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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직장 동료의 귀천 소식을 듣고
2013-07-01 13:25:41최종 업데이트 : 2013-07-01 13:25:41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그가 위암이라고 한 달 전에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하여튼 언젠가는 올 수도 있었던 일처럼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기라는 소식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것은 1년쯤 전 봄 정기 모임에서였다. 첫 직장이었던 회사를 퇴직하고도 한참 후에 여직원들의 모임이 만들어졌고 훨씬 뒤에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던 같이 부서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의 모임이었다. 

꽃다운 20대 초반을 함께 보냈던 직원들은 20년 가까이 지난 후에도 금방 그 시절로 돌아갔고 삶의 무게로 알아보지 못할 만큼 인상은 약간 변한 동료도 있었지만 그처럼 회사를 퇴직하고 난 후의 성공 가도가 빛나는 사람도 없었다. 
중년의 풍채를 느낄 수 없는 단단한 외모와 자신감 넘치는 말솜씨가 젊은 날 빈틈 많고 어리숙한 그가 아니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복스럽게 음식을 먹는 모습이었다. 

그가 처음 입사를 하고 우리 사무실로 배치 받았을 때 타부서를 돌며 내 손으로 한사람 한사람 소개시켜 주었었다. 피부는 아프리카 토인처럼 까맣고 외모는 씨름 선수처럼 통통했었다. 
인사 받는 사람마다 씩씩하고 성격 좋은 웃음에 환영 받았고 그날 함께 점심시간 직원 식당에서 그의 인상을 "먹는 것 참 좋아해"로 인상을 굳혀 버린 신입사원이었다. 그 이후로 "솥에서 나온 것은 다 먹는다"는 별명이 붙어 다녔고 건강한 직원의 대명사처럼 불려 졌었다. 

내가 퇴사한 후에 그가 옆 부서 여직원과 사내 결혼을 하였으며 드문드문 그의 사업수완이 좋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있었다. 그 때마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고 예전보다 훨씬 멋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달 전 갑작스런 모임 공지를 받았을 때 이런저런 핑계로 불참 회신을 보냈었다. 그리고 모임이 있던 며칠 전에 다시 많은 참석 바란다는 단체 채팅 문자를 받았었다. 
그때 그가 위암 3기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날짜도 그가 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닉네임은 튼튼한 사나이였고 건강의 대명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암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토요일 오후 매번 만나던 수원역 근처 식당에서 다시 옛 동료들 만났다. 경기도 일원에 사는 동료들은 물론이고 울산에 사시는 분도 일찌감치 와 있었다. 
총무 역할을 하는 언니가, '그는 갑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되어 응급실에 입원하여 불참한다'고 전했다. 이번 모임은 그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 동료들을 보고 싶다하여 성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반갑게 만난 동료들은 침울해 했고 모두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온 동료가 소주 한 컵을 단숨에 마시고 침울하게 다른 소식을 전했다. 
어제 문병 갔다가 그의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병원에서 그의 이승에서 삶이 한 달 정도 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내일은 본인에게도 정리 할 시간이 필요하다 싶어 내일 정도는 말해야겠다고 했단다. 

당장 가서 얼굴이라도 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의 마음 정리하는 시간을 주자는 의견에 따르기로 하고 동료들 끼리 각자 문병 날짜에 맞춰 함께 가기로 했다. 

모임이 지나고 다시 그를 보기 위하여 일산 암센타를 방문했다. 건장했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지만 사람 좋은 미소는 그대로였다. 담배를 끊지 못한 옛 동료에게 금연을 권유하고 야만인이라며 농담까지 하였다. 

그리고 지난 주말 저녁 귀천을 알리는 부고를 받았다. 한 달 시한부에서 절반을 잘라먹은 보름만의 일이다. 마침 그 날 문병 갔던 동료의 소식에 의하면 '눈도 뜨지 못하고 제대로 숨도 가누지 못했지만 좀 더 오래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면서 안타까운 마지막 그의 모습을 전했다. 

옛 직장 동료의 귀천 소식을 듣고 _1
옛 직장 동료의 귀천 소식을 듣고 _1

젊은 20대를 5년 이상 점심 저녁을 함께 먹었던 동료이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때 그는 성공한 사업가였고 존경받은 아버지였으며 사랑받는 남편이었다. "그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슬슬 쉬어 가면서 살아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었다.

요즘 나이 오십이면 청춘이다. 그 나이는 우리들의 아이 아버지고 남편의 나이기도 하다. 암으로 세상과 이별하는 소식이 점점 자주 들린다. 장난기 많았던 남자 아이었던 중학교 동창도 그랬고 친정 앞집에 살았던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살던 친구도 늙은 부모를 남겨두고 귀천했다. 

재수 없으면 120세까지 살아야 한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를 풍자하여 하는 말이다. 또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한다. 
사람 사는 일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다가 올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알차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세상이 너무나 잔인하고 아무것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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