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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가는 길
2013-10-18 13:15:09최종 업데이트 : 2013-10-18 13:15:09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부석사 가는 길_1
부석사 가는 길_1

산사(山寺)의 가을을 만나보지 않았다면 가을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했던가. 난 지금 가을을 만나러 부석사 가는 길이다. 더불어 불자가 아닌 보통사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 그러나 가을에 핀다는 국화는 지천이었지만 아직 만추의 계절은 아니었다. 섣부른 조바심을 질책하는 부처님의 소리가 천왕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그러나 분명 하늘은 가을색이다. 높디높은 하늘에 청청한 빛이 무량한 것을 보니.

가람초입 은행나무 길로 들어선다. 사람 들기 시작 전부터 수북이 쌓인 노란 빛깔 은행잎들이 융단을 깔고 맞아주기를 바랐지만 자연은 '아직'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대신 비스무리 초록 잎 옷을 입은 사천왕사 호위무사들처럼 장관을 이루며 사부대중을 맞아들인다. 

4~5년 전 초등학생 둘째 놈을 업고 이 길을 걸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이토록 예뻤을까? 어쩐지 가물가물하다. 혹자들은 무슨 일이던지 '첫 자'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늘 '현재'가 가장 으뜸이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현재 이 길이 참말로 예쁘고 늠름하다면서 위세를 떨며 걷는다.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부석사는 조사당 벽화, 무량수전 소조불 좌상, 석등, 당간지주 등 보물과 국보가 즐비하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책자에 나와 있는 유물과 건축미 따위는 따지지 않으련다. 있는 그대로, 나의 심미안만큼만 느끼고 보고 가련다.

가람은 소소했던 이전과는 달리 전각이며 요사체들이 끊임없이 신축 중이다. 대석단과 석축단은 세월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빈 공간마다 예쁘게 가꾸느라 소란스럽다. 어쩐지 남아있는 옛것들이 불편해할 일이라 생각하니 씁쓸하다.

부석사 가는 길_2
부석사 가는 길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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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가는 길_3
부석사 가는 길_3

그럼에도 나를 미치게 하는 광경이 소백산 너머로 펼쳐진다. 조금만 더 지체한다면 산그늘 속에서 만종소리도 들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온몸이 짜릿해진다. 그러나 요령부득, 이내 아쉬움이 몰려오고 1박을 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꿈을 꿔본다. '가을' 그리고 '길'이란 시어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무한다.

김우영 시인은 '부석사 가는 길'에서 '헛제삿밥으로 산 자들 제사 지내고 돌아오기 위해 이 길을 간다'고 했고, '길 위에서'란 시에서는 전생과 후생의 경계를 나누기 보다는 '순명'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그래 이것이 경계가 아니었으면/ 참 좋겠네/ 더 이상 전생과 후생/ 오거나 가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네/ 나 이 길 위에 서 있을 때/ 구름 편안히 모였다 흩어지고/ 바람은 선선히 몸을 투과해/ 허허 웃으며 걸을 수 있다면/ 기교가 다하고/ 생각의 뿌리가 모두 드러나/ 내게 순명(順命)하며/ 저 위대한 도랑물이나 풀잎처럼/ 낮아져/ 그저 흐르거나 흔들릴 수 있다면/ 아, 참 좋겠네-김우영 시인 '길위에서' 전문

올봄 신간 '탐하다'란 시집을 낸 정수자 시조시인도 '묵묵 가을-세한도 시편'에서 '억새꽃도 대책 없이 난을 치는 가을/ 분분한 마음 섶만 베다 지친 해거름.....(이하 생략)'이라고 했다. 시의 초장 행간에 가을풍경이 쫙 펼쳐진다. 분분한 가을이 산사 어귀마다 푹푹 배어있다.

가을과 길을 통해 빛나는 시간이 여기, 부석사에서 발한다. 헉헉 숨을 내쉬며 한발 두발 오르던 계단이 어느덧 108개, 마지막 발을 떼니 전생과 이생의 경계가 모호한 2층 누각 극락세계 안양루다. 그 강을 건너니 비로소 미륵세상이라는 무량수전 앞마당이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합장하며 머리를 숙인다. 

부석사 가는 길_4
부석사 가는 길_4

부석사 주불전 아미타여래를 친견하고 나온다. 예의를 차리고 배흘림기둥에 귀를 대 본다. 어느새 해넘이가 시작된다. 저 넘어 소백산 능선이 처음에는 선명하더니 이내 굽이굽이 투명한 파도의 물결이 되어 흘러간다. 이토록 황홀함이라니, 산사 미학의 절정이다. 왜 산사의 가을을 보지 않았다면 가을을 보았다 말하지 말라, 하는지 그제야 무릎을 딱, 친다.

무량수전, 안양루, 2층 누각 범종각, 석등....모두가 자연 속에서 빛나는 청정도량 합일체다. 깨치지 않은 보통사람들도 굳이 배우지 않고서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오늘도 내일도 맑고 향기롭게 살기를 기원하며 매무새를 바로 잡는다. 
부석사 길 위에서 만추의 계절은 아니었어도 충분히 황홀한 가을을 보았다. 절창에 가까운 가을 상념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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