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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녕사에서 진리의 향기 맡다
2013-06-07 13:08:04최종 업데이트 : 2013-06-07 13:08:04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해가 서산에 걸리기까지 무한정 기다릴 순 없다. 이미 마음먹고 봉녕사를 찾아간 시각이 오후2시였으니 기다리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었으므로.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한여름 햇빛에다가 나무그늘 하나 없는 입구에서 '좀 늦게 올 걸 그랬나'하는 후회를 했다.  그래도 어찌하라. 이미 한발은 턱하니 일주문을 향해 들어섰으니.

봉녕사에서 진리의 향기 맡다_1
봉녕사에서 진리의 향기 맡다_1

지난해 초봄, 마음을 다스리려 찾은 봉녕사는 아직 한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래도 산문에 들어서면서 느껴지는 봄 향기와 절간의 푸근함에 달달한 행복감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1년하고도 2~3개월이 흘렀다. 벽화며 가람 곳곳의 건물들이 여전히 화려하다. 단지 계절에 따른 초목의 빛깔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게 느껴지는 절집의 품격이 있다.

'(전략)/ 사바인연 법의 향기/ 온누리에 뿌리고서/ 바람되어 떠나신 님/ 허공되어 영원하라/(후략)'
본각 스님께서 2011년 12월에 열반하신 묘엄 스님에게 바치는 조시(弔詩) 일부다. 묘엄스님은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또렷한 족적을 남기신 청담스님의 딸이자 성철스님의 제자로서 지금의 봉녕사를 승가대학으로 조성함과 동시에 불사를 일으키신 분이다. 

지난해, 그곳에 다녀온 후 스님의 삶을 담은 '회색 고무신'이란 책을 만나 단숨에 독파했다. 1931년 진주에서 태어나시어 속가와의 인연을 끊고 출가하시기까지, 스님의 구술로 탄생된 책속엔 사람과의 인연, 갈등, 인간적 고뇌 등 부침이 드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불자가 아닌 자로서 정말로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는 단 하나다. 일생동안 치우친 삶이 아닌 올바른 눈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스님의 불심이 오롯이 느껴졌기에 지금 이 시간에도 절절히 다가온다.

봉녕사에서 진리의 향기 맡다_2
봉녕사에서 진리의 향기 맡다_2

구렁진 길, 잘 가꿔진 화단, 아롱진 연못, 800여년의 연혁을 지켜본 향나무.... 게(偈)를 지키고 전하고자 했던 스님의 목소리가 처처에서 묻어나온다. 
이곳을 찾은 불자들 역시, 내리쬐는 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적광전, 용화각, 약사보전에 들러 쿨럭쿨럭 불심을 토해낸다. 도량에 흐르는 견고한 신심들이 '나를 낮추라'는 배움을 가르친다.

봉녕사에서 진리의 향기 맡다_3
봉녕사에서 진리의 향기 맡다_3

평온한 시간이 이어지면서 마음과 몸 매무새를 다시금 가다듬는다. 본존 비로자나불을 만나고, 석조삼존불과의 만남도 잊지 않는다. 
뒷마당으로 나가 내게는 어렵고 난해한 불교 경전을 해석한 벽화들에 눈길을 준다. 신의 솜씨에 가까운 단청장의 솜씨다. 그 화려한 솜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불교의 심오한 진리에 감응되기를 기대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다 귀한 풍경과 마주한다. 연꽃 한 송이와 이웃하며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는 무지개가 용연 한가운데 떴다. 설렁설렁 걷던 발걸음이 절로 멈춰지고 햇빛에 절반 이상 감겼던 눈이 화들짝 커진다.  

저 멀리 한 되의 쌀을 들고 친구와 걸어오는 어여쁜 여인들이 보인다. 한 여인은 뽀족구두에 오렌지색 저지 원피스 위에 시폰 가디건을 걸쳤고, 또 다른 여인은 바지 차림새지만 선글라스에 푸른색바탕 꽃무늬 스카프를 둘러 제법 세련된 매무새다. 
다소 화려하지만 절집의 장식물과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삼라만상 상생하기를 가르치는 부처님의 가르침 때문이리라.

봉녕사에서 진리의 향기 맡다_4
봉녕사에서 진리의 향기 맡다_4

한여름은 아니되 이미 한여름에 와 닿은 뜨거운 날씨는 걷는 내내 땀을 흐르게 한다. 그래도 바쁜 세상에서 잠시 쉬어가기위해 들른 절집은 '쉼표' 한번 찍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선원· 강원· 율원 모두 갖춘 수련도량으로 자리하기까지 무언으로 역사를 바라본 봉녕사의 상징 향나무와 사찰을 안내하는 수많은 연등들도 그렇게 속삭인다. 
진리의 향기는 모두의 마음속에 있으니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아보라고. 하늘을 향해 무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초목들도 떠나가는 속인에게 '힘내라'고 한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간간이 절집을 찾는 이유다. 비움 속 생활! 봉녕사의 여운은 당분간 이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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