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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살 많으니 형이라고 불러
'나이가 깡패'인 우리나라, 이젠 어린아이들까지?
2012-08-22 07:59:41최종 업데이트 : 2012-08-22 07:59:41 작성자 : 시민기자   김기봉
내가 한살 많으니 형이라고 불러_1
내가 한살 많으니 형이라고 불러_1

지난 일요일 저녁 이른 시간에 식사후 바람좀 쏘이려고 나간 길에 터벅터벅 걷다가 아이들이 노는 근처 놀이터까지 가게 되었다.
시간이 오후 5시정도 밖에 안되어 아이들이 집에 안 들어가고 여전히 밖의 놀이터에서 많이 놀고 있었는데 그중에 몇 명이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보였고, 배드민턴을 치는 아이, 공을 차는 아이, 거미줄 놀이터에서 그물 같은걸 타면서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노라니 바로 옆에서 초등학교 4, 5학년쯤 되보이는 아이 둘이 대화하는 내용이 들려 고개를 돌렸다.
아주 짧은 둘의 대화였는데 무척 인상 깊었다.
"너 몇학년이냐?"
"나? 3학년"
"그럼 10살이지?"(계산도 무척 빨랐다)
"응. 10살 맞어..."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있을수 있는 대화였다.
 그리고 다짜고짜 "너 몇학년이냐"고 먼저 말을 건넨 아이는 덩치가 좀 컸는데 이 아이가 한 말,
 "나, 4학년이거든 11살이야. 나한테 형이라고 불러."
 아이의 요지는 바로 그거였다. "나한테 (까불지 말고 이젠 앞으로) 형이라 불러"그거 말이다.

우리 주변의 아이들이 비슷한 또래의 다른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너 몇 살이냐?" 였는데 역시 그 뒤에 따라오는 말도 이런 목적이 강하다. 위아래를 분명히 구분 짓고 가자는 뜻이다. 
그러고 나서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적은 아이가 많은 아이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세계에서 위계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두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런 풍토는 정말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가 싶었다. 
이런 모습을 대할 때마다 참으로 가소로우면서도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보여준 말의 세계가 아니겠는가! 

지금은 조금 덜할지 모르지만 2000년대초, 시민기자가 회사 일로 스위스에갔을 때 그곳 사람들로부터 적잖게 들은 말은 유럽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한국사회가 매우 폭력이 일상화된 무서운 나라라는 이미지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내 나름대로 치안이 상당히 잘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나로서는 무척 충격적인 말이었다.

숨이나 좀 돌리러 나갔던 어이들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하는 말을 듣고 이때의 일이 떠오른건 서로간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크게 히트를 쳤던 영화중에 '넘버3'가 있었고,  현재까지 봇물 터지듯 넘쳐나는 조폭영화들을 통해 학생들은 욕설을 배웠다. 성인들은 은근히 조폭세계에 대한 지나친 미화를 보여주었다. 

그러니 외국인들은 당연히 한국의 모습을 조폭이 지배하는 나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수많은 조폭영화가 제작되고 흥행을 거둔 데에는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이 조폭체제로 이루어져 돌아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1등이 아니면 2등부터는 모두가 패배자인 사회, 형님(대장)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이 상명하달식의 폐쇄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조폭사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폭력과 협박, 공갈이 벌어지는 사회, 이것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조폭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언어의 폭력성에 있다. 언어의 대부분이 반말과 욕설이다. 
대장 밑으로 모든 부하들이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존댓말을 해야 하지만, 대장은 시종일관 반말과 욕설로 일관한다. 

중학교 영어 수업시간에 "미국 사람들은 예의가 없다.  아버지나 어머니와 얘기할 때도 너, 당신(you)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면서 영어에 높임말이 없음을 빈정대시던 어떤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정말 그럴까?  
군대에서 '계급이 깡패'라는 말은 사회에서 '나이가 깡패'라는 말로 바뀐 것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서로에게 존댓말을 할 수는 없을까. 물론 나이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더 공손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나이를 따져서 반말부터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존댓말을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배려나 존경의 마음을 유지하다보면 우리 사회가 언어의 폭력으로 인해 삭막해지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어린애들까지 나이 따져가며 "형이라고 불러"하는데는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어졌다.
이런 계급적, 상명하달식, 조폭같은 문화, 어른들이 고쳐야 아이들도 배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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