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군대? 농사가 더 힘든거여
농사에 비하면 군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촌동생을 보며
2013-08-08 14:54:09최종 업데이트 : 2013-08-08 14:54:09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얼마 전에 이제 막 일등병이 된 사촌동생이 휴가를 나왔다. 
고향인 전라도 목포를 떠나 경기도 파주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는데 서울 지리에 문외한이라 매번 친정 아버지가 군부대 앞에서 기다려 친정 집에 데려왔다가 고향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 서울역에서 보내주곤 하였다. 

얼마 전 휴가가 길어서 우리집에도 들른 사촌동생. 먹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짜장면이라기에 짜장면을 사주고 집에 들어와 시원한 수박을 잘라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경아, 너 이번 휴가 동안 뭐 할래?"
"뭐하긴, 집에 내려가서 농사 도와야지. 지금 농번기라서 엄청 바쁘당께~"
삼형제 중에 둘째인 이 녀석은 그 중에서도 가장 엄마를 생각하고 효심이 지극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오랜만에 길게 휴가 받았는데 놀 생각보다 부모님 도울 생각부터 하니 기특하네."
군대 들어가기 전에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을 했던 사촌동생은 주말에도 쉬는 날이면 농사일을 도왔다고 했다. 누구보다 농사가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모님만 일 하시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면서. 

"농사가 그렇게 힘들어? 그럼 너는 군대가 힘드냐, 농사가 힘드냐?"
"당연히 농사지! 누나, 농사에 비하면 군대는 그냥 일과일 뿐이여."

군대? 농사가 더 힘든거여_1
고즈넉해 보이는 시골살이지만 실상은 도시보다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농부들의 땀을 기억해야겠다

갓 올라온 어머니의 택배를 바라본다. 감자, 옥수수, 부추, 상추, 생김치, 고추, 나물반찬 등등…… 어느 것 하나 어머니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시댁 주변은 각가지 채소밭으로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자식들이 먹는 양과 당신들 먹을 양을 생각해서 채소별과 비율을 맞춰 매년 조금씩 조절하면서 재배하고 계시다.

택배가 올라올 때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아휴, 이걸 또 언제 다 정리하지?' 그래서 택배가 오고 나면 식탁 위에 방치해뒀다가 신랑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같이 정리하곤 하였다. 
그런데 얼마 전, 사촌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 귀한 음식들을 자식들에게 먹이기 위해 사시사철 씨를 뿌리고, 키우고, 씻고, 다듬어서 보냈을 어머니의 손길이 얼마나 분주하셨을지 조금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얼마나 자주 택배를 받고도 잘 받았다는 인사, 감사하다는 인사 전화를 깜박했던가.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와 신랑에게 행여 박스 속에 음식이 상할까 노심초사해서 먼저 전화를 주시곤 하였다. 가끔 두려워진다. 내가 부모의 사랑과 정성을 경홀히 여기듯 내 자식도 그러면 어쩌나 싶어서 말이다.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부모에게 받는 사랑은 너무나 당연시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을 한다. 

"누나, 나 이제 군대 복귀하러 들어가. 담에 또 만나."
"아구, 벌써 그렇게 됐어? 휴가 13박 14일이라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긍께, 휴가가 너무 짧아부러."
"그 동안 어머니, 아버지 농사일은 많이 도와드리고?"
"그라제~ 나 없었으면 울 엄니랑 아부지 큰일날 뻔 했당께. 농사일이 엄청 밀려가지고 내가 다해주고 왔어. 집에 가서 군대 있는 거보다 살이 더 타부렀으니까 말 다했지."
"그래, 네가 고생 많았다. 휴가라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겠네. 담엔 누나집에 와서 맛있는 거 먹고 쉬다가 들어가."
"그려, 누나~ 지난번에 본께, 울 조카들 밥 쪼까 먹고 남겨불고 그러던데…애들한테 쌀이 얼마나 귀한지, 고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누나가 좀 가르쳐야것어~ 누나도 밥 막 버리지 말고. 알긋제?"
"하하하. 그래, 알았다. 알았어."

오늘도 밥을 남긴 채 식탁을 뜨려는 큰 아이다.
"휘준아, 너 이렇게 밥 맨날 남기면 안돼! 이 쌀을 만들기 위해 농사 지으시는 분들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알아?"
아이는 뽀로통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엄마의 훈계가 그다지 맘에 와 닿지 않는 눈치다. 어제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나물반찬에서 시큼한 냄새가 올라온다. 날이 더워지니 금세 상한 모양이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나물반찬을 털어 넣으니, 아들이 그런 나를 보고 한마디한다.
 
"엄마, 그거 할머니가 시골에서 만들어서 보내준 거 아냐? 할머니가 힘들게 농사 지은 건데 그렇게 막 버리면 안 돼지~"
"그러게, 그런데 그게 맘 처럼 잘 안되네"

결국,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나로선 버리는 일이 도리어 익숙한 거 같다. 하지만, 환경을 위해서도 농작물이 내 손에 오기까지의 수고로움을 생각해서라도 좀더 아끼며 감사히 먹는 내가 되기로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