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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발집에서 알바하면 이미지 떨어져?
새내기 아르바이트생 큰딸 훈육기
2013-07-16 09:18:32최종 업데이트 : 2013-07-16 09:18:32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엄마, 오늘은 어떤 손님이 나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이미지 떨어지니 이런 곳에서 알바하지 마세요!'라고 했어요. 왜 제가 일하는 곳이 이상한 곳이예요?"
딸아, 미안하게도 참, 나도 그렇게 생각했단다. 세상에 많고 많은 가게 중에서 닭발 집 서빙 아르바이트가 뭐니!

큰아이가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무엇이 그리 쓸 돈이 많은지! 한 달 용돈을 주다가 경제개념을 가르친답시고 하루에 필요한 교통비와 간식비를 포함해 주당 용돈을 통장으로 넣어 주었다. 그리고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시작되자 주던 용돈을 확 끊어버렸다. 본인이 쓸 돈은 이제 본인이 알아서 해결해 보라면서.

한통의 문자가 왔다. '엄마, 저 내일부터 아르바이트 시작합니다.'  '어디?' '아네, 우리 동네 삼촌네 닭발집이라고...' '뭣이라, 커피숍도 아니고 햄버거 가게도 아닌 닭발 집? 거기는 술도 파는 곳이잖아. 그러지 말고 엄마가 아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면 어떻겠니?'

닭발집에서 알바하면 이미지 떨어져?_1
큰 아이 고등학교 졸업식을 엊그제 한것 같은데, 반년사이 어른이 되어버렸다(사진 맨 오른쪽)

큰아이가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시급이 5천원이란다. 여타의 곳은 4천 원 선이라는 변명을 하는데 내가 보기엔 다른 이유도 존재하는 듯했다. 엄마들이 생각하는 수준과 대학생 또래의 사고방식엔 레테의 강만큼이나 간극이 있는 것처럼.

"엄마 이제부터 부엌일 가르쳐 주세요. 어제 유독 손님이 많아 사장님이 대파를 다듬으라고 줘서 껍질을 까서 드렸더니 완전 놀라더라고요. 제가 파 밑 부분 하얀색을 모두 잘라내 버렸거든요. 그래서 제가 집에서 귀하게 자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참 창피했어요."
밥 짓는 방법이나 집안일을 한 번도 안 시켰으니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저녁7시부터 자정까지라니 꽤나 늦은 시간이다. 그렇지만 스무 살, 뜻을 세우는 나이이니 '잘할 것이다'라며 내심 다짐해보지만 못미더운 것이 현실이다.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며칠 전에 사장 만나고 왔단다. 그리하여 어젯밤 잠행에 나섰다. 이놈이 잘하고 있나, 밖에서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밤 8시가 지나갈 무렵 닭발집 앞을 서성이는데 아이가 안 보인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놈이 또 엄마가 찾아왔다고 창피하다며 얼굴을 붉히면 어떡하나, 갈등이 일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내 몸은 이미 가게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저기요~ 00이 어디 갔어요?" 목소리가 들렸는지 큰아이가 저쪽에서 불쑥 나온다. 가게가 직사각형으로 길다보니 카운터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 
그런데, 세상에나 아르바이트하러 나간 녀석이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가게 주인장 얼굴을 보니 미안하고, 그런데다가 8시가 지났는데도 손님이 한 테이블에도 없으니 그냥 돌아서기에 뭣해 자리에 눌러 앉아버렸다. 따끔하게 야단도 칠 겸해서. 
"학생. 여기 매운 닭발하고 생맥주 한잔 주세요!"

딸아, 너는 아무리 아르바이트라고 하지만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시급제를 받기로 했다면 열심히 일을 해야지 그렇게 앉아서 음료수 마시고 폰만 만지면 되겠니. 내일부턴 가게 오자마자 핸드폰은 가방에 넣고 바닥을 닦던지, 싱크대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던지 해라. 저기 테이블 위에 먼지 봐라. 사회생활의 기본은 신뢰와 책임감이란다. 그래야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단다.

"엄마 손님이 없는데, 뭐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장님이 음료수는 마음대로 꺼내서 먹으라고 했어요!" 
아니고! 이놈이 사회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맥주를 또 한잔 시켰다.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기본적인 예의를 단단히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손님도 없었고.

바야흐로 9시, 생맥주는 이미 석 잔을 넘어서고 있었다. 술 마시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가 이날은 제지도 안했다. 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눌 즈음 한 무리의 청춘남녀가 가게로 들어선다. 알고 보니 아이의 친구들이다. 행여나 나 때문에 그들이 불편해 할까봐서 가게 끄트머리에 앉으라고 했다. 곧이어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과 몇몇의 사람들도 들어온다. 난 계속 한자리를 고수하며 아이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런대로 잘한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니 빡시게~ 시키세요. 그래야 배우니까요."
"얘들아 너희들 건전하게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너는 어느 학교 다니니? 고등학교는?"
처음에는 아이 얼굴만 보고 오려했는데, 뜻하지 않게 마신 술로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제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주인장에게 아이 좀 잘 부탁한다고 하고, 아이 친구들에게는 의리 있는 행동이 중요하다며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두 테이블에서 먹은 음식 값을 아이 몰래 계산하곤 집으로 향했다.

"엄마~ 집으로 잘 가고 계신 거죠?"
"그래 거의 다 왔다. 덕분에 즐거웠다."
"에이 뭘요. 저도 닭발 먹고 싶었는데 엄마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이 정도면 사회에 나가도 잘 살겠다 싶었다. 취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새내기 아르바이트생 훈육하다 본의 아니게 내가 취해버린 하루다. 그러면 어떠랴. 아이가 저렇게 잘 커 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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