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산에서 느낀 가을
2013-10-23 09:16:49최종 업데이트 : 2013-10-23 09:16:49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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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명산에는 단풍이 물들고 각처에서 마지막 가는 가을행사가 지천에 널렸으니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모든 곳을 두루 살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인데 다행스러운 것은 멀리 가지 않고도 가을의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인근에 있다는 것이 그저 선택받은 자의 여유라고 해야겠다. 팔달산에서 느낀 가을_2 팔달산에서 느낀 가을_4 높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 가을은 벌써 깊은 곳까지 와 있었다. 거리에 떨어진 잎사귀들이 뒹굴고 그 떨어진 잎사귀가 발목을 잡는다. 나뭇잎이 단풍드는 날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고 했던 도종환님의 시가 떠오른다. 제 삶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리기고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고도 했다. 욕심 없는 삶에는 발끝 밑에도 가지 못하지만 잠시 무소유의 방하착(放下着)을 생각한다. 화성을 지켜주는 신을 모신 성신사를 옆으로 하고 구불거리는 길을 통하여 올라간다. 분명 제 이름이 있을 텐데 비슷한 모양 때문에 흔하게 들국화라고 불리는 보라의 꽃들이 작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반듯하게 모여 있다. 야생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한 향기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전해진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숲길은 한낮인데도 선선한 바람으로 땀이 나지 않아 상쾌하다. 한낮의 태양은 여름 못지않게 뜨겁지만 소나무 그늘까지 비추기는 역부족인가보다. 잠시 가을볕을 잊고 있는 시간을 질투라도 하듯 소나무 숲길을 벗어나자 눈부시게 강렬한 태양이 쏟아 붓는다.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여유롭게 성곽을 따라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느새 팔달산의 정상인 서장대까지 올라왔다. 가을 산책의 즐거움에 빠져 푸른 하늘과 맞닿은 곳을 바라보니 시가지는 물론이고 두 날개가 펄럭이는 듯 웅장한 월드컵 경기장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팔달산에서 느낀 가을_1 서장대에는 일본인으로 보이는 관광객 세 명이 마루에 앉아 쉬고 있다. 그런데 저 멀리서부터 왁자지껄하면서 오던 여성 중년의 무리들이 우루루 몰려 마루에 올라가 삽시간에 음식을 떡 벌어지게 한상을 차려낸다. 도시락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음식을 펼쳐 놓고 그들만의 오찬이 소란스럽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흘깃흘깃 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심한 사람들에 지나가던 학생이 얘기한다. "이 곳에서 음식물을 먹으면 안되는데요. 음식물을 먹으려면 저기 아래 벤치에서 먹으면 좋을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정중한 학생의 권유가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니, 여기서 먹으면 왜 안되는데? 우리 신발도 다 벗고 올라왔는데. 신발 벗고 올라가면 된다고 저렇게 써 있는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 부끄럽기는 고사하고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로 말한다. "이곳 서장대는 ~" 학생이 뭐라 설명하려고 하는 목소리는 "그때 술 먹은 사람이 불낸곳 아니야?~"하는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부끄러움의 최상급이다. 수시로 오르내리면서도 오늘 같은 일을 처음 보았다.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유서 깊은 유적지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임 있는 우리들이 닦고 아끼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 기본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이 있는 수원에 산다는 것,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성곽의 사계를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선택받은 자에 대한 오늘의 이 행복은 조금도 아낌없이 모두 불태워 버리고 내일의 행복은 또 다른 그릇으로 채워보리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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