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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 발길 끄는 봉녕사 석조삼존불상
건물 짓기위해 터 닦던 도중 출토…먼저 가신 분 극랑왕생 빌어
2019-08-16 22:16:32최종 업데이트 : 2019-08-17 12:52:07 작성자 : 시민기자   하주성
경기도유형문화재인 봉녕사 석조삼존불이 모셔진 용화각

경기도유형문화재인 봉녕사 석조삼존불이 모셔진 용화각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248번지에는 비구니의 요람이라는 봉녕사가 자리한다. 봉녕사는 비구니 승가대가 있는 절이다. 봉녕사의 용화각에는 고려중기의 석불로 보이는 석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석조삼존불상은 대웅보전 뒤편 언덕에서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닦던 도중에 출토됐다고 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된 석조삼존불상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있다. 불상과 연화대좌는 각각 하나의 석재로 조성했는데, 모래가 많이 섞인 화강암으로 제작됐다. 삼존불 모두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는데, 이는 오랜 시간 땅 속에 파묻혀 마모가 된 것으로 보인다.

16일 오후, 봉녕사를 찾았다. 전날 찾아가려했지만 15일은 우란분절이라 봉녕사를 찾아오는 신도들 때문에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 용화각에는 접근조차 쉽지 않을 것 같아 뒷날인 16일을 택한 것이다. 봉녕사 경내로 들어서니 '사진촬영금지'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사진촬영을 했으면 이렇게까지 현수막을 걸어 알리고 있는 것일까?용화각 안에 모셔진 석조삼존불은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로 조상하였다

용화각 안에 모셔진 석조삼존불은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로 조성됐다

먼저 봉녕사 업무를 관장하는 종무소를 찾았다. 종무소 근무자에게 삼존불 촬영을 하기위해 왔다고 설명한 후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남자 한분이 들어와 "무슨 일로 삼존불을 촬영하려 하느냐?"고 묻는다. 문화재 소개를 위해 촬영하겠다고 했더니, 용화각으로 안내했다.

"용화각(龍華閣)의 명칭을 용화전이라고 해야 하는데 용화각에 붙인 명칭을 바꾸겠다고 했더니, 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후에는 바꿀 수 없다고 해서 용화전으로 고치지 못했어요." 관리를 하는 분의 설명을 듣고 용화각 전경을 한 컷 촬영한 후 용화각 안으로 들어서 삼존불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메라가 아닌 휴대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가보다. "카메라는 플래시를 써야하기 때문에 삼존불에 피해가 갈수도 있어 휴대폰으로 촬영을 한다"고 설명하니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기자는 처음 보았다"며 웃는다.중앙에 모셔진 본존불은 좌불로 조성하였다

중앙에 모셔진 본존불은 좌불로 조성됐다

삼존불의 중앙에 좌정하고 있는 본존불은 석조여래좌상으로 얼굴모습은 원만한 편이다. 그저 편안한 느낌을 받게 하는 본존불의 머리 부분은 파손됐으며 눈, 코, 입 부분은 심하게 마모되어 희미하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오른쪽 어깨가 노출된 우견편단으로, 법의의 주름도 상당히 도식화 되어있다.

오른손은 무릎에 놓고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는데 부자연스럽게 조각됐다. 석불의 밑을 받치고 있는 좌대인 연화대는 일석으로 2단으로 됐으며, 가운데가 잘록하고 아래 위가 넓게 조성됐다. 연화대 위편은 커다란 앙련을 조각했는데 사이가 너무 벌어지게 잎을 조성했다.

본존불의 좌우에 서 있는 협시불의 얼굴 형태는 원만한 편이나 각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정확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협시보살의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가린 통견으로 조성을 됐는데 마모가 워낙 심해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협시불은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내리고 있으며, 원추형의 대좌에는 연화문이 섬세하게 조각돼 있다.좌우 협시불은 보살입상으로 조성하였다

우 협시불은 보살입상으로 조성됐다

용화각에 모셔진 석조삼존불은 모두 평평한 느낌을 준다. 조각 기법이나 각 부분의 형식과 표현 수법이 도식화 되어 있다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존불 모두 전체적으로 표현기법 등이 동일해 한 사람의 장인에 의해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봉녕사 석조삼존불. 모두 정확한 형태를 알아보기는 어렵다. 땅에 묻혀있던 삼존불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불자들에게는 이 삼존불이 예사삼존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기자 역시 생활을 하다가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봉녕사를 찾아가 석조삼존불 앞에 머리를 조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제는 백중이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용화각을 찾아와 아마 사진촬영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관리자의 설명이 없다고 해도 15일이 백중일임을 알고 다음날 찾아간 것이다. 음력 7월 15일을 우리는 흔히 '백중일(百中日)' 또는 '백종일(百種日) 이라고 부른다. 백중 때가 되면 채소와 과일 등을 수확할 수 있는 시기로, 100가지 과실이 나온다고 하여 백종(百種)이라고도 했다. 이날을 망혼일, 중원일(中元日) 혹은 불가에서는 '우란분절'이라고 부른다. 우란분절에 불가에서는 하안거를 해제하고 망자들을 위한 제를 올린다.봉녕사 석조삼존불은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청한다

봉녕사 석조삼존불은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우란분절'의 내력은 이러하다. 예전 목련존자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지옥에 있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부처님은 백가지 과일과 꽃을 차려놓고 스님들을 청해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주라고 일렀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대덕스님들을 모셔 우란분회를 열어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란분절에는 모든 절에서 재를 올린다. 세상을 먼저 떠난 영가를 천도하는 의식이다. 다음날 찾아갔지만 마음속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고개를 숙인다. 봉녕사 석조삼존불을 돌아본 후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먼저 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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