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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다시 찾은, 나의 여고시절
2013-09-17 12:41:55최종 업데이트 : 2013-09-17 12:41:55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여고 동창생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소식들을 듣는다. 맑은날은 맑아서 소식을 전하고, 흐린날은 흐린대로 쓸쓸함을 나누고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며 감상에 젖어 진한 커피향과 함께 수다를 나눈다. 
바로 여고동창모임 밴드에서다. 비슷한 부류끼리 밴드를 만들어 여러 가지 소식을 공유하고 나누는, 밴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별 관심 없이 지냈는데, 얼마전 여고 친구에게서 밴드 모임 초청을 받고 잠깐의 망설임 끝에 가입했다. 

그동안 나는, 꽃처럼 피어나던 십대 후반을 함께 웃고 떠들며 쉴새 없이 재잘거리던 그때 그 시절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살아왔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했는데 중학교 때와는 다른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새로운 환경이 낯설기는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 였던 듯하다. 

1학년 1학기 동안은 중학교시절을 그리워하며 친구들과, 이제는 나의 학교가 된 고등학교의 모든 것들을 트집 잡으며 아름다운 봄날을 보내버렸다. 
순천 시내에 위치한 여자고등학교로서, 그곳에서는 나름 선망의 대상이던 덕분에 인근의 군 단위지역뿐 아니라 멀리 여수시와 여천군에서까지 모여든 각양각색의 친구들과, 중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수업방식에, 낯선 선생님들까지 더해져 시골중학교 출신의 나는 정서적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지나간 중학시절을 그리워 하며 보낸 것이다. 

30년만에 다시 찾은, 나의 여고시절_1
나의 여고 졸업 앨범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우리학교라는 정겨움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지나간 그리움대신 아름다운 여고시절을 즐기고 있었다. 
말똥 굴러 가는것만 봐도 배꼽이 빠진다는 십대의 소녀시절에 만난 친구들과는 시간마다 수다와 웃음꽃이 피어나고, 낙엽 떨어지는 것만 봐도 눈물 흐른다는 풋풋한 우리들의 감성은 옆구리에 시집 한 권 씩을 끼고 세상을 다 안다는 얼굴과 함께 밤새 외운 한 줄의 시로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뽐내곤 했다. 

점심시간이면, 연못이 있던 정원 벤취에 앉아 영화 같은 한 장면을 연출하며 여유로움을 즐기고, 항상 그 시간이면 카메라를 메고 정원에 나타나시는 학교 지정 사진관 아저씨께 삼삼오오 어울려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즐겁고 싱그러운 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선배들이 그랬듯, 친구들이 그러하듯 나도 평탄하게 대학에 진학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순서라 특별히 대학진학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내게 변화가 일어난건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때 부터다. 갑작스런 친정 아버지의 실직과 또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나의 앞날에는 서서히 희망이 사라지고 암담한 먹구름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안의 변화와 함께 ,나 또한 친구들이 열심히 야간자습을 하는 시간 나와 사정이 비슷한 친구와 함께 몰래 빠져나와서 극장을 드나들기 시작하고 시내를 배회하는 아이로 변해간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덕분에, 하는 척 이라도 했던 나의 성적은 그 지역에서 부끄럽지 않은 대학에 들어갈 정도의 점수가 나왔지만, 그때 당시 2만원 정도 하던 원수접수비 조차 없다며 아예 나의 미련을 꺾어버린 부모님 때문에 내 손에 들려져 있던 대학 입학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채 나의 꿈도, 희망도, 입학원서와 함께 모두 사라져 버렸다. 

조언을 해줄 언니 오빠도 없고, 보고 듣는 정보망도 약했던 열 몇살의 나는 그때부터 서서히 친구들에 대한 열등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학 1학년이된 친구들은 미팅한 이야기며 카니발에 축제에 쉴틈도 없이 재잘거리지만 이미 공통의 화제가 사라진 나는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면서 마음속에 상처만 하나씩 쌓여가기 시작했다. 쌓여가는 상처와 함께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지고 내 자신을 감추다보니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은 여고때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을 끊고 지내게 되었다. 
가끔은 보고 싶은 친구들도 있지만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정보망 탓에 몇 다리 건너 소식을 아는것도 어려운일이 되어버렸다. 

그랬는데 얼마전에 한 친구에게서 여고동창모임 초대장이 날아왔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말이다. 잠깐 망설이다 가입을 했는데 모두들 낯선 이름에 낯선 얼굴들이다. 800명 가까운 동창생들중 문과 이과로 나뉘다보니 오며 가며 얼굴이라도 익었던 친구들보다 모르는 친구들이 훨씬 많은 탓이다. 

30년만에 다시 찾은, 나의 여고시절_3
세월과 함께 변해버린 친구들에게 여고때 사지을 올려서 서로를 확인하는 친구들
 
며칠 동안 올라오는 소식들을 보니 다른 친구들도 어느 중학교 출신이냐, 몇반 이었고 담임선생님은 누구셨느냐 등으로 서로의 존재에 대해 확인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밴드 모임도 초대로 만들어지다보니 처음 시작한 친구가 문과반 이었던 모양으로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문과반이다. 
이과반이었던 내게는 대부분 낯선 이름들이고, 더구나 문과반, 이과반이 다른 건물을 사용해서 더욱 낯선 얼굴뿐이다. 

친구들은 낯설지만 그래도 그곳에 올라오는 사진과 소식 속에는 나의 여고시절 아름다운 추억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우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들중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지금까지 정정하게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순천에서 열리고 있는 정원박람회 자원봉사자로 활동하시는 선생님의 사진은 어쩌면 삼십년전의 그 모습 그대로인지 눈물이 날 만큼 반갑다. 

주민센터에서 영어강사로 봉사하시는 선생님도 계시고, 조금 젊은 편이었던 선생님들은 이제 각 학교의 교장, 교감선생님으로 정년을 하셨거나 앞두고 있으신 분들도 계신다. 
워낙 많은 인원의 동창들중,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몇 명 건너 한명씩이라 옛날의 스승과 제자가 같은 학교에서 함께 근무 했던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며칠째 구경꾼으로 지내다가 정말로 오랜만에 졸업앨범을 꺼내봤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삶의 한 페이지가 정신없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선생님들의 사진은 그 시절 우리가 붙여줬던 별명까지 함께 기억나고, 세일러복속의 친구들의 모습도 까르르거리던 웃음소리와 함께 삼십년의 세월을 건너뛴다. 

30년만에 다시 찾은, 나의 여고시절_2
30년만에 다시 찾은, 나의 여고시절_2
 
새로 입학해서 친구를 만들어가듯, 아름다운 한 시절을 공유했던 친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요즘이다. 전혀 몰랐던 친구들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 두 가지의 공통점이 찾아지면서 친구라는 유대감이 생긴다. 
같은 시기에 같은 것을 보며 지낸 덕분에 감성들도 비슷해서 아침 눈뜨자 마자부터 밴드의 알림음이 바쁘다. 

날씨따라 올라오는 글이나 노래도 어쩜 그리도 내 마음과 같을까 싶고, 웃음코드도 비슷하니 하루에도 몇 번씩 박장대소 하며 웃게 되고, 자식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에도 댓글이 수 십개씩 달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같은 추억을 공유한다는건 참으로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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