 모두 그러한지 가보지 못해 알 수 없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올해 가을단풍이 예전만 못하단다. 
기후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뭇 산의 울긋불긋한 형상을 만나기도 전에 겨울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주말 화성성곽을 돌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단풍으로 장식된 가을은 아니어도 화성은 여전히 빛나는 존재다. 
지긋지긋하던 늦더위가 물러나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는가 싶더니 날씨라는 놈이 심술을 부리는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추워졌다. 옷장에 숨겨져 있던 두꺼운 니트를 꺼냈다. 늦가을 짙은 회색 스웨터를 걸치고 수원화성 서쪽에서 남쪽까지 걸었다. 구간으로 따지면 짧지만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내성과 외성을 번갈아 돌았으니 거리는 꽤 된다. 
가을 바람과 억새의 속삭임과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기분 좋은 트레킹을 즐겼다. 여유롭게 즐기니 팔달산의 하루는 길기만 했다.

억새와 화성, 아름다운 동거다

수원화성의 가을, 하루가 길다_1
수원화성의 가을, 하루가 길다_1

수원화성의 서쪽 화서문 앞에 섰다. 보물 제403호로서 독특한 건축미를 뽐내며 연중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다. 그러나 요즘은 옹성전돌 원형훼손으로 인해 지난 8월부터 보수중이다. 다행이 성안의 홍예 아치문 쪽은 개방되어 있어 탐방객은 역사의 시간을 통과해 오고 나간다. 

"여보, 어디로 갈까요, 성벽 위로 올라가 볼까요. 아니면 성안 마을로 들어가서 구경한 후 시장으로 나서볼까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부한 수원이니 갈등이 일수밖에 없다. 남매를 데리고 화성나들이에 나선 젊은 부부의 대화를 가르는 트로트 노래가 들려온다. 요즘 유행하는 고어텍스 등산복으로 차려입은 노부부는 일명 뽕짝이라 불리는 옛 노랫가락에 발맞춰 성곽으로 향한다. 
참 멋진 풍경이다, 생각하며 성문 오른쪽으로 시야를 돌리니 지난 9월 생태교통축제때 설치한 바람개비 언덕이 고스란히 자리해 있다. 여전히 포토 존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화서공원 쪽으로 향한다. 길목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오간다. 가을이 되면 서북각루와 조화롭게 빛을 발하는 억새밭을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진정 가을에 빛나는 억새의 풍광으로 눈이 부신 명성산이 부럽지 않을 만큼 눈부신 자태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성곽과 억새라는 절묘한 동거에 눈이 시리다. 그 안에서 젊은 연인들은 이야기를 만들고, 중년들은 추억을 되새김질 한다. 

수원화성의 가을, 하루가 길다_2
수원화성의 가을, 하루가 길다_2

팔달산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길은 오래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길을 만들고 또 낸다. 모두가 사람들의 편리에 따라 낸 길이다. 그렇지만 팔달산의 길은 인위적이라기보다는 자연적인 정감이 느껴진다. 우리역사를 품고 있는 조상들의 길이 사방팔방 나 있을뿐더러 근자에 낸 맨발로 걷는 황톳길이 있다. 느릿느릿 소나무 사이를 통과하는 피톤치드 길도 있고, 성벽을 따라 걷는 성벽 길도 존재한다. 5.74km 길이의 수원화성에는 수많은 길이 뻗어있지만 어느 쪽으로 향하던 참으로 좋다.

만추(晩秋)의 계절, 팔달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 역시 인산인해다. 비록 황홀할 만큼 새빨간 단풍빛깔은 아니건만 늦가을의 정취라도 느껴보려 하는 것인지 수원시민들과 국내외 관광객들은 길을 따라 연신 오간다. 
팔달산에서 시내를 굽어보던 중 가을 풍경을 노래한 화성팔경 중 '한정품국(閒亭品菊)'의 경치도 보인다. 화성행궁 미로한정이다. 노란국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것이 한없이 예쁘다.

효원약수 길은 나뭇잎의 색깔보다 더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이 저 꼭대기까지 줄을 잇는다. 주변 초목과 환상적인 조화로움에 온몸이 희열로 넘쳐난다. 진짜로 아름다우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원화성을 수호하는, 화성의 신을 모신 전각 성신사 길은 삼문을 넘어서는 순간 계절과 이별한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에서 합장한 채 무언가를 염원하는 사람들과 마주한다. 경외심에 나 또한 두손을 모은채 예를 표한다.

수원화성의 가을, 하루가 길다_3
수원화성의 가을, 하루가 길다_3

절창 시 한수 지을 것 같은 곳 화양루!

팔달산에 오르면 당연히 화양루에 올라야 한다. 고향의 봄 시비를 보고 쭉 성곽을 오르다보면 왼쪽으로 용도라 불리는 서남각루 표지와 마주한다. 이곳은 화성 축성당시 쓰임새를 찾아볼 것도 없이 가보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길 역시 화성성곽길이지만 사람들이 잘 몰라 한적하다. 유유자적 흐느적흐느적 성벽사이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화양루라 쓰인 현판의 정자가 나온다. 반듯이 신발을 벗고 마루에 앉아봐야 한다. 그것도 오랫동안!

두 사람 함께 앉아 술잔을 기울일 때/ 산에는 꽃이 피어오르네./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나는 취해 잠을 청하노니/ 그대는 돌아가게나/ 내일 아침 술 생각이 떠오르거든/ 거문고 안고 다시 오게나.
시선(詩仙)이자 주선(酒仙)으로 유명한 이백의 그 유명한 절창 '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이다. 화양루에 오르면 옛 성인들의 시상을 떠올리며 여유를 부릴만하다. 장진주(將進酒)시도 그렇지만 술에 취해 살면서도 시를 쓸 때는 결코 정신을 놓지 않았다는 시성(詩聖)에게 경의를 표하며 갑자기 간절한 술 생각에 퍼뜩 자리를 뜬다. 

수원화성의 가을, 하루가 길다_4
수원화성의 가을, 하루가 길다_4

내려오는 길은 또 어떠랴.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올 때 못 본 그 꽃'처럼 내려올 때 만나는 팔달산의 수목은 가히 절경이다. 특히나 바람과 햇살이 시간과 더불어 흐르는 대로 굽어진 소나무 군락은 우직한 맛이 절절하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다. 근심걱정이 제로다. 

117만 대도심에 이처럼 울창한 자연이 있고, 수원화성이란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수원은 축복받은 도시다. 그러니 어찌 나 수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원을 사랑하는 시민들은 떠나가는 가을을, 그리고 주말을 즐기며 또다시 돌아오는 월요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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