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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를 통해 나의 과거를 본다
이주노동자 샴 꾸마르 라이의 고민
2013-08-29 16:23:12최종 업데이트 : 2013-08-29 16:23:12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샴 꾸마르 라이(27세)는 지난해 한국어 능력시험에 합격한 지 1년 만에 한국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다. 그야말로 풍운의 꿈을 품고 온 네팔청년이다. 아직 결혼도 안했고 젊은 나이인 그는 강원도 화천군의 한 토마토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5월 13일 카트만두 트리뷰반 국제공항에서 처음 만난 50여명의 네팔이주노동자 일행 중 한명이었다. 그와 나는 태국 방콕국제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네팔국적기인 네팔항공에서 내렸다. 그는 대한항공으로 나는 아시아나항공으로 한국에 왔다. 그리고 2주가 지난 어느 날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개통하고 싶은데 도와달라는 것이다.

바쁜 토마토농장 사정으로 외국인등록증을 발급 받지 못한 그는 바로 전화를 개통할 수 없었다. 딱한 사정에 시민기자의 이름으로 선불폰을 개통해서 수원에서 동서울을 거쳐 2시간 30분 거리를 찾아갔다. 농장의 사장님과 사모님을 만나 대화가 안되는 샴꾸마르 라이와 소통을 도와주었다. 개통해간 전화를 이용해 네팔동부에 있는 고향집에 전화를 걸고 가족간에 소통을 도왔다. 여기까지다.

이주노동자를 통해 나의 과거를 본다 _1
방콕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수속을 밟고 있는 네팔이주노동자들이다.

이주노동자를 통해 나의 과거를 본다 _2
지금 함께 온 네팔이주노동자들은 얼마나 자신들의 꿈과 가까이 다가갔을까?

샴 꾸마르 라이의 전화를 개통해주고 온 이후 샴 꾸마르 라이는 가끔 전화를 걸어왔다. 선불폰에 전화요금을 충전할 일이 있을 때, 전화기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자신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다. 
사실 몇 차례 그런 일이 반복되자 귀찮아졌다. 물론 네팔말이 되기에 그에게 충고도 했다. 시민기자는 며칠 전부터 네팔한국문화센타의 자립기금 마련을 위해 아파트 경비실에 출근하고 있다. 24시간 격일제 근무다.

근무 중인 내게 화천의 샴 꾸마르 라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필요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일이 힘들어 더 이상 토마토농장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단다. 그는 아침 6시 일을 시작해 저녁 8시나 9시에 일이 끝난다. 3개월 정도 잘 견디고 성실하게 일해 온 그에게 타국에서 몸이 힘들고 견디기 힘든 것처럼 슬픈 일도 없으리라. 그래서 내게 전화를 걸어왔고 말이 서툰 사장님과 사모님도 번갈아가며 사정을 이야기했다. 

사장님도 사모님도 그의 성실한 태도에 마음이 끌렸는데 안타까워했다. 사모님은 하소연이다. 토마토 농장은 매우 바쁜 시절이 지나고 11월 달까지 한창 일할 시기라고 하신다. 한 번 떠난 마음을 되돌린다는 것은 그 어느 곳에서나 힘겨운 일이다.

"하루 이틀 쉬고 다시 일을 시작하라. 그도 어려우면 일단 출근을 하고 일하다가 힘들면 쉬겠다고 말해라." 나의 충고다. 그러나 샴 꾸마르 라이는 나의 아침 퇴근길에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매형! 나는 이곳 사장님과 사모님이 아버지, 어머니처럼 좋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고 싶으나 너무 힘들어 도저히 일을 못하겠습니다. 실내에서 일하는 일을 구해서 하고 싶습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그 어떤 말도 전할 수가 없어 답을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통해 나의 과거를 본다 _3
샴 꾸마르 라이다. 양 어깨에 사장님과 사모님의 손이 얹어져있다. 3개월 전 모습이다.

이주노동자를 통해 나의 과거를 본다 _4
샴 꾸마르 라이가 일하고 있는 강원도 화천군 광덕리 토마토 농장 인근의 버스정류장이다. 스마트폰을 개통해서 가져다주고 오는 날도 비가 내렸다.

시민기자가 16살 어린 나이에 작은 공장들을 전전하기 시작했을 때, 그 후로 오랫동안 그 누구에게도 터놓고 고민을 말 할 수 없었던 지난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그에게 다시 뭐라 말해줘야 한다. 고민이 깊어진다. 
그에게 나는 태국 공항에서 전화번호를 건넸다. 오지랖 넓은 탓에 내 아픔에 익숙하지만 남의 아픔을 보면 견디기 어려운 측은지심이 발동하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마땅한 해법을 찾아주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모두 바쁘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뇌성이 치고 가을 초입의 거친 비가 마음을 어수선하게 한다. 
나는 그와 한국에 오던 길 공항 표정을 담은 지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할 말을 내게 전한다. "넌 새로운 삶을 살려면 이주노동자의 고단함을 바로 너의 모습으로 알고 일하라. 그래야만 네팔에서 자립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 

24시간 일은 매우 고단하다. 하지만 마땅한 뒷배가 없는 사람에게 한국 사회는 그닥 호락호락하지 않다.    
네팔이주노동자들이여, 단단히 마음먹고 결심하고 견뎌라. 샴 꾸마르 라이와 함께 온 이주노동자들, 네팔에서 온 2~3만에 달하는 친구들 그들에게 강하게 결심하고 견디기를 바란다. 
현실의 가혹을 넘어서지 못하면 삶이 웃음 짓고 다가오지 않는다.

이주노동자, 샴 꾸마르 라이, 네팔한국문화센타, 강원도 화천, 토마토농장,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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