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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딸아이 입학선물
2013-08-20 21:52:56최종 업데이트 : 2013-08-20 21:52:56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큰 딸의 여름방학 아르바이트가 드디어 끝났다. 여름방학 동안 집 앞 주유소에서 새까맣게 그을리며 일했었는데 드디어 한달 보름간의 일정이 끝난 것이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힘들어하며 그만두려고 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알바를 끝내고 개학을 준비하는 것이다. 

처음 주유소 알바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하루 10시간씩 일하느라 지쳐버린 딸아이는, 이후 일하는 시간을 줄여주고 선배 아르바이트생과 업무를 분담하면서 그 후로는 즐겁게 일하면서 방학을 보냈다. 딸이 일하는 공간에 그늘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텐트를 설치해주는 등 여러 가지 배려를 해줬지만 그래도 주유소 일 이라는 게 하루 종일 땡볕에서 하는 일이다보니 하루하루 새카맣게 그을리더니 지금은 아예 까맣게 타버린게 아프리카 사람처럼 변해 버렸다. 

딸아이가 잠잘 때 보면 두 사람이 자고 있는 것 같다. 옷에 가려져 있던 부분은 하얗고 밖으로 드러난 부분은 새카맣게 타서, 특히 다리부분은 자를 대고 그은 듯 흑과 백의 색깔이 선명하다. 한창 멋 부리고 싶을 나이인 스물 하나.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고 예쁜 나이지만, 거칠게 그을려 버린 피부를 보면 미안하기도 하면서 아주 속상하다. 

물론 힘들게 일해서 번 아르바이트비를 엄마가 뺏어서 생활비로 쓰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2학기 동안 학교 다니면서 소요되는 용돈으로 쓰일 예정이다. 그래도 마음이 아픈 나는 고생한 딸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고민을 하다 반지를 하나 사주기로 했다. 

뒤늦은  딸아이 입학선물_1
뒤늦은 딸아이 입학선물_1
 
원래 내 계획으로는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스무 살 숙녀인데, 엄마가 선물로 예쁜 반지, 목걸이, 귀걸이를 해줘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통치 않은 성적으로 재수를 하게 되면서 나의 계획은 무산되었고, 대학에 입학하던 올해도 역시 시원찮은 성적으로 나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부모로서의 의무감으로 겨우겨우 등록금만 마련 해줬을 뿐 딸아이를 위해 어떤 것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냥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대학생이 된 딸아이는 보석가게에서 파는 액세서리 반지를 사서 끼고 다니는데 ,도금이 벗겨지면 AS를 받아가며 그래도 열심히 끼고 다니는 것이 안쓰러웠던 터라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입학 선물을 해주기로 하고 아이가 끼고 다니던 반지를 달라고 했다. 아이는 펄쩍 펄쩍 뛰면서 좋아한다. 

서울에만 있는 백화점 상품권을 몇 년 전 동생이 준 게 있는데 그동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그 상품권도 처분할 겸 서울에 있는 백화점으로 반지를 사러 가기로 하고 백화점 위치를 검색하니, 압구정동, 천호동, 미아리 등 다들 거리가 너무 멀다. 그래도 그중 가장 가깝고 편한 신촌에 있는 매장을 찾아가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신촌까지 가는 시간도 꽤 걸린다. 그렇지만 딸아이가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니 그 시간도 행복한 시간이다. 드디어 백화점에 도착해서 이곳저곳 보석 매장을 둘러보는데, 어쩜 그리들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딸아이 보다는 내가 끼고, 걸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선다. 

그래도 딸아이에게 줄 선물을 사러 왔으니 아이에게 어울릴만한 반지들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노랗게 번쩍거리는 금이 최고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은처럼 하얀색인 화이트골드가 유행하더니, 내 눈에는 도금이 벗겨진 것 같기도 하고 구리 반지 같기도 한 핑크골드가 요즘 아이들에게는 또 인기란다. 

그런데 반지를 사러 갔는데 반지보다는 귀엽고 앙증맞은 목걸이들이 더 내 눈을 잡아끈다. 딸아이에게 어울릴만한 목걸이를 이것저것 꺼내서 내 목에 걸어보며 거울을 본다. 내 모습이 참 예쁘다. 엄마인 내 목에서도 이렇게 예쁘게 빛나는데 우리 딸아이 목에 걸어주면 얼마나 예쁠까 싶은 생각에 반지와 목걸이를 같이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목걸이와 세트로 할 수 있는 반지를 두 개 골라서 아이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뒤늦은  딸아이 입학선물_2
뒤늦은 딸아이 입학선물_2
 
아이는 전송받은 사진을 또 친구들에게 보내서 친구들의 의견까지 참고하여 반지의 디자인을 결정한다. 다행히 백화점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반지의 사이즈가 딸아이의 반지와 같은 사이즈라 며칠 기다리는 지루함 없이 바로 구입을 하고 예쁜 포장지에 포장을 한다. 마음이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미안하다. 딸은 내게 첫 아이라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은 엄마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아이였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마다 실망시키면서 나를 속상하게 했다. 그래도 고3때는 1년만 더 해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서, 실망스럽고 속상하면서도 재수라는 힘든 선택을 하면서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재수하는 동안 아이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서 엄마인 나를 기쁘게 했다. 주말도 없이 매일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침 챙겨 먹이고, 학원급식보다는 엄마 밥이 맛있다는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두 개씩 싸면서도 재수를 시키기 참 잘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고 힘든 줄도 몰랐다. 

엄마가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을 아이가 느끼면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밤늦게 돌아오는 아이를 매일 마중 나가며 엄마인 나도 딸과 함께 힘든 1년을 보냈다. 그랬는데 마지막에 지쳐버린 딸아이는 두 번째 수능에서도 모의고사 때와는 다른 결과를 얻으며 나를 실망시켰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학교를 결정하면서도 아이만 보면 마음속에 분노가 일면서 아이가 미웠다. 내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감정들을 딸에게 전부 드러낼 수도 없다보니 화병이 생길정도였다. 그럼에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어김없이 나의 경우에도 해당 되어서 한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를 보는 내 마음도 조금씩 평안해지는 것이다. 

아이에게 말은 안했지만 진작 해줬어야 하는 선물을 내 마음의 분노로 인해 미루고 있다가 이제야 겨우 사주게 되는 사정을 모르는 딸아이는, 반지만 기대하고 있다가 목걸이까지 생기니 감격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늦은 입학선물을 이제야 딸에게 주는 나도 흐뭇하다. 예쁜 나의 딸이, 예쁜 모습으로 대학생활을 잘 보내면서 한 사람의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여 제 몫을 다 하는 사회인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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