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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노래하는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
8월의 어느 멋진 강연
2013-08-27 01:43:22최종 업데이트 : 2013-08-27 01:43:22 작성자 : 시민기자   공예지

25일, 중소기업인력개발원 302호에서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 씨의 강연이 펼쳐졌다. 그는 첫 곡으로 'O Sole Mio' 를 열창하며 강연의 첫 장을 활짝 열었다. 

희망을 노래하는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 _1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의 스크린 설명하는 모습

천사 아내와의 러브 스토리

황영택 씨는 사고를 당하기 전 180cm의 나름 '훤칠한 기럭지'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는 포스코(구 포항제철) 에서 일하던 중 원주에서 거래처 직원으로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다. 
그렇게 사랑이 싹트어갈 때쯤 그는 크레인 조종 중 2만4천V의 고압 감전 사고를 당했다. 의식을 잃은 3개월 뒤 극적으로 깨어났지만, 깨어나자마자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했다. 그래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다고 한다. 

하반신 불능과 내장 기관 마비 판정을 받고 아내에게 떠나라고 얘기했지만 그녀는 그의 곁을 매일 지켰다. 그러나 그는 퇴원 뒤 더 극심한 괴로움으로 죽음을 갈구하며 술을 마셨다. 그랬던 그가 돌이 안 된 아이, 준홍이의 표정을 보고 "내가 가족을 위해 살아야겠다." 고 6개월의 방황 끝에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희망을 노래하는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 _2
제2의 삶에 대한 얘기를 경청하는 모습
 
첫 재기의 활동은 테니스부터  

재활을 위해 테니스용 휠체어를 타며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차츰 방법을 익혀가며 5년을 배운 결과,당당히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그 날 그 동안의 힘든 시간을 떠올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멋지게 사는 장애인들을 만나며 희망을 키워나갔다. 봉사를 하다 "휠체어 타고도 성악을 할 수 있을 까?" 생각했고, 성악을 하기위해 월드컵 4강의 기적이 일어났던 2002년, 당시 37살의 수능으로 성결대 성악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는 10년 이상 성악 공부를했고 현재는 한 달에 한 번 콘서트를 열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지휘자로서, 레슨 강사로서, 강연자로 열심히 뛰고 있다고 한다. 

나부터 행복하고, 나를 먼저 칭찬하라
 

강연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통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 나를 먼저 칭찬해야 한다." 고 강조한다.  
"내가 힘들어도 내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 사람들도 좋아해준다." 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주길 바라고 있다. 또, 이 자리에 참석한 S화재 RC들과 SM들에게 "여러분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보험은 또 다른 희망의 문이라 감히 얘기한다." 고 말했다.  
"의학 기술이 발달되어서 걸을 수 있게 된다면 아내를 업어주고 싶다" 는 소원과 함께 '10월의 어느 멋진 날' 을 개사한 '8월의 어느 멋진 날' 을 들려주며 마지막으로 "행복하세요!" 라는 한 마디 멘트로 열정적 강연을 마쳤다. 

휠체어를 타고도 테니스, 수영, 스키 등 여러 스포츠를 섭렵하는 모습이 마치 닉 부이치치를 보는 듯 그의 강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큰 도전 정신을 심어주었다. 

기자는 평소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이 강의를 통해 많은 반성을 하며, 삶이 힘들지만 나를 격려하고 나 스스로를 칭찬하며 나부터 행복한 삶을 실천하는 내 자신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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