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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철조여래좌상이 자리한 만기사
고려 때 창건한 만기사. 철불만 남아
2013-10-16 11:02:45최종 업데이트 : 2013-10-16 11:02:45 작성자 : 시민기자   하주성
보물 철조여래좌상이 자리한 만기사_1
평택 만기사 대웅전과 오층석탑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엊그제만 해도 덥다고 난리를 쳤는데 벌써 찬바람이 인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로 인해 날씨가 더 쌀쌀해질 것으로 보인다. 15일 오후,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가 않아 그동안 찾아보고 싶었던 평택 만기사를 찾았다. 이곳은 보물 제567호로 지정이 된 '만기사 철조여래좌상'이 있기 때문이다. 

만기사(萬奇寺)는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동천리 548번지에 소재한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는 만기사 경내에는, 고려시대의 흔적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벌써 만기사를 다녀온지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만기사는 많은 불사를 이뤄 가람 안에 전각이 늘어났다. 전형적인 산지가람 형태인 만기사. 주차장에서 걸어올라 천왕문을 지난다. 

고려 태조 때 창건했다는 만기사

만기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낮은 산비탈을 깎아 3단으로 전각을 배치한 만기사는, 고려 태조 25년인 942년에 남대사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서 1km 정도 떨어진 동천리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만기사가 고려 시대에 창건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시대를 입증할 만한 것은 보물로 지정이 된 철불인 철조여래좌상 뿐이다.

보물 철조여래좌상이 자리한 만기사_2
원통전에 모셔진 천수천안십일면 관음보살
 
만기사에 대한 기록은 조선조 헌종 9년인 1843년에 기록한 '진위현읍지' 불우조에 기록이 보인다. 이 책에는 만기사에 대해서 '만기사는 무봉산 아래에 있다. 절 북쪽에는 돌구멍에서 맑은 물이 샘솟는데, 맛이 달고 차다. 옛날 세조가 이 절 앞에 수레를 멈추고 우물에 가 물을 마시고 하교하기를 '이 우물은 감천이나 감로천이라 하여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우물을 임금이 마셨다고 해서 어정이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어, 만기사가 조선조에도 법맥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만기사에 기록은 기내사원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에도 나타나고 있다. 기내사원지는 진위현읍지의 기록을 예를 들어 만기사를 세조 때 중건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 밖에 보국사 창건문 등에도 만기사를 언급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만기사는 큰 사찰은 아니었으나, 조선조까지도 사세가 계속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1972년부터 사격을 갖추기 시작해

현재 만기사의 당우로는 보물 철조여래좌상을 모신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무봉서원, 명부전, 종각, 감로당, 심우당, 원통전, 요사 등이 있다. 1972년부터 불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만기사는, 주지인 김혜송 스님이 대웅전과 요사, 삼성각을 지어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보물 철조여래좌상이 자리한 만기사_3
팔각으로 조성한 삼성각은 팔정도를 상징한다고
 
1974년에는 서요사를 신축하였으나, 1979년 동요가사 화재로 소실되는 아픔도 있었다. 1980년에는 동요사를 확장하여 중건하였고, 1981년에는 연못을 조성하였다. 1994년에는 기존의 대웅전을 대신하여 대웅전을 신축하였다. 만기사의 문화재로는 고려시대의 철불인 철조여래좌상이 유일하다.

길상좌를 하고 있는 단아한 철조여래좌상

높이가 1.43m인 만기사 철조여래좌상은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불상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철불인 철조여래좌상은 현재는 금으로 도금하였다. 불상을 받치는 대좌는 없고 불신만 남아 있는 상태이며, 오른팔과 양 손은 새로 만들어 끼운 것이다. 원래의 것은 절 안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있다. 갸름한 얼굴의 세부표현은 분명하고 목에는 3줄의 삼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옷은 우견편단으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어깨에만 걸치고 있으며, 어깨는 거의 수평을 이루면서 넓은 편이다. 

보물 철조여래좌상이 자리한 만기사_4
고려시대의 철불인 보물 제567호 만기사 찰조여래좌상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 자세라는 길상좌를 하고 앉았는데, 어깨 부분에서는 크게 접어 계단식의 주름을 만들었다. 팔과 다리 부분에도 주름을 표현하였는데 매우 형식적이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이 자세는 깨달음을 얻을 때 자세인 항마촉지인이다. 

상체가 약간 긴 편이나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은 편이어서 안정감이 있다. 당당한 형태이지만 도식적인 옷주름의 표현과 단정해진 얼굴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물인 철조여래좌상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평택 만기사. 잠시 멈추었던 비가 또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날이 쌀쌀해질 텐데, 답사의 속도를 높여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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