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
KBS 1TV 3부작 ‘의궤 8일간의 축제’ 1~2부를 보고
2013-10-18 00:56:27최종 업데이트 : 2013-10-18 00:56:27 작성자 : 시민기자 박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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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방영되었던 KBS 1TV의 3부작 '의궤 8일간의 축제' 1부 '사중지공(私中之公), 축제의 두 얼굴'은 정조대왕 능행차가 수원화성행궁까지 행차과정을 다루었다. 방송화면 촬영 2부 '불취무귀(不醉無歸)' "취하지 않은 자 돌아갈 수 없다" 셋째 날, 이틀간의 행차 끝에 도착한 수원화성,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수원에서 첫 공식 일정은 향교(공자를 모신 사당)에 들려 제사를 지낸 뒤, 정조가 직접 참여한 과거시험을 치르며 조용히 보냈다. 넷째 날,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를 찾았다. 사도세자의 묘소에 처음 온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큰 소리로 오열했다. 6년 전 수원으로 묘소를 옮긴 뒤 매년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를 방문할 때마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처럼 피울음을 토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한 그날 오후3시, 정조는 수원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서장대'에 올랐다. 정조의 모습은 황금갑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정조가 큰소리로 주조(낮 군사훈련)명령을 내리자, 화성의 4대문인 팔달문, 장안문, 창룡문, 화서문이 차례로 닫히고, 우레와 같은 함성을 앞세운 3,700여명의 장용영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훈련을 시작했다. 장용영은 정조의 최정예 친위부대이다. 30명으로 시작한 군사가 1만8천명의 거느린 최정예부대였다. 장용영과 함께 수원화성을 축성한 배경과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수원화성 건설은 정적들에 대한 목숨을 건 정조의 승부수였다. 거중기 등 과학적인 장비를 이용해 4천명의 인력을 절약했으며, 공사기간도 2년 반으로 줄였다. 또한 수원화성을 축성하는 모든 과정을 그림과 자료로 남겼다. 군사훈련은 야간까지 이어졌다. 밤10시, 정조가 "횃불을 올려라"고 명하자, 엄청난 화력과 전문적이고 혹독한 훈련을 받은 장용영군사들의 일사 분란한 움직임이 수원화성을 뒤덮었다. 신기전 등 신무기들의 화력에 반대파 신하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다섯째 날, 8일간 능행차의 하이라이트인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잔치(진찬연)'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위해 "천세 천세 천천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진찬연이란 조선시대 왕이나 왕비가 육순, 칠순, 팔순 등을 맞았을 때 거행했던 행사로서 술과 음식을 준비하고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치사와 궁중무용 등을 올리는 의례이다. 혜경궁홍씨 회갑 진찬연은 정조19년인 을묘년(1795) 윤 2월13일에 수원화성 봉수당에서 행해져 정조의 지극했던 효성심을 극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당대의 찬란한 궁중복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 진찬연에 혜경궁의 친인척인 내외빈을 비롯해 화성부의 백성들이 초대되었다. 어머니를 위해 70가지 음식이 차려졌고, 헌선도, 연화대, 선유락, 검무 등 14가지의 궁중무용이 화려하게 잔치를 수놓았다. 정조는 술잔을 높이 들고, 이렇게 말했다. "불취무귀, 취하지 않는 자 돌아갈 수 없다." 이 말 한마디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정조의 바람을 엿볼 수 있었다. 여섯째 날, 화성에서의 마지막 날, 정조는 신풍루에 올랐다. 화성의 홀아비, 고아, 과부,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 쌀과 소금을 나누어주었다. 이어 오후에 노인들을 낙람헌에 초대해 양로연을 열었다. 정조는 양로연에 참석하여 노인들과 동일한 음식을 먹었으며, 이들에게 비단과 지팡이를 선물했다. 저녁, 득중정에서 활쏘기를 했다. 25발 중 24발을 명중시켰다. 이어 화려한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았다. 신기전 발사 장면 일곱째 날, 정조는 내려온 길을 되밟아 환궁길에 올랐다. 화성을 빠져나갈 즈음 연신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했다. 여덟째 날, 환궁길에 백성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고충을 들어주었다. 늦은 오후 창덕궁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8일간의 능행차 축제 일정이 끝이 났다. '의궤 8일간의 축제'는 조선 역사상 가장 화려한 축제였다. 정조가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8일간의 축제 이면에는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세력인 노론을 겨냥한 정치적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아버지의 죽음, 암살위협 속에서 30년을 기다렸던 정조의 눈물과 복수가 숨겨진 비장한 축제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조는 반목과 아픔보다 영원히 행복으로 기록되길 원했다. 마지막 회 제3부 '의궤 다이어리, 오늘은 기쁜 날'은 24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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