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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먹을 고춧가루 샀어요
2013-09-27 13:48:26최종 업데이트 : 2013-09-27 13:48:26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어제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부재중이라 경비실에 택배를 맡겼다는 내용이다. 그리고는 문자 온 것을 깜박하고 하루가 지나버렸다. 오늘 또 한통의 문자가 왔다. 보내드린 고춧가루는 마음에 드셨는지요, 입금 부탁 드립니다 라는 내용이다. 

고춧가루? 입금? 고춧가루는 아직 받지도 않았는데 무슨 입금이야 라고 중얼거리다보니 어제 왔다는 택배가 그제서야 생각난다. 작년에 회사동료의 친정언니가 재배해서 판매하는 고춧가루를 사먹었는데, 가격도 품질도 모두 만족스러워서 여름에 미리 주문을 했던 것이다.
 올해는 고추농사가 풍년이라 고춧가루 값도 많이 내렸다는 주위사람들의 말에 내년에 사용할 고춧가루까지 조금 더 사서 냉동실에 보관을 할까 고민하고 있던참 이었는데 연락도 없이 주문한 고춧가루가 도착해버린 것이다. 주소지 확인도 없었는데 작년에 거래했던 주소지를 지금껏 잘 보관하고 계셨던가보다. 

경비실에 들러서 택배박스를 찾아들고 오는데 꽤 묵직하다. 곱게 빻은 붉은 빛깔의 고춧가루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본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것 같다. 이 고운 고춧가루로 우리 가족들이 내년 일년 동안 먹을 김장을 담글것이고, 또 추운 겨울 보글보글 동태탕을 끓일때도 쓰일것이며, 싱싱한 무 한 개 채 썰어서 고춧가루와 함께 버무리면 맛있는 무생채가 될 것이다. 매콤한 낙지볶음에 신선한 겉절이까지, 고춧가루가 필요한 음식들은 무궁무진하다. 

일년먹을 고춧가루 샀어요_1
택배로 배달되어온 고춧가루
 
이렇게 없어서는 안될 고춧가루를 이맘때 직접 산지에서 구입해 보관해두고 일년 동안 사용을 한다. 그런데 작년에는 김장 양념을 만들 때 고춧가루가 확 쏟아져 나오면서, 남겨서 일년 동안 사용해야하는 고춧가루의 양이 적어졌다. 덕분에 김장김치는 다른해보다 훨씬 맛있게 먹었지만, 다른 음식을 할때는 아끼면서 조금씩만 넣게 되는 것이다. 
그랬던터라 올해는 조금 넉넉하게 주문을 했지만, 여름에 말했던 처음 주문량보다 더 구입을 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고춧가루가 와버린 것이다. 가격도 주변에서 말하는 시세하고는 차이가 꽤 나게 비싸다. 이런 경우엔 참 난감하다. 

물론 제품의 품질에 따라 가격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고 말 그대로 시세라는게 있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책정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생각하고 있던 금액하고 차이가 상당히 나는지라 기분이 영 개운치가 않다. 그렇다고 고춧가루 가격이 왜 비싼지 동료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서로 솔직해지겠다고 말을 꺼냈다가는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하지만 속으로는 감정의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는 단지 가격만을 놓고 왜 비쌀까 생각하지만 생산자 입장에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테니 말이다. 
아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사다보면 이런 난처한 문제들이 생길때가 가끔 있다. 모르는 사람과의 거래에서는 궁금한건 물어보고 이런저런 문제점에 대해서도 말하기가 쉽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조심스러워서 차마 물어볼수 없을때가 많다. 

그래서 때로는 아예 모르는 곳에서 편하게 물건을 구입 할때도 있다. 어쨌든 이 고운 빛깔의 고춧가루로 일년동안 우리 식구들에게 맛있는 김장과 입맛 돋구는 음식들을 해먹일 수 있으니 보고만 있어도 뿌듯하다. 시어머님이 살아 계실때는 귀한줄 모르고 지냈던 양념류들이 지금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줄 모르겠다. 시어머님이 땡볕에 땀 흘려가면서 애쓰고 지으신 농작물을 주셔도 철없는 며느리는 당연한 줄로만 알았고, 오히려 남아 있는데 또 주실때는 짐스럽기도 했다. 

항상 넉넉하게 주셔서 거실 한켠에 자루째 쌓아두고 먹던 쌀가마니도 내 눈에는 지저분해 보이기만 했으며 고춧가루, 참깨, 들깨 등도 할줄 아는 요리가 많지 않은 내 눈에는 그저 냉동실에 자리만 차지하는 불청객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나서도 2~3년은 먹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시어머님께서 며느리에게 참 넉넉하게 퍼주셨던 것이다. 

내가 직접 사먹게 되면서부터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류가 얼마나 비싼지도 알게 되었으며 어머님이 주실때는 아낌없이 들이붓던 양념들을 조금씩 조금씩 아끼면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감사하게도 시골에 계시는 시작은 어머님께서 마른고추를 보내주셨다. 지난번에 벌초하러 갔던 남편에게 고추며, 참깨, 들깻잎등을 싸보내신 것이다. 

일년먹을 고춧가루 샀어요_2
시작은어머님께서 보내주신 건고추
 
아무리 철없던 며느리였어도 벌써 결혼한지 20년이 넘어가니 이제는 나도 농사짓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논농사도 힘들지만 특히 밭농사는 손길이 얼마만큼 갔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땀과 손길로 거두어들인 결실임을 알기에 조카 며느리까지 챙겨주시는 마음씀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고 생각했던 고춧가루도 그만큼 품질이 좋은 것 때문이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겠다. 아직은 조금 이른 듯 하지만 하나 하나 겨울 채비를 하는 볕 좋은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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