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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고향, 떠나고 떠나온 사람들
풍요로운 추석 사색도 풍요롭게
2013-09-18 14:47:02최종 업데이트 : 2013-09-18 14:47:02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흔들리는 사람
                                                     김형효 
길가에 꽃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아름다움을 본다.

봄날의 향기를 잃고
거리를 떠도는 가을처럼 쓸쓸한 사람들
언제나 푸른 봄날을 그리워하지만
바람에 흔들리지 못하는
낙엽처럼 아픈 봄은 없으리.

잃어버린 봄엔 흔들리지 못하지.
흔들리고 흔들릴 줄 알아야
푸른 봄날도 길고 길어져서
생기 넘친 날을 살 수 있지. 

흔들리고 싶다.
사람과 사람을 만나서
사람 속에서 흔들리고 싶다.
사람으로 흔들리고 싶다.
그렇게 비로소 나를 살게 하며. 

추석을 맞아 시민기자의 졸시를 바친다. 사색이 넘치는 가을날, 고향을 생각하고 떠나고 떠나온 사람들에게 한번쯤 마음의 흔들림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사람은 살면서 끝없이 떠난다. 살기 위해 삶의 방편을 따라 새로운 길을 찾는 자신의 발길을 믿으며 가고 또 간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가게 될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집념을 다하여 간다. 물론 하루하루를 살면서 자신의 집념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체감하지는 못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바다. 그날그날의 상황에 맞춰 살아간다고 믿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추석, 고향, 떠나고 떠나온 사람들_1
우크라이나의 고려인들과 송편을 만들어 먹던 지난 2009년 그들은 처음으로 추석 송편을 먹게 되었다.

추석, 고향, 떠나고 떠나온 사람들_2
네팔인들이 쌀로 만든 튀김을 명절날 해먹는다. 올초 한국에서 있었던 구릉족 새해맞이 행사에 준비된 로띠라는 음식이다. 타국에서는 더욱 자신들의 전통음식을 먹는 맛이 더하다.

시민기자는 16살의 어린 날 고향마을 잔등을 넘었다. 물론 오래된 전통가요 속 '어머님의 손을 놓고'와 매우 흡사한 장면이다. 그래서 우리네 트로트를 들으면 곧 감정이입이 된다. 나훈아가 부른 '고향역'은 그런 점에서 대표적인 나의 애창곡이다. 어린 날 고향 그리움이 찾아들면 흥얼거리던 노래다. 오히려 50이 다된 지금보다 더 그랬던 것이다. 

떠나온 고향은 세월이 흐르는 만큼 변한다. 산천의 변화는 더디지만 인심도 변하고 사는 모양새도 변하기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변하고 동무가 변하고 가족들의 삶의 양태가 변하여 사회도 변한 것인데 우리는 항상 세상 탓만 한다. 그 세상을 내가 변화시켜온 주체임에도 말이다. 이제라도 변함없는 것이 그립거든 옛날처럼 마음을 움직여볼 일이라 생각해본다. 
빠른 속도는 순정한 말도 담백한 충고도 다 삼켜버리기 일쑤라서 더딘 말이 무의미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사람다우려면 더디 가는 것의 소중함을 끝끝내 붙잡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 시민기자의 생각이다.     

중국의 대문호인 노신(魯迅)은 그가 쓴 '고향(故鄕)'이라는 단편 소설을 통해 어린 날 떠난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성인이 되어 상심한 마음을 담아 자신의 이야기를 진술하듯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나는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이천여 리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20여 년 만에 고향을 찾아온다. 고향에 오니 그 곳은 나의 어렸을 때의 아름다운 추억이 살아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발전된 것도 없이 모두 변화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 곳 사람들은 모두 나를 옛날 사람이 아닌, 출세해서 달라진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얻어가기를 바랐다. 그런 모습은 내게는 몹시 역겨웠다. 나는 고향을 떠나는 배 안에서 고향과 고향 사람들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겼다."

추석, 고향, 떠나고 떠나온 사람들_3
지난해 추석 한국에서 처음 맞는 아내 먼주구릉의 추석맞이로 칠보마을 축제 모습이다.

추석, 고향, 떠나고 떠나온 사람들_4
우크라이나 고려인 어린이들이 한가위 맞이 고려인 축제에서 인형극놀이를 마친 후다. 아이들은 한 번도 한반도를 밟아본 적이 없지만 우리네 전통가옥이 인형극에도 등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실감한다. 비단 노신이라는 대문호에게만이 아니라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서도 우리는 현대인들이 갖는 욕망 속에서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았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날들 그러니 지금이 소중하다. 
그런 점에서 내가 발 딛고 있는 수원은 어떤까? 생각에 잠겨본다. 나 또한 잠시라는 전제를 하고 수원에 머물고 있다. 언젠가는 꿈을 위해 네팔에 가서 멋진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삶의 2라운드를 준비해보자는 것이 내 욕심이다. 

스스로 추구하는 길에 이방적인 삶이 열려있다. 그러나 나는 더디고 더딘 네팔의 산중과 오래된 마을 느낌 같은 곳을 찾아가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찾아갈 고향이 오래된 옛 마을들이다.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존재의 원형 같은 곳이다. 

생각해보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존재의 형태를 달리하며 끝없는 자기변이를 추구하는 것이 삶은 아닐까? 그러나 가끔은 또 다른 변이 혹은 돌연변이처럼 원형으로 돌아가자고 생떼를 쓰듯 과거지향적인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문명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나의 지금, 그리고 어제 며칠 전, 몇 년 전을 떠올리며 산다. 지난 세월이 된 우크라이나에서 본 고려인들의 원형복원 욕구를 보았다. 지금 네팔인들이 한국에 이주노동을 와서도 자신들의 음식문화나 전통문화를 이끌고 살려고 하는 그런 자기복귀, 자기복구의 모습도 본다. 우리는 그렇게 사는 동안 어느 곳에서든 자기 원형문화의 터전을 돌아보면서 살게 되어 있다. 

이제 그런 점을 이해하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깊게 살펴보고 사는 사색도 해보았으면 한다. 가족과 고향과 국가, 민족 모든 성원에게 추석을 맞아 풍요가 넘치고 복이 넘치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추석, 전통문화, 원형회복, 노신, 까뮈, 이방인, 현대인,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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