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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먼저 찾아 온 가을
베란다에 고추를 말리면서
2013-08-08 15:02:57최종 업데이트 : 2013-08-08 15:02:57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성희

힘들게 여름을 보내는 것 같지만 어김없이 올해도 우리 집에는 베란다에서부터 가을이 먼저 온 것 같다. 더위도 더위지만 날씨가 변덕스러운 탓인지 저녁부터 내린 비는 새벽에는 멈춤하고 새벽에 내린 비는 아침에 멈추고.

여름 장맛비라고 하기에는 금방 햇살이 방긋하고 내리 쪼이니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 하는 것 같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태양과 빗줄기라니.

그런 가운데도 우리 집에는 어느 날부터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는 일이 생겼다. 선배가 애써 키운 텃밭에 고추가 참 잘 영글었는데 그 농사지은 고추를 가끔씩 배달받느니 직접 가서 따는 재미로 꽤 괜찮고 또 따서 집에 놓고 보니 제법 양도 많기도 했다.

많은 양의 고추를 보니 이번 기회에 귀한 고추를 말려 보기로 했다. 가을 김장 김치 할 때 고추가루로 할 것이라는 야무진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 양이 얼마 되겠는가 마는 그래도 말리는 과정에서 나는 아주 오래 동안 우리나라가 농본주의 국가였고 또 지금도 농민의 손놀림과 정성이 우리들의 식탁위에 올라와서 여러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어 주는 역할을 하는 채소들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더 깊게 느끼게 되었다.

집에서 말리는 것은 별 어렵지 않지만 가끔 불어 닥치는 바람이나 장대 같은 빗방울이 베란다 틈사이로 들어오면 아이를 업어다 재우는 엄마가 아이가 깰까봐 조심하듯이 나 또한 그렇게 애지중지 말리던 일을 그만하고 서둘러서 큰 소쿠리에 담는다.

그리고 얼른 비가 그치기라도 하면 따뜻한 태양이 잘 보이는 곳에 돗자리 깔고 또 고추를 말린다.
며칠 시일을 보내고 보니 가위로 한 개씩 잘라서 말리면 더 잘 마르고 좋겠다 싶어서 매일 어느 순간부터는 아침마다 가위를 들고 베란다로 향한다.

고추 한 개씩 만지고 뒤집고 또 가위로 자르다 보니 어느 틈엔가 고추는 말라가고 있었다. 텃밭에서 홍고추 일때 따야 더 영양성분이 좋고 때깔 고운 고춧가루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지만 내게 있는 고추는 청 고추로 우리 집에 왔기 때문에 중간 작업은 태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주에 걸쳐 말리는 과정에서 우리 어른들의 농사짓던 그 마음도 느끼게 되었고 손수 만들어서 뒤척이는 작업을 아주 조심조심 고추들과의 무언의 대화에 나 또한 행복이 느껴졌다.

우리집에 먼저 찾아 온 가을_1
우리집에 먼저 찾아 온 가을_1

여름 지나면 가을인데 우리집은 고추가 붉어질수록 더 가을을 느끼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잘 먹겠지만 누군가 지은 농사가 헛되지 않도록 나 또한 정성껏 말린 홍고추를 잘 분쇄하여 맛있게 요리에 응용도 할 참이다.
 배추 잎사귀 한가득 떼어 내어 버무림도 하여 달달하고 아삭하게 겉절이 김치 만드는 여유로움도 부려볼 것이다.

텃밭 일구어 낸 그 선배님의 정성을 고이고이 모셔다가 우리 집 김치가 완성되면 한 접시 맛도 보게 해드리고 "이거, 선배님 농사지은 고추로 만든 김치예요" 하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내가 아는 분은 "집에서 말린 고추로 고춧가루 만들면 색도 곱고 맛도 좋아요."한다.
그리고 자신도 베란다에 말리고 있다고 한다. 홍고추 말리는 것은 군데 군데 보았지만 나처럼 청 고추로 홍고추 만들어 가루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분에게서도 살뜰함이 전달이 된다. 항상 나보다 연배이신 분들께는 그 어떤 말을 해도 조언을 주시는 것 같다.
무심코 던진 고추 말린다는 소리에 첨가해서 더 격려도 잘해주시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고 김장김치 계절도 아닌데 김장김치 생각에 벌써 우리 집은 정말 가을이 와 버린 것 같다. 아무리 무더워도 가을은 오듯이 자연의 정직함속에 나의 김치 솜씨도 정성껏 말린 고추들처럼 제대로 된 맛으로 여름도 잘 보내고 가을도 잘 맞이하였으면 참 좋겠다.

텃밭, 선배, 고추, 홍고추, 가을 고춧가루, 김장김치, 시민기자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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