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친정아빠가 남겨둔 빈 빵 봉지를 보며
2013-07-16 23:53:19최종 업데이트 : 2013-07-16 23:53:19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친정아빠가 남겨둔 빈 빵 봉지를 보며_1
내가 하는 모습 그대로를 아이들이 배운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겠다

늦은 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메일 확인을 위해 들어온 책상 방.
친정 아버지가 온라인 장기 게임을 두고 간 책상 한 켠에 빈 빵 봉지가 딱지모양으로 접어진 채 버려져 있었다. 
 
오늘 낮에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하원 하면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아우성이었다. 한 끼 식사에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그곳에서 이것저것 골라가며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것에 흠뻑 빠진 6살배기를 설득하는 것은 엄청난 설전이다. 
 
"세정아, 니 아들 유치원에서 나오자마자 거기 간다고 하더니 1층에서 기다릴 테니 엄마 내려오라고 한다. 어쩔래?"
 친정 아버지는 손자 녀석을 한창 설득하다 못해 빌라 2층인 우리 집에 혼자 올라오셔서는 어서 내려가보라고 나를 채근하셨다. 결국 우리는 집 앞에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가기로 했고 동시에 내 머릿속엔 계산기가 굴러갔다.
 
"아빠도 가실래요?"
"나도? 아니다, 거기 돈이 얼만데!! 나는 그냥 있을란다~"
"아니, 그런 말은 마시고 갈 생각이 있으신지 어떤지만 말씀하세요."
"나는 안가. 여기 오기 전에 잘 먹고 와서 안 먹어도 돼. 그런 데 갈 때는 미리 하루 전에 말해야지~"
"아니, 뭐 애가 땡깡 놔서 가는 걸 무슨 하루 전에 얘기해요……"
 
괜히 친정 아버지께 짜증을 내면서 굳이 아버지를 설득할 생각도 없이, 큰 아이와 이제 22개월 된 딸 아이를 챙겨 길을 나섰다. 어린 아이 둘이나 친정 아버지와 같이 가면 챙기기가 수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난번 같이 가봤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아버지가 생각보다 아이들 챙기는 것을 힘들어하셨다. 
 
'어차피 음식 생각도 없으시다니, 그냥 나 혼자 가서 애들 챙기며 먹여야겠다.' 
다행히 오늘따라 두 녀석 모두 점잖게 잘 따라줘서 이것저것 음식을 날라서 먹는 일이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들을 보자, '아버지도 오셨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계산서를 들춰봤다. 순간, '그래, 그냥 안 오시길 잘했다. 아까 뭐 배부르게 드시게 오셨다니까, 성인 1명이면 얼마가 더해지냐~ 됐다, 됐어.'하는 몹쓸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어차피 오셔도 아이들 챙겨주는 일이 힘드시니 결국 내게 도움 될 일이 없다는 생각에 그냥 애 둘과 나만 오길 잘했다고 만족했다.
 
먹고 싶었던 스프, 아이스크림, 새우, 피자, 치킨 등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큰 아이와 쌀국수와 스파게티를 맘껏 '흡입'하는 작은 아이를 보면서 '그래, 큰 애 너는 반값이고 작은 애 너는 공짜니까 이 정도면 본전 뽑는 거구나.'하며 기쁘게 사진 한 장을 찍어 남편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ㅋㅋㅋ 신났네, 그런데 장인 어른은?"
"응, 그냥 애 둘만 데려왔어. 아빠는 배부르시데~ 애들이 이 정도로 먹는 거 보니까 본전 뽑고 가는 거 같아.ㅋㅋㅋ"
"아버지는 그럼 가셨어?"
"아니, 집에서 장기 두고 계셔. 준이 픽업하고 남는 시간 그게 낙이시잖아~ 좀 있다 비오면 자전거 타고 가기 힘들다고 장기 조금만 두고 금세 가신다던데….."
"에이, 그래도 아버님 모시고 가지 그랬냐~"
"아냐, 됐어."
 
2시간 넘게 맛있는 음식들을 흡입하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
"할아버지 집에 가셨을까?"
"아마, 그럴 걸?"
"엄마!! 할아버지 안 가셨네~"
 
현관에 아버지의 검은 샌들이 팔자모양으로 서있었다. 아빠는 아직 온라인 장기 삼매경 중이셨다.
"우리 손주들, 잘 먹고 왔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빠도 가시지 왜 안 가셨어….."하고 말 끝을 흐렸다.
"아이구, 내가 가면 돈이 얼만데…."
 
사실, 그 얘기가 더 듣기 싫었다. 아까는 그냥 배불러서 안 가신다더니 또 돈 얘기를 구차하게 하시는 거 같아서.
사실은, 오늘은 중복할인이 가능한 날이라서 다른 때보다 싼 날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도 하기 싫었다. 정말 못 돼먹은 일이지만, 아버지랑 같이 동행하는 게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시고 아이들을 모두 재운 후 들어온 책상방에서 아버지가 먹고 남겨둔 빵 봉지를 보면서 나의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빠도 배가 고프셨구나. 장기를 두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패밀리 레스토랑 음식들을 머리에 떠올리고 계셨겠구나.' 
 
딸 네 집에 매일 오시면서도, 우유 한잔, 주스 한잔 맘대로 드시지 않는 양반이 식빵 두 조각 남은 것을 꺼내 드신 것을 보니 죄송한 맘이 밀려왔다. 그 돈 몇 푼이나 아낀다고, 친정 아버지가 매일 이 더운 날씨에 우리 아이들 봐주시겠다고 달려오는 그 마음에 감사하기는커녕 그저 받는 것은 당연히 하고 아빠가 그냥 하시는 말씀 진심이겠거니 모른 척 하며 "그럼 알겠어요, 말아요~"하고 내 애들 뱃속만 챙기려 나갔는지 너무나 죄송스러워졌다.
 
아빠, 미안해요. 고혈압으로 일 못하시게 되고 엄마가 번 돈으로 살아야 하니 많이 위축되어 있는 아빠를 좀더 기 살려드리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이렇게 아버지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대한 거 같네요. 앞으로 그러지 않을게요. 아빠는 그래도 내게 힘들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나와 가장 많이 말이 통하는 친구 같은 아빠라는 사실, 잊지 말아요. 앞으로 좀더 따뜻하고 좋은 딸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미안해요, 아빠. 우리 다음 번에 단둘이 거기 가서 데이트해요. 사랑합니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