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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죄스러운 노인들
자식들에게 짐 될까 전전긍긍하는 노년의 삶
2013-08-22 14:58:21최종 업데이트 : 2013-08-22 14:58:21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아이고, 내가 거기 아들 집에 일주일 있었더니 금세 치매가 오겠더라고요."

더운 날씨에도 밖에 나가자고 조르는 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 우리 동네 놀이터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그 곳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쉼터이다. 놀이터에 올 때마다 자주 얼굴을 봬서 낯이 익은 할머니 한 분이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옆에 할머니에게 지난 일주일 아들네 집에 애들을 봐주러 갔었다면서 그 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구먼."
"내 집이 최고여유. 아들네 집에 있으니까 산송장이 따로 없더구만유. 한밤중에는 애들이 잠에서 깰까 싶어 화장실에 가도 물도 못 내리고 나오고, 아들놈이라고 뭐 내가 갔다고 엄마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남유? 지 컴퓨터 한다고 그 방에만 들어앉아서 지 할 일만 하는 거지유. 여기 내 집에 있으면 여기라도 나와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지내는데 거기서는 갈 데가 있어야죠~"

할머니는 아들네 집에서 눈치만 보며 지내다가 일주일을 보내고 왔다면서 신세한탄을 하고 계셨다. "아니, 내가 아침에 눈 뜨면 바로 허는 일이 티브이 켜는 일인데, 이건 뭐 티브이도 내 맘대로 볼 수가 있나. 분위기 봐서 방구석에 들어가 있고, 조용히 숨 죽어지내는데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내가 뭐하나 싶더라구유."

지난 일주일의 답답했던 심경을 토로하면서 할머니는 신이 난 듯 보였다. 어느 곳에서 속내를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힘드셨던 모양이었다.

"그랑께~며느리랑은 못 살아, 안그려?"
한창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할머니가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려유~ 우리 며느리도 다음에 같이 살게 되면 화장실은 하나 더 있어야겠다고 하더구만유. 근데 내가 이번에 확실히 느꼈소. 아들이랑은 사는 게 아니다. 며느리 눈칫밥 먹으면서 살 바에는 그냥 나 혼자 산다 하고 다짐을 하지 않았것소."
"그려, 좋은 세상이지만 자식들에게 짐 되지 않을라믄 빨랑 죽어야 혀. 그란디 우째, 내 맘대로 죽어지지 않는 것을. 아프지나 말아야지~휴우~"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죄스러운 노인들_1
노년의 삶은 결코 시든 것이 아닌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면서 새로운 인생의 꽃을 피운 시기가 아닐까

그런 할머니들의 대화를 들으며, 눈앞에 뛰어 노는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도 언젠가 저 아이들에게 짐스런 존재가 될 날이 오겠지? 나도 언젠가 저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살날이 오겠지?' 지금은 마치,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지만, 지금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세월을 보면 그 날도 머지않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나의 부모 역시 벌써 저런 고민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고, 내가 어떻게 아들이랑 같이 사냐? 며느리랑 맞추면서 나는 못 살아야!!"

친정엄마가 늘 하는 말씀이다. 가끔은 그런 이야기조차도 귀찮고 지겨워질 때가 있다. 그냥 두 분이 알아서 노년의 삶을 잘 개척해가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대부분 자식의 눈치를 보고 자식에게 의지하게 된다고 한다. 젊어서는 아이들에게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버팀목이던 부모는 나이가 들어서는 자녀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된다.

노인의 거짓말 중에 1순위가 '빨리 죽고 싶다.'라고 한다. 실상은 더 오래 살고 싶고, 죽음이 두려우면서도 주변에, 특히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지레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얼마 전에 남동생이 아버지께 한 질문이다. 
"아버지, 아버지는 몇 살까지 살고 싶으세요?"
그 말을 들은 친정아버지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서울에 일이 있어서 올라오신 외삼촌이 옆에서 들으시고는 크게 화를 내셨다.
"이 놈아, 아버지께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라고 말씀 드려야지 몇 살까지 살고 싶으세요?가 뭐냐? 일찍 돌아가시라는 소리도 아니고, 그런 질문을 어떻게 답을 한다냐!!"

그 말을 들은 동생은 그저 아버지가 얼마나 삶을 살고 싶은지 궁금했을 따름이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 어쩌면 노년에 접어든 사람에게 가장 실례가 되는 질문이 "몇 살까지 살고 싶으세요?"일지도 모른다. 비록 나이가 들어 연로한 하루하루의 삶일지라도, 젊은이에게건 노인에게건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으며 죽음은 생각만해도 두려움 그 자체일 테니 말이다.

"나는 딱 80까지만 살란다!!"
올해 65세이신 친정아버지가 앞으로 15년만 건강히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기독교인이신 친정아버지는 신앙심이 두터워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다. 그에 반해, 엄마는 몇 살까지만 살겠다는 말은 회피한 채, "나는 아빠 하늘나라 가서 혼자되면 시골 내려가서 살 거니까 걱정 하지 마라."하신다.

아이와 노인이 행복한 나라가 진짜 행복한 나라라고 했다. 지금 이 시대, 특히 우리나라는 과연 노인이 행복한 삶을 살수 있는 곳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점점 노령인구가 늘어나는 지금 이제는 노인들이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릴 자유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새 시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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