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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가을을 기다리며
2013-08-20 16:41:43최종 업데이트 : 2013-08-20 16:41:43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가을로 들어서는 입추가 지났고 더위가 식고 일교차가 심해진다는 처서를 며칠 앞두고 있다. 제법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한낮에는 뜨겁지만 절기는 속이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낮에는 변함없이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고 거리의 시민들은 손부채질의 연속이다. 한낮에 가을의 시원함을 느끼기란 쉽지가 않다. 정오를 전후로 거리로 나가 보았다. 꼬마 악동들에게는 여름 내내 시원한 물놀이 터였던 나혜석거리의 분수대 주변에는 여전히 물놀이에 열심인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유모차를 옆에 대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에 시선을 집중한 젊은 엄마들은 아이스티로 더위를 달래고 동행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옷차림도 시원하게 입고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플레어스커트가 나풀거린다. 점심을 먹고 난 직장인들도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그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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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거리 분수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거리를 오가는 여성들은 각양각색의 양산을 들고 태양을 피한다. 머리맡에서 내리쬐는 직사광선을 작은 양산으로 온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쓰지 않은 것 보다는 열배 나을 것이다. 양산의 무리 중에 유독 검은색 레이스로 된 양산에 눈에 띈다. '검은색 양산은 더 덥지 않을까'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든다.

평소에는 동수원 뉴코아 아울렛까지는 걸어 다녀도 그리 멀다 느껴지지 않았는데 오늘같이 더운 날에는 빈손으로 다녀도 멀게 느껴지는 거리이다.

매번 오전에 오는 농수산물 도매시장에 들러 임연수어와 호박 등 채소 몇 가지를 샀다. 한참 점심때가 막 지난 시간이라 그랬을까 어물전에도 채소를 파는 곳에도 장보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부채로 파리만 쫓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한낮에 장보는 사람이 원래 없지만 저녁에도 장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좋아 보이는 수박 한통에 만8천원이란다. 크기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지만 지난주에 샀던 수박과 비교하면 약간은 오른 것 같다. "과일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그래도 수박이 여름철에는 싸고 양도 많아서 제일 만만하지 뭐"하는 상인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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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없는 채소 시장

양손에 생선과 채소를 들고 오는 나를 보고 화단에서 잡초를 뽑고 있던 경비아저씨가 얼른 현관문을 열어준다. "날씨가 더운데 잡초를 뽑고 있으세요?" 하니까 경비아저씨는 "이젠 여름도 다 갔는가벼요. 바람이 제법 시원해졌어요"한다.

경비아저씨가 오시고부터 우리동 아파트 화단이 봄부터 볼거리가 많아졌다. 초봄 수선화를 시작으로 작약, 봉숭아. 금잔화 등 다양한 꽃모종을 심으면서 무미건조하던 화단에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장마철에도 잠깐씩 비가 그치면 잡초를 뽑아주고 화초들이자라면서 비좁아지면 속아주었다. 요즘 아저씨의 화단에는 맨드라미를 비롯한 코스모스가 피어 은근히 나도 더 예쁜 꽃밭을 꾸미기 위해 경쟁심이 생긴다.

나의 꽃밭에는 분꽃들이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장미넝쿨을 보고 좋아하던 주민들이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만개한 분꽃을 보고 감탄한다. 요술을 부리듯 해가 비치기 전과 해가 넘어가고 나야 나팔처럼 꽃잎을 활짝 피운다. 지금처럼 뜨거운 낮에는 나팔모양을 한껏 오므리고 숨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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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에는 활짝피는 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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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고추를 말리고 있다

같은 동 옆 통로의 할머니 꽃밭에는 천사의 나팔과 허브 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 피지 않은 국화를 묶어 둔 기둥에 잠자리가 앉았다가 날아간다. 손으로 슥 쓰다듬어도, 미풍에도 향긋한 허브향이 바람에 날린다.

오늘은 할머니 꽃밭 앞에 꽃보다 더 붉은 고추를 널어놓았다. 꼭지를 다 뗀 고추를 줄을 세워 널어 둔 모습이 어느 유명 작가의 명화처럼 보인다.

눅눅하고 습기가 많은 열대야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더위가 지난 주말을 고비로 거짓말처럼 위세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높고 푸른 하늘을 가르는 잠자리 떼를 보면서 어느새 부쩍 다가온 가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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