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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서 열린 정조대왕 승하 213주기 기신제
2013-08-05 11:17:24최종 업데이트 : 2013-08-05 11:17:24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1800년(정조24년) 음력 6월28일, 정조대왕께서 승하하셨다. 그달 초순부터 도진 피부병이 중순을 넘어서면서 정조대왕은 밤잠을 주무시지 못하셨다. 악성피부병은 결국 28일에서야 멈춘다. 24년간 소통과 화합을 위해 애쓴 개혁군주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용주사서 열린 정조대왕 승하 213주기 기신제_1
용주사서 열린 정조대왕 승하 213주기 기신제_1

지난 6월29일, 일제시대 우리문화 말살정책으로 100여 년 간 끊어졌던 사도세자 기신제가 효찰대본산 용주사에서 열린 바 있다. 
용주사가 어떤 절인가. 1789년 아버지의 묘소를 양주군 배봉산에서 지금의 화산(융릉)으로 옮긴 후 이듬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시점인 8월 4일 오후4시,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승하한 음력 6월28일을 맞이하여 다시 이곳에서 기신제가 열렸다. '정조대왕 승하 213주기 기신제'란 이름으로.

이씨왕조 후손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효찰대본산 용주사 호성전은 정호 주지스님을 위시해 산문 수행스님들, 그리고 신도들과 일반 시민들로 가득 들어찼다. 그들은 모두 합장하며 조선의 위대한 군주였던 정조대왕의 위업을 기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기신제에 참례했다. 

용주사서 열린 정조대왕 승하 213주기 기신제_2
용주사서 열린 정조대왕 승하 213주기 기신제_2

융릉을 건설하면서 한여름에 뒤주 속에서 숨을 거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나는 일화 '송충이를 깨문'사건이 전해지듯 정조의 효심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몸소 효행실현을 보여주며 백성들의 귀감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용주사에 새겨진 '부모은중경'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부모에 대한 효도를 다시금 일깨운다.

1752년에 태어나시어 1800년 승하하시기까지의 행장이 역사학자 정해득 한신대 외래교수에 의해 전해진 후 추모사에 나선 정호스님은 "우리나라 역사상 세종대왕과 함께 위대한 군주로 칭송되는 왕이 정조대왕이시다.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였던 정조는 또한 엄청난 효자셨다. 21세기 사회병리현상이 심화되어 우리의 전통적 가치가 사라지는 이즈음 정조의 시대에서 다시 출발하는 마음으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용주사서 열린 정조대왕 승하 213주기 기신제_3
용주사 주지 정호스님

유동준 정조사상연구회 회장은 "오늘날 정치가들이 탕평정책으로 국정을 이끌어간 정조대왕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면서 "효의 중심, 효의 가치를 용주사에서 다시금 생각해보자"고 했다. 
초기 정조연구가로 알려진 유봉학 선생은 정조시대 전반사를 이야기 하면서 "민주화와 산업발전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현재 대한민국이 엄청난 변화를 이루기까지 그 근저에는 정조시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용주사서 열린 정조대왕 승하 213주기 기신제_4
용주사서 열린 정조대왕 승하 213주기 기신제_4

기신제의 절정은 모든 사람들이 합창으로 '부모은중경'과 '반야심경'을 염송하는 가운데 참배객들이 정조와 장조의 위폐를 모신 단에 나아가 차례로 예를 표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공손히 모시는 시간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날 또 하나의 의미있는 시간은 용주사에서 준비한 저녁 공양이었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저녁을 들고 가시라며 차린 음식이 어찌나 정갈하고 깊은 맛이 있던지. 사찰음식 그 자체가 맛있기도 했지만 찬 하나 하나에서 정성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흡사 정조대왕께서 백성에게 쏟으신 사랑처럼.

정조대왕 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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