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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능행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요원'
화성행궁에서 대황교까지…참가자에게 정체성 심어줘야
2018-10-08 17:10:33최종 업데이트 : 2018-10-29 09:11:34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정조대왕 능행차는 1975년 제12회 화홍문화제(현 수원화성문화제) 때 수성고등학교 이홍구 선생에 의해 최초로 복원됐다. 1976년부터 문화제가 열릴 때마다 수성고 한 학년 전체가 동원됐고 1978년에는 인천에서 열린 제59회 전국체전에서 정조대왕 능행차가 펼쳐져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1981년에는 2학년 학생 모두가 능행차 연시를 위해 팔자걸음 걷는 연습을 했었는데 나도 그때 깃발을 드는 역으로 능행차에 참여했다. 

'정조대왕 능행차'에 대한 기록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송지대에서 만석거를 거쳐 장안문 팔달문까지 행차를 하던 기억이 난다. 기록영화를 만든 주체가 어디인지를 몰라 그때 찍은 기록영화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당시에는 타의에 의해 동원된 불편한 기억만 있지만 세월이 흐르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고 누구보다 정조대왕 능행차에 애착을 갖게 됐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의 효(孝)를 위한 행렬인 2018 정조대왕 능행차가 6일부터 2일간 성대하게 펼쳐졌다. 정조대왕이 1795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양력 3월 29일 - 4월 5일) 아버지가 잠들어있는 현륭원을 방문하고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열기 위해 수원으로 대규모 행차한 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정조대왕 능행차는 수원화성문화제 기간에만 펼쳐졌었는데 2016년에는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까지, 2017년에는 창덕궁에서 수원을 거쳐 화성시 융릉까지 전 구간에서 재현됐다.

1795년 윤2월의 화성원행은 창덕궁을 출발해 배다리를 건너 시흥행궁에 도착해 1박을 하고 다음날 화성행궁까지 꼬박 1박 2일의 여정이었다. 현재 전 구간에서 정조대왕 능행차를 재현하려면 서울시, 안양시, 의왕시, 수원시, 화성시의 경계를 넘어야 한다. 구간이 바뀔 때는 '정조대왕 표식기'를 교대하는 방식으로 행차를 이어간다. 한 팀이 전 구간을 1박 2일 재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재현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이번 정조대왕 능행차는 6일 첫째 날은 서울구간인 창덕궁을 출발해 한강 배다리를 건너 시흥행궁까지 21.2km 구간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쳐 창덕궁에서 출궁의식만 가졌다. 비가 그친 오후가 되어서야 노들나루공원에서 시흥행궁까지 정조대왕 능행차가 펼쳐졌다.

7일 둘째 날은 수원구간인 금천구청을 출발해 노송지대, 종합운동장, 연무대까지 26.4km 구간과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까지 5.9km 구간, 화성구간은 대황교동에서 융릉까지 7.4km 구간에서 열렸다. 서울 창덕궁에서 시흥행궁, 안양, 의왕, 수원을 거쳐 융릉까지 총 59.2km 구간 중 일부 구간은 취소된 상태로 진행돼 전체 구간에서 재현하지는 못했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1795년 윤2월에 있었던 화성원행인 정조대왕 능행차를 전 구간에서 재현하려면 한강에는 배다리 310m가 설치돼야 하지만 제25호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배다리가 설치되지 못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일부 구간이 취소되는 등 어수선했지만 가을날씨 청명한 7일 오전에 수원구간인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까지의 정조대왕 능행차를 동행 취재했다.

7일 아침 9시 화성행궁 광장에는 말을 탄 장용영 군사들, 창과 깃발을 든 군사, 악기를 든 악대들이 정조대왕의 출궁의식을 대기하며 행렬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조대왕이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를 통해 입장하자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축시를 낭송했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아아, 만세토록 왕업을 이어 조선이어 무궁하게 번창하소서. 성상께서는 자궁의 회갑 년을 맞이하여 아버지 능에서 수연을 베푸시도다. 그 효심을 보고 백성들은 감복하도다. 능 곁에 높은 성채를 세운 뜻은 능의 고장을 지켜 나라와 백성을 함께 지키려 도모하심이로다...'  

출궁의식은 9시에 예정돼 있었지만 15분에 정조대왕 입장, 18분에 축시 낭송을 했는데 20분에 스피커에서는 "정조대왕 께서는 행렬 위치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무엄한 말이 나왔다. 재현의 진정성이 있으려면 재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소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실제 인물처럼 존중하고 언행을 삼가야 한다. 이 행렬의 목적지는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지점인 대황교동 다리까지 약 5.9km 구간이다. 10시 10분 경 상류천 표석을 통과했고 11시 6분경 대황교동에 도착했다. 다리에서 정조대왕 표식기를 화성시 팀에 인계하고 능행차를 마무리했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지난해에는 정조대왕만 행렬에 참가해 단출했었는데 그나마 올해는 혜경궁홍씨, 청연군주와 청선군주도 합류해 볼거리가 있었지만 주구장창 걷기만 하는 행렬에 무슨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노송지대부터 종합운동장, 종합운동장부터 연무대까지의 메인 행렬에만 집중해서는 전체적인 정조대왕 능행차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능행차 행렬에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끼어들어 물어보니 스텝이라고 했다. 말을 탄 사람 몇 명에게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느냐고 물어보니 모른다며 행렬 순서만 알고 있다. 능행차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증에 충실 하는 게 우선이지만 행렬에 참여하는 사람이 능행차의 정체성을 알고 있어야한다. 스텝도 능행차 행렬의 일원으로 복식을 갖추고 참여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1795년 윤 2월 12일 현륭원 행차시에는 화성행궁에서 새벽 4시 45분경에 출발했다. 행궁을 출발해 팔달문을 경유하고 매교, 상류천, 재간현, 하류천, 황교, 옹봉, 대황교, 능원소화소, 유첨현, 안녕리, 유근교, 만년제, 능원소동구, 능소까지 약 29리(1리는 360m, 약10.44km)의 거리였다. 

왕의 행차길을 필로(蹕路)라고 하는데 지지대고개부터 현륭원까지 길의 경계마다 표석을 세웠고 5리마다 이정표로 장승을 세워 표석은 20곳, 장승은 11곳에 세웠다. 현재 표석은 5개 남아있지만 장승은 모두 사라졌다. 필로에 대한 기록은 화성성역의궤(1801년), 화성지(1831년), 수원군읍지(1899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에는 상당수의 군 장병들이 동원된다. 동원에 앞서 군부대와 사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하고 수원화성문화제와 정조대왕 능행차의 정체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군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소통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번기회에 능행차에 참여한 군 장병들에게 반드시 설문지를 받아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할 사항은 개선해야 한다.

대충 행사를 치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 운영하는 사람, 참가하는 사람 모두가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완성도 높은 행사로 만들 수 있다. 대충 해놓고 '222년만의 완판 재현'이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꿈꾸고 있다면 사고방식부터 바꾸고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하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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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 대황교,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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