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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머리, 흰 머리카락은 나의 소중한 친구랍니다
염색 하는 날
2013-08-07 14:10:49최종 업데이트 : 2013-08-07 14:10:49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사람의 외모를 보고 대부분 나이를 어림짐작하며, 또 그 어림짐작이 대체적으로 정확한 편이다. 
그런데 생김새 중 어느 부위를 보고 그 사람의 나이를 짐작 할 수 있을까. 얼굴은 세월이 흐르면서 주름살도 깊어지고 피부색도 칙칙해지면서 나이를 드러내고, 걸음걸이도 총각, 처녀 때와는 달리 무거운 짐을 옮기듯 둔해지며, 옷차림에서도 어쩔 수 없이 연륜을 드러내니 딱 꼬집어 어느 한 부분 때문이라기 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에서 나이가 드러나는 것 같다. 

특히 그중에서도 사람을 초라하게 나이 들어 보이도록 하는 곳 이 있으니, 바로 머리카락의 색깔이다. 요즘은 여러 가지 색상의 염색약이 많아서 마음에 드는 색깔로 수시로 멋내기를 시도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누릴 수 없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으니 바로 나처럼 흰 머리가 많은 사람들이다. 

새치머리, 흰 머리카락은 나의 소중한 친구랍니다_1
새치머리, 흰 머리카락은 나의 소중한 친구랍니다_1
 
나의 머리카락은 일찍부터 변화를 나타냈다. 스무살 때 부터 한, 두 올씩 하얀색의 윤기가 반짝이는 머리카락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40대 후반인 지금의 머리색깔은 완전한 백발이다. 
그런 이유로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작업중의 하나가 바로 머리염색 하는 일이다. 뿌리까지 깔끔하게 염색을 했어도 유난히 잘 자라는 머리카락 덕분에 염색한지 열흘만 지나면 귀밑머리 에서부터 희끗희끗 찬란한 은빛 머리카락이 날 눈부시게 한다. 

수시로 염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용실에서 하는 염색은 어쩌다 한번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할 때 에만 맡기고 대부분은 집에서 한다. 처음에는 혼자서 거울을 보면서 직접 했다. 
염색약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샴푸하듯 바르기만 하면 염색이 완벽하게 된다는 홈쇼핑광고를 보고 무려 한 박스를 구입했더니, 아무리 염색을 자주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써도 써도 줄지는 않고, 오래 보관한 탓인지 나중에는 염색도 제대로 되질 않아 애를 먹은적도 있었고, 필요한양 만큼만 조금씩 짜서 쓸 수 있는 샴푸는, 가격은 조금 비싼편이지만 염색후 새로 올라오는 흰머리에만 조금씩 바를 수 있어서 꽤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갈수록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서, 요즘은 누군가의 손길에 머리를 맡겨야만 하는데 대부분은 남편과 딸이 해주고 가끔 한번씩은 미용자격증이 있는 이웃에게 염색을 맡긴다. 염색하는 작업이, 머리를 맡기고 있는 사람도 귀찮지만 염색작업을 하는 사람도 상당히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에 가끔 한번씩 도움을 요청한다. 

새치머리, 흰 머리카락은 나의 소중한 친구랍니다_2
새치머리, 흰 머리카락은 나의 소중한 친구랍니다_2
 
서로 시간이 맞는날을 선택해서 며칠전부터 예약을 했다. 모처럼 쉬는 날 늦잠도 자고, 쉬고 싶었을텐데도 고맙게 아침일찍부터 염색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겨서 우리집으로 출장을 와줬다. 그 친구가 좋아하는 다방커피대신, 마침 얼마전 새로 구입한,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국화차를 맛 보이고 싶어 예쁜 찻잔에 따끈한 국화차를 대접했다. 

한참 국화차에 대해 자랑을 하고 한 모금 마시려고 찻잔을 들었는데 손잡이 없는 찻잔이 너무 뜨거워서 마시기가 불편한 것이다. 
어쩐지 차는 마시지 않고 같이 내놓은 빵만 먹고 있더라니... 손님대접 한다고 일부러 예쁜 찻잔에 노오란 국화차를 담았던건데 마시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 하던대로 집에서 늘 사용하던 컵에 차 두 잔을 확 쏟아서 마시니 그제서야 국화향이 코와 입을 가득 채운다. 

드디어 염색 시작. 나도 다양한 칼라로 머리 색깔을 바꿔보고 싶지만 새치머리는 밝은색의 염색약이 잘 듣질않는 이유로 늘 검은색만을 하고 있다. 색상명은 진한 갈색이지만 염색 후 머리 색깔은 검정과 별 차이 없는 색상인 갈색으로 오늘도 역시 염색을 한다. 
옷에 묻을까봐 보자기를 두르고 얼굴라인에는 크림도 바르면서 염색약이 피부에 묻는걸 미리 방지한다. 쓱쓱 부드러운 손길로 빗이 지나가는 곳 마다 염색약이 한 움큼씩 묻어난다. 

남편이나 딸이 염색을 할때는 뻣뻣한 염색 빗 때문에 머릿속 피부가 많이 따갑고 아픈데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다르다. 염색하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염색약을 다 바른후 주방용랩으로 염색약 발라놓은 머리카락을 싸맨다. 염색약이 날라가는걸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약 40분후 머리를 감고 거울을 보니 어제와는 다른 모습의 내가 거울 속 에 들어있다. 흰 머리도 눈에 한번 띄기 시작하면 그것만 보여서 사람이 초라해 보이고, 나이 들어 보이고, 못생겨 보이기까지 해서 기분을 가라앉게 만드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염색을 하고 나면 갑자기 젊어 보이고 활기차 보이며 자신감도 함께 생겨나서 기분을 즐겁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십년은 젊어 보인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염색후의 모습이 젊어보이기도 하지만 염색전 초라해 보일 때의 모습이 제 나이보다 십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탓이기도 하리라. 

친정 엄마는 새치가 많아서 엄마가 삼십대였을 때 부터 내가 새치를 뽑아 드리기 시작한 반면, 친정아버지는 친구 분 들이 모두 백발이 되신 후 에도 간간히 흰 머리가 보일 정도로 검은 머리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계셨는데 우리 4남매는 한결 같이 엄마를 닮아 새치로 고생들을 하고 있다. 이렇게 나를 귀찮게 하는 흰 머리지만 그래도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적도 있었다. 

십여년전 남편과 많이 힘들었던때가 있었다. 태산만큼 많은 할 말들을 속으로만 삭이면서 힘들어 할 때,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화장실을 들어가서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던 서러움이 사그라들면서 희끗거리는 흰 머리가 눈에 띄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들춰가면서 흰 머리를 한 올 한 올 뽑다보면 어느새 그 일에 몰두해서 내가 무엇 때문에 속상하고 서러웠던가는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흰 머리카락 찾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몇십분을 그러고 나면 이리저리 굴리느라 지친 나의 눈이 쉬고 싶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제서야 다시금 평온해진 마음으로 화장실을 나오고, 또 아이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내곤 했었다. 그 시절, 나에게는 흰 머리가 바로 위로자였고, 친구였고, 내 상처의 치유자였던 것이다. 염색을 해야 할 때 마다 귀찮고 번거롭지만, 그래도 나와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나의 흰 머리를 나는 오늘도 감사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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