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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복원사업의 전말(顚末) 여기서 공부하자
수원성복원정화사업 4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열려
2013-08-31 13:38:48최종 업데이트 : 2013-08-31 13:38:48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1970년대 수원화성 복원과 기록에 관한 특별전시가 수원화성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30일 오후 3시 개막식을 가진 이번 전시는 당시 복원공사에 직접 참여했던 삼아성건축사사무소(대표 장순용)와 공동으로 여는 매우 뜻 깊은 전시다. 

수원화성 복원사업의 전말(顚末) 여기서 공부하자_1
수원화성 복원사업의 전말(顚末) 여기서 공부하자_1

수원화성이 완성된 1796년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성곽은 무너지고 파괴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팔달문과 화서문을 제외한 목조건축물과 여장 및 석축도 심하게 훼손되어 성곽은 그야말로 생채기의 절정에 달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문예중흥기간(74~78년)이라 말하는 1970년대, 국방유적으로 분리되어 박정희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 속에 진행된 복원정화사업의 결과 현재 아름다운 수원화성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화성성역의궤' 실황과 다르게 보수된 것에 대해 역사전공자들과 건축을 전공한 사람들의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 전말을 알 수 있는 전시가 바로 이번 특별기획전이다. 수원화성 복원과정과 기록물들을 통해 그동안 궁금해 했던 부분들을 확인해 보자.

복원의 기초는 '화성성역의궤'

조선시대는 기록의 나라였다. 특히 기록문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정조시대의 의궤(儀軌)는 기록문화의 꽃으로 불린다. 그중 화성(華城)이란 신도시를 건설하고 나서 만든 공사보고서 '화성성역의궤'는 그 철저하고 상세함에 현대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수원화성 복원사업의 전말(顚末) 여기서 공부하자_2
수원화성 복원사업의 전말(顚末) 여기서 공부하자_2

1974년도 박정희 대통령의 순시가 장안문에서 팔달문의 루트가 아닌, 장안문에서 화서문으로 노선이 바뀐 후, 대대적인 수원성복원정화사업지시가 내려졌다. 당시 성곽 주변이 엉망진창이었던 모양이다. 부랴부랴 복원설계계획이 세워지면서 진척되기까지 가장 기본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화성성역의궤'다. 그리고 또 다른 고증자료로 '조선고적도보'에 나와 있는 사진과 일제강점기 수리공사시 만들어진 '이한철 선생의 보수도면'들이다. 이 도면 공개는 이번이 최초다.

복원, 기록과 다르게 지어진 이유

복원과정에서 난관에 봉착된 것일까. 어떤 점이 한계의 걸림돌로 작용했을까. 예를 들면 북동포루의 우진각 지붕이 반으로 잘려져 있는 것, 동장대 건물 칸수가 맞지 않는 것, 동북공심돈의 형태 불일치 등이 어떤 근거로 지금처럼 지어졌을까.

실질적으로 공사에 참여했던 장순용 현재 삼아성대표의 이야기는 이렇다. 복원에 있어서 설계도면이라는 것은 현장에서 설계변경이 늘 생긴다. 따라서 남아있는 도면이 계획도면일 수 있다. 그리고 도설편의 그림과 재용편에 나온 물목에서 나오는 내용이 맞지 않는 것이 많다. 결국 본문의 글을 선택한다.즉, 재료의 수량을 따져 지은 경우와 기저부에 남아있는 형태를 중시해 그에 따라 지어진 결과물이다. 그리고 다른 성들과의 비교, 남아있는 사진자료, 전문위원들의 객관적인 고증을 따랐다. 또 다른 참여자였던 신응수 도편수는 실측의 문제를 들었다.

기록과 복원과정 꼼꼼히 살펴야 

전쟁의 상흔이 가득했던 수원화성이 1970년대 대대적인 복원사업을 통해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정조대의 기록물 화성성역의궤가 남아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복원의 근거들이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오늘, 이번 전시를 공동으로 개최한 삼아성건축사사무소의 기록물이 또 다른 기록으로서 역사에 남았다.

"복원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당시의 모습과 현재의 수원화성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정조대의 의궤가 표본이 되어 복원이 가능했듯, 우리가 남긴 이 자료들이 후세에 언젠가는 또 다른 자료가 될 것이다. 중요자료로서 영구히 보존되어 후세대대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설계사무소 초년병으로서 복원에 참여했다는 장순용 현(現)삼아성 대표는 인사말을 전하며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물관 측 관계자에 의하면 삼아성건축사사무소가 남긴 기록물은 대략 3천장이다. 장안문초안과 이후 변경된 도면처럼 여타의 기록물들 역시, 비교를 통해 현재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해 준다.

또 다른 공간, MADE IN KOREA

수원화성 복원사업의 전말(顚末) 여기서 공부하자_4
박물관 속 미술관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공간 '박물관 속 미술관'이 전시관 한편에 차려졌다. 과거와 현재의 소통이란 프로젝트 'MADE IN KOREA'다.
입구부터 남다르다. 한국의 전통 골목길을 연상시키는 담벼락에 설치된 화려한 등불이 하얀 스크린에 투사되어 성벽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길목을 지나 조우하는 현대미술. 언뜻 보면 여느 서양의 거리지만 눈대중을 달리하면 그 안엔 정자각에 이르는 길목이 들어있다. 화성의 성돌, 조선시대 궁궐의 잡상 등 작가의 해석에 따라 새롭게 탄생한 작품들이 매우 독특하다.

당시 실무자들 목소리 들을 수 있어

수원화성 복원사업의 전말(顚末) 여기서 공부하자_3
당시 실무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복원과정을 알아볼 수 있는 공간

이번 전시는 천천히 자세히 보아야 한다. 1997년 12월4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 40여 년 전 수원화성복원사업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힘들었을 것. 따라서 단순히 설계도면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닌 자료가 주는 의미까지 생각하며 둘러보아야 한다.

당시 경기도 경리관으로서 공사감독으로 참여한 이낙천 화성연구회 이사장은 "참여 당시 나의 나이는 30대 후반이었다. 
청년으로서 문화재보수현장 실무를 보며 역사의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현재 수원화성이 늠름히 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당시에 완벽히 복원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참여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며 지난날을 회고했다.

복원에 참여했던 설계자, 감독관, 시공자 등 주요 실무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당시의 문제점과 향후 방향을 모색하는 좌담회가 전시 공간 한편에 있다.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에피소드까지 들을 수 있어 40여분이 후딱 지나간다. 수원사람이라면 전시된 사진을 통해 나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수원성복원정화사업 4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1970년대 수원화성 복원과 기록'
2013-8. 30(금)▶10. 27(일)
수원화성박물관 기획전시실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
031- 228- 4242 http://hsmuseum.suwon.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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