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경북 달성, 성주로 간 역사문화탐방
남평문씨마을, 삼가헌, 한개마을, 세종왕자태실을 보다
2013-10-29 11:17:23최종 업데이트 : 2013-10-29 11:17:23 작성자 : 시민기자   홍승화

얼마전 달성과 성주로 역사문화탐방 가는 날. 수학여행을 손꼽아 기다리던 학창시절의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늦잠이라도 자 버스를 놓칠까 걱정하면서. 

바람막이 점퍼에 장갑까지 챙겨들고 수원문화원으로 향한다. 10월 중턱을 넘은 억세진 아침 공기가 뺨을 스쳐, 옷 깃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마음은 10대인데, 어깨가 움츠려드는 신체 나이는 무시할 수 없다. 봄에는 벚꽃 잎 뒹굴던 도청 앞 도로. 지금은 구겨진 나뭇잎들이 가을바람에 바스락 바스락 장단을 맞추고 있다. 

역사문화탐방의 인기를 가늠하듯 45인승 대형버스가 꽉 찬다. 간식으로 나온 따끈한 콩시루 떡은 씹을 틈도 없이 넘어가 부실한 아침밥을 채워준다. 마이크를 잡은 문화원 국장님이 인사말을 한다. "수원 문화원이 차림표를 만들면, 주방장인 염상균 선생님이 맛나게 요리를 하고, 김경란 팀장님이 서빙을 하는 것이다." 문화원은 맛, 서비스, 가격을 모두 갖추고 있어, 벌써 소문난 대박집이다. 번호표를 받아 줄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이니. 

염상균 선생님은 탐방지에 대한 간단한 사전 교육을 한다. 달성, 성주의 지리적 위치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단순한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큰 나무 기둥에 인물, 사건의 가지들이 무수하게 만들어지다 꽃도 피고, 열매도 맺힌다. 제대로 듣지 않으면 앙상한 나무가 될 테니,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남평문씨마을에는 문익점 선생 후손이 일제 강점기에 지은 전통 한옥 12채가 있다. 그 중 3채는 공공건물이다. 후손인 수봉선생은 8천500책을 수집하였는데 권수로 따지만 2만권이 넘는다. 전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책을 보러 마을로 찾아왔고, 그들을 통해 마을의 자녀교육이 이루어졌다. 전통 한옥과 비교할 때 규모가 크고, 담장이 높다는 외형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안채가 실용적인 역할을 하면서 기능이 확대되고, 사랑채가 약화되었다. 타지에 나가 살던 장남도 은퇴를 하면 마을로 돌아와 집을 지켜야 한다. 이곳은 고려시대 인흥사의 절터자리로, 일연스님이 8년 동안 머물렀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일연스님으로 넘어가더니 삼국유사로, 몽고침입, 팔만대장경으로 이어진다.

"삼가헌은 박팽년 후손의 고택이다. 박팽년은 왕위에 오른 세조를 '나으리'라 칭하고, 조정에 올리는 글에는 '신하(臣下)'가 아닌 '거하(巨下)'로 적었다. 결국 사육신 사건으로 박팽년 자신뿐만 아니라 아버지, 형제, 자식, 손자까지 처형을 당한다. 관비로 쫓겨난 둘째 며느리가 임신 중이었는데 아들을 낳았다. 다행히 노비가 낳은 딸과 바꿔치기를 해 목숨을 보존한다. 박팽년은 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을 남긴 것이다. 후손이 제사를 지내오던 중, 사육신이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나머지 다섯 분의 제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사육신의 제사를 함께 지냈다니 충정심을 끝까지 지킨 박팽년의 후손답다. 

" 한개마을은 성산이씨 집성촌이다. 마을 이름의 '개'는 포구를 일컫는 것이다. 사도세자 호위무관인 이석문의 집이 있는데, 사도세자를 사모하여 북비문을 만들어 놓고 매일 밤 절을 올렸다." 

"세종대왕 왕자태실은 18명의 왕자와 단종의 태실이 있는 곳이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이다. 태실을 좋은 곳에 모셔야 왕자나 공주에게 복이 깃들 것이라 생각해 심려를 기울였다." 피 한 방울도 허투루 다루지 않았다며, 태가 태실에 모셔질 때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설명한다. 세 번의 출산 경험이 있어 장면 장면이 생생하게 연상된다. 정조대왕의 태실은 화성박물관 앞에 있다고 하는데, 무심코 흘려봤는지 본 기억이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역사문화탐방에서는 '명언(明言)'을 넘어 '직언(直言)'같다. 

경북 달성, 성주로 간 역사문화탐방_1
경북 달성, 성주로 간 역사문화탐방_1
 
화서 휴게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내쳐 달려 남평문씨마을에 진입한다. 첫 번째 기와집 대문에 붙여진 '입춘대길 건양다경' 글귀. 높은 흙담 너머 빠끔히 고개를 내민 기와지붕. 부지런한 마당쇠라도 있는지 정결하게 손질된 흙길. 사극의 세트장에 놓인 것 같은데 낯설음과 이면의 친근함이 공존한다. 하늘 높이 뻗어있는 소나무의 향기에 취해보고, 아름다운 고택들 정원도 훔쳐본다. 지붕 위에 솟은 감나무 열매가 작은 태양전구가 되어 고즈넉한 마을을 밝혀준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광거당(廣居堂), 인수문고(仁壽文庫), 수백당(守白堂)을 둘러본다.
" 광거당을 지은 수봉선생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서적을 사들였고, 많은 지식인들과 교류 하였다. 임시정부에 13년 동안 독립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옆 누(樓)의 현판은 전서체로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이다." 문중 도서관인 인수문고는 좁은 통로 양쪽으로 책이 빽빽하게 꽂혀있다. 너무 오래 머물면 의심받는다는 농에 서둘러 나온다. 도산서원 두 배의 책을 수집할 수 있었던 수봉선생의 뜻이 100년이 지나 우리 발길을 이끌었으리라. 마을 사랑채 역할을 한 수백당에 들어가니 마루 밑 문인석에 눈길이 간다. 빛을 보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하는 죄인 같다. 일제 강점기의 선비들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즐거운 점심식사 시간이다. 씹을수록 쫄깃한 수수부꾸미와 밀가루 입힌 고추버무리, 꽁치조림을 반찬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배가 부르니 오지랖이 넓어진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렇게 푸짐한 반찬을 내놓아 밑지는 장사하는 건 아닐까.

경북 달성, 성주로 간 역사문화탐방_2
경북 달성, 성주로 간 역사문화탐방_2
 
삼가헌에 도착하니 가시 돋친 탱자나무가 노란 열매를 감춘 채 위풍당당 서있다. 선한 얼굴의 박도덕 선생이 우리를 대청마루로 초대한다. 삼가헌이 지어진 과정, 당호의 유래, 사랑채 방들의 기능, 사육신 박팽년 이야기 등을 입담 좋게 풀어놓는다. 아메리카노 커피까지 대접 받으니 송구스럽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대청마루에 앉으니 사랑채에 하룻밤 묵고 싶다. 잊고 사는 내 마음의 울림소리를 듣지 않을까. 

사랑채 좌측에 있는 '하엽정(荷葉亭)'으로 들어간다. 연못 가득 고개 숙인 앙상한 연잎들이 뒤엉켜 있다. 우아한 연꽃의 흔적이 아쉬운데, 열매 달린 무화과를 발견하니 보상받은 기분이다. 박도덕 선생은 자칭 딸 바보라며 가족이야기를 잠깐 들려주는데, 사모님 이름이'평화'란다. '도덕'과 '평화'라니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누군가 연근, 연밥은 어쩌는지 물으니 그냥 놔두면 거름이 된단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주인이 고택을 닮아가는 것일까. 고택이 주인을 닮아가는 것일까.

경북 달성, 성주로 간 역사문화탐방_3
경북 달성, 성주로 간 역사문화탐방_3
 
성주의 한개마을에 도착하니 새 단장을 하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초가이엉을 얹은 아담한 집을 시작으로 토석담을 따라 걷는다. 조금씩 모습을 달리한 고택들이 이 정갈하게 앉아있다. 수백 년 지나온 세월에도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굳건히 버티고 있는 고택들. 자식에서 손자로 대대로 물려가며 살아야 하니 그 집을 허투루 짓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이 집들처럼 대물림 되어 수 백 년 지켜질 집을 짓고 싶다. 이 가당찮은 욕심에 헛웃음이 나온다. 한주종택에 들어가 한수헌 누각을 둘러본다. 마당의 허리 휜 소나무가 고택의 지나온 시간을 대변해준다. 

이 마을에는 첨경재, 북비고택, 교리댁, 하회댁, 월곡댁 등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 있는데 모두 둘러보지 못내 아쉽다. 잘 정비된 한개마을을 방문하게 될 내년 역사문화탐방을 기약해본다. 

경북 달성, 성주로 간 역사문화탐방_4
경북 달성, 성주로 간 역사문화탐방_4

마지막으로 세종대왕 왕자태실에 도착한다. 오솔길 따라 잠깐 오르니, 탁 트인 넓은 공간에 19개의 태실이 놓여있다. 세조의 태실에는 큰 가봉비까지 세워져 유독 호사스럽다. 왕자의 이름과 세워진 연도를 짚어가며 걷는데 윗부분이 없고 네모난 모양의 대석만 남은 태실이 있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반대한 안평대군을 비롯한 몇몇 왕자의 태실이다. 피부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세조. 죄의 대가를 받은 것일까. 

태봉을 뒤에 두고 떠날 때쯤 하늘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간다. 1910년에 지어진 남평문씨마을을 시작으로, 1400년대 조성된 세종왕자 태실까지. 500년 세월을 하루에 둘러보고, 다시 21세기의 오늘로 돌아가고 있다. 

사람은 평상시 먹던 음식에 익숙해져 그 음식만 찾는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가보았던 곳, 남이 가는 곳만 찾아다닌다. 역사문화탐방은 처음 맛보는 음식을 권한다. 전통의 맛을 잊지 말라고도 권한다. 그래서 역사문화탐방은 앞으로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2014년, 2015년, 2016년…….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