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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베란다에서 단풍구경해요
2013-11-01 00:07:39최종 업데이트 : 2013-11-01 00:07:39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세상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는듯한 요즘이다. 눈을 들어 보는 곳 마다 빨강, 노랑, 초록의 빛깔들이 투명한 가을 햇살과 어우러져 비늘처럼 반짝인다. 지인들마다 가을산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경쟁하듯 선물하고 나 또한 가을 단풍을 찾아 먼곳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봄이면 만개한 벚꽃을 찾아 몇백리길도 마다 않고 찾아가며 가을이면 단풍에 홀려 또한 몇백미터 높은 산도 오르길 주저하지 않으니, 참으로 대단한 열정들이다. 

그런데 이름난 산의 단풍도 아름답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도 예쁜 단풍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오며 가며 내 눈에 쏙 들어오는 야트막한 앞산에도 울긋 불긋 축제가 벌어지고 있으며, 길거리에 심어놓은 가로수들도 저마다 자신의 화려한 옷 색깔을 자랑하느라 바쁘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화단에도 예쁜 단풍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서 가을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가을의 모습이 아름다운 곳은 참 많다.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한 곳이 있는데 바로 우리집 주방쪽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화단이다. 몇해전 부터인가, 지하주차장 출입구 바로 옆 화단에 조그맣고 가냘픈 나무 한 그루가 나의 눈에 띄었다. 이곳에 입주한지가 벌써 십여년인데 어느해부터 나의 눈에 띄기 시작한걸 보면 아마 나중에 심겨진 나무인 것 같다. 

우린 베란다에서 단풍구경해요_1
우린 베란다에서 단풍구경해요_1
 
가냘픈 한 그루의 나무가 나의 눈에 띄인 그해 가을, 나는 그 나무 때문에 가을내내 행복했다. 가을이 되자 그 조그마한 나무에서 붉은 잎들의 축제가 벌어진 것이다. 선명하고 진한 붉은색의 단풍이 정말 예뻐서 수시로 창문을 열고 내려다 보며 행복한 가을을 보냈다. 
유명한 산의 이름난 단풍도 아니었으며 단풍나무들이 풍성하게 밀집되어 있는곳도 아니고, 크고 우람한 나무도 아닌 그 작은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들이 자신의 마지막 모습으로 이처럼 큰 선물을 주니 내가 나무에게 해줄수 있는 일이란 자주 바라봐주는 것 뿐이라 수시로 내려다 보면서 가을을 즐겼다. 

그런데 2~3년전 부터인가, 그 나무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단풍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가을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수시로 내려다보는데 풍성하던 나뭇잎이 단풍도 들기전에 다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가냘프고 조그맣던 나무는 한해 한해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키도 껑충 자라 꽤 많은 나뭇잎들을 분명 매달고 있었음에도 하루가 다르게 허전해져가는 가지들의 앙상함이 오히려 처량해 보일 지경이다. 잔뜩 기대감으로 들떠있던 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다음해를 기약하곤 했었는데... 

그런데 작년 가을 어느날, 앙상한 나뭇가지가 될 수밖에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때도 여전히 풍성하게 매달린 빨간 단풍을 기대하며 매일 매일 내려다보던 중이다. 경비아저씨가 나무를 열심히 흔들더니만 그것도 부족했는지 손잡이에 길다란 막대기를 연결한 빗자루로 나뭇잎을 털어내고 있는 것이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하는 고운 단풍잎을 어찌 그리 무지막지하게 떨어뜨릴수 있을까. 마음같아서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질않아 일단 마음을 진정하고 천천히 생각해본다. 

이유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쓸어도 쓸어도 떨어지는 낙엽 때문에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이런 저런 일로 바쁘고 힘드신
분들이 낙엽 때문에 일이 몇배는 많아졌으리라. 그렇게 생각을 다스려도 속상하고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도 역시 가을이 시작되면서부터 날마다 내려다보며 단풍이 들기를 기다린다. 아직은 초록이 더 머물러 있으려나 쉽사리 나뭇잎의 색깔이 변하지를 않는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붉은색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다르게 고운 물이 들기 시작한다. 

우린 베란다에서 단풍구경해요_2
우린 베란다에서 단풍구경해요_2
 
진한 커피한잔 들고 베란다 창문에 붙어서서 마냥 내려다보며 단풍 속으로 빠져들어 보기도 한다. 짙어져가는 붉은 빛깔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날은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어느날은 말할수 없이 쓸쓸해지기도 하며 깊어가는 가을을 느껴본다. 
그런데 올해도 어느날 눈떠보니 하루사이에 나뭇잎들이 확 줄어있다. 그날이후로는 날마다 날마다 나무가 허전해진다. 역시 경비아저씨의 부지런함 탓이다. 

요즘은 낙엽을 쓸지 않고 일부러 쌓이게해서 사람들에게 푹신한 가을의 맛을 즐기도록 하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나의 나무도 그럴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 
고운 단풍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던 나무는 마지막 한 잎까지 낙엽으로 다 내려보낸 후에는 앙상한 가지에 하얀눈을 소복하게 이고, 나에게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물할 것이다. 작고 가냘픈 나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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