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수원을 찾은 네팔의 두 학생
2013-07-31 10:32:10최종 업데이트 : 2013-07-31 10:32:10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신화박물관 관장이신 김봉준 선생님이 우리 부부를 위해 숙소를 정해놓았다며 머물고 가라신다. 아내도 신화박물관 분위기에 젖었는지 그러자고 했다. 저녁시간 미국에 연구자들과 재미교포 신화연구가, 제주, 강화 등의 신화연구자들과 함께 캠프파이어를 하고 나서 엄숙한 기원을 함께 했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염원을 갖고 산다. 하지만 그 모든 염원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은 평화로 귀결된다.

우리가 함께 한 기원은 평화였다. 평화는 모두에게 강렬한 염원이며 가장 평범한 공감을 일으키는 일이다.

인종과 나라, 성별과 나이를 떠나는 가장 아늑한 가장 부드러운 바람과도 같은 것이다. 숲 속에 작은 공감인 신화박물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평화가 실려 오는 것만 같다. 신화박물관에 "어머니 대지"라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노래가 걸려 있었다. 보고 또 보며 잠식된 여유도 영혼도 내가 그 글을 반복해서 읽는 만큼 맑아지는 것 같다.

수원을 찾은 네팔의 두 학생_1
신화박물관에서 만난 한국의 신들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아내

수원을 찾은 네팔의 두 학생_2
어머니 대지라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노래가 깊은 사색을 멈추지 않게 한다.

다음 날 아침 몇몇 연구자들의 주제 발표를 듣고 인사를 나누었다. 짧은 만남 짧은 1박 2일의 알차고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휴가였다. 낯선 산기슭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영혼을 맑힌 시간이었다. 아내도 네팔의 산중 마을에 온 기분이라며 좋아했다. 문막에서 수원까지 2시간은 걸렸다.

다음 날 아내의 일이 끝나고 얼마 전 팔달문을 둘러보았듯 새로 단장한 남대문 구경을 가기로 했다. 한국에 살면서 남대문을 가보는 일은 필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더구나 소실되었던 남대문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잃어버린 과거의 모습, 그러나 다시 세웠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규모는 커졌지만 과거 남대문을 볼 때와 같은 정적인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 국보 1호의 소실과 복원, 안타까운 한 시대가 물러난 느낌이었다. 잘 지키자.

수원을 찾은 네팔의 두 학생_3
팔달문에서처럼 새로 단장된 남대문에서 햇빛이 눈부신 날에 아내에게 국보1호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수원을 찾은 네팔의 두 학생_4
수원의 명물이라고 자랑해도 될만한 잡지 '사이다' 편집실을 네팔의 두 학생에게 소개했다.

네팔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카삼네팔레스토랑 꺼허르만 라이의 친구다. 그는 자신의 딸과 조카를 함께 데리고 왔다. 나는 특별히 시간을 내어 두 학생에게 수원 거리를 구경시켜주기로 했다. 화성박물관을 보여주고 화성구경을 시켜주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나는 '사이다'라는 잡지를 소개하기로 했다. 후일 두 학생이 어른이 되고 나면 자신들의 고향이나 카트만두에서 '사이다' 같은 잡지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먼저 편집실에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았다. 수원의 거리를 걸으며 아는 상식만큼 안내를 해주고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이제 20세 청년인 두 사람이 처음 찾은 한국, 처음 맞는 수원의 거리 그리고 수원의 역사에 대해 아는 만큼 소개를 했다. "사이다"에 찾아가 이 책은 어떤 책인지 소개를 하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맛있는 토마토를 나누어먹기도 했다.

짧은 시간 만난 그들의 시간이 소중하고 알찬 기억으로 남기를 기대해본다. 그들이 한국에서 보낼 시간 한 달 동안 무엇을 보게될지 또 무슨 꿈을 간직하고 돌아갈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갖게 될 경험과 특별한 일상이 네팔의 친구들과 네팔인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자산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신화박물관, 김봉준, 평화, 네팔 학생, 꺼허르만 라이, 사이다, 김형효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