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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조상 받들기를 더 좋아한다?
2013-09-20 11:01:34최종 업데이트 : 2013-09-20 11:01:34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부모님은 조상 받들기를 더 좋아한다?_1
부모님은 조상 받들기를 더 좋아한다?_1

# 달이 가득 찬다는 추석이 끝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조상귀신 네 친구가 둘러앉았다. 그들은 지난 추석에 차례 상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했다며 한탄했다.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요즘세태에 씁쓸해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굶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이렇다.

귀신1: 추석 명절에 음식 먹으러 후손 집에 가보니, 아 글쎄 이 녀석들이 처갓집에 갈 때 차 막힌다며 지들끼리 편한 시간에 지내버렸더라고. 도착해보니 설거지도 끝나고 다 가버렸지 뭐야.
귀신2: 그래도 자네 후손은 나은 편일세. 후손 집에 가보니 집이 텅 비어있어. 해외여행가서 제사를 지냈다는 거야. 참, 내가 거기가 어디라고 찾아가누.
귀신3: 난 상은 잘 받았는데, 택배로 온 음식이라 다 상했더라고. 그래서 물만 한 그릇 마시고 돌아왔지.
귀신4: 난 후손 집에 가지도 못했다네. 후손들이 인터넷인가 뭔가로 제사를 지낸다고해서. 나도 힘들어서 근처 PC방에 갔었다네. 그런데 회원가입을 하라고 하는 거야. 귀신이 어떻게 가입을 하누!

추석전날 전이며 송편이며 나물, 고기 등 조상님께 바칠 음식들을 장만하고 추석당일 아침 경건하게 차례를 마친 우리가족들. 제일 '대빵' 큰형님이 우스갯소리라며 해 준 이야기다. 어머님 이하 며느리들 포복절도에 아파트가 떠나갈 정도다.

부모님은 조상 받들기를 더 좋아한다?_2
부모님은 조상 받들기를 더 좋아한다?_2

만월(滿月) 한가위는 햅쌀이 나는 철이라 술과 송편을 빚어 조상님께 바쳤다. 햇곡식으로 지은 음식을 정성스레 차례 상에 올리고 성묘를 하는 것이 우리 오랜 관습이었던 것이다. 조상의 덕으로 농사를 잘 지었다고 감사드리는 예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더불어 농경사회였던 당대에 걸맞은 놀이들, 이를테면 윷놀이, 씨름, 기마싸움, 길쌈 시합 등이 성행하면서 마을은 온통 축제분위기로 들썩였다. 그러니 설날 다음으로 큰 명절이 바로 추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농경사회가 쇠퇴하면서 우리 놀이와 풍속도 바뀌었다. 산업사회를 거쳐 현대사회에 이르자 문화적 접변 속에서 사람들의 사고가 바뀌고 또한 풍속도 변했다. 
SNS 상에 퍼지는 웃음바이러스라지만 우리 부모님이 듣기에는 정말 씁쓸한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 우리 집에서 음식 제일 잘하는 며느리가 요즘 갱년기로 아프다. 기력이 많이 떨어져 차례 상을 준비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힘들다고 얼굴빛이 말해준다. 
며느리 입장에서 본다면 많은 것들을 시장에서 사다 쉽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감히 시어머님께 말도 꺼내지 못한다. 그러니 내심 그런 마음을 아는 시어머님, 마음 편할 리가 없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것은 후손으로서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어머님이시다. 75년을 쭉 그렇게 사셨으니 내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을 바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하지 말라'는 말씀은 못하고 며느리 옆에서 부지런히 연신 손을 움직이신다. 그리하여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해와 진배없는 음식들을 우리들 손으로 장만해 올렸다. 

# 3여 년 전만 해도 조상들의 묘소가 있는 시골에서 명절을 지냈다. 그런데, 시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자 친족 어르신들과 의논한 끝에 아들들이 모여 사는 수원으로 제를 모셨다.
너희들이 매년 애쓰며 굳이 시골로 내려올 것이 아니라, 당신 한 몸 만이 올라오시면 되는 것이니, 자식들 고생을 덜어주겠다는 어머님의 배려였다.

실은, 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모시던 조상들을 시골에서 도시로 옮겨온 것도 서운한데 자식들이 그것도 힘들다는 내색을 한다면, 시어머님은 한없이 씁쓸해 하실 것이다. 요즘 세상 그 아무리 돈이 최고라지만 우리 시어머님에게는 예외다.
물론 대부분 부모님들이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계시겠지만, 우리 시어머님은 특히 그렇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조상 모시기'라고, 그래야 후손들이 복이 온다고 평생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며 사셨다.

부모님은 조상 받들기를 더 좋아한다?_3
부모님은 조상 받들기를 더 좋아한다?_3

내년이면 76세시다. 언제까지 우리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 수 있을 런지 아무도 모른다. 시어머님은 오후 내내 떠드는 손자손녀들과 아들며느리들의 재잘거림에 함께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소파에 누우셔서 잠이 드셨다.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 고추농사의 '훈장'마냥 얼굴 한가득 검버섯을 끌어 앉은 채 오랫동안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이별할 날이 오겠지' 생각하니 너무 서글펐다. 남편은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형제들과 연신 시골동정이야기만 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잘 하지 못하지만 정성껏 늘 받들겠습니다. 그러니 남은 여생 편안히 사세요.'

부모님은 조상 받들기를 더 좋아한다?_4
지난 여름 며느리를 위해 버찌를 따는 시어머님. 내 입에 쏙 넣어주며 입병에 좋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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