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컨벤션센터 전시홀에서 열린 '2026 화랑미술제 in 수원' 현장. 전국 갤러리들이 참여한 가운데 관람객들이 부스를 오가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미술, 잘 몰라요. 이제 좀 알아가려고 왔어요."
수원컨벤션센터 전시홀 1층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다.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열린 '2026 화랑미술제 in 수원'은 전문 컬렉터만을 위한 문턱 높은 자리가 아니었다. 그림 앞에서 가만히 멈춰 서는 사람, 낯선 작가의 이름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사람,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는 시민 모두에게 열린 예술의 장이었다.
올해 화랑미술제 in 수원에는 전국 103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전시장 안에는 현대미술, 회화, 조각, 설치 작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펼쳐졌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발걸음도 제각각이었다. 작품의 가치를 묻는 이들, 작가의 작업 세계를 궁금해하는 이들, 그리고 "이 그림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며 발길을 돌려 같은 작품 앞에 다시 서는 이들도 있었다.
전시장 안은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술과 만나는 자리였다. 미술을 잘 아는 사람도,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도 작품 앞에서는 같은 질문을 품게 된다. "왜 이 작품이 마음에 남을까?" 그 질문이야말로 예술과 가까워지는 첫걸음이었다.

전시장 부스에서 만난 동숭갤러리 이행로 대표
건물을 넘어 문화가 숨 쉬는 도시로
그중 동숭갤러리 부스에서 만난 이행로 대표와의 대화는 '수원이라는 도시 안에서 미술관과 갤러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깊은 생각거리를 남겼다.
이 대표는 수원에서 이토록 큰 규모의 미술 행사가 열리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도시가 성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이 높아지고 도로가 넓어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건물만 올라간다고 진정한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문화가 따라가야 합니다. 문화가 함께 성장하지 못하면 도시로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이 대표의 말은 오래 남았다. 아파트와 상업시설, 교통망 같은 물리적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머물고 바라보고 느끼고 대화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함께 자라야 도시가 더 깊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는 수원시립미술관의 행보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여성 작가 작품을 꾸준히 수집하고 조명하는 점을 의미 있게 보았다. 이 대표는 1950~70년대 여성 작가들이 처했던 시대적 한계를 언급하며, 그 시절 여성으로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 시대에 여성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남기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자연스럽게 한국 근대 여성미술의 선구자 나혜석이 떠올랐다. 수원은 나혜석의 도시다. 그런 수원에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조명하고 수집하는 일은 단순한 전시 기획을 넘어, 도시의 역사적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었다.
이 대표는 문화 선진국의 조건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을 꼽았다. 그는 "부강한 나라가 되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미술관과 박물관"이라며, 한 도시와 나라의 문화 수준은 그곳에 어떤 문화시설이 있고, 어떤 작품을 남기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터를 정하고, 설계하고, 건물을 짓고,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대표는 "미술관 하나가 제대로 완성되려면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대단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평소 시민 입장에서는 "수원에 시립미술관이 생겼구나" 정도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도시가 어떤 문화를 남길 것인가에 대한 긴 고민과 시간이 숨어 있었다. 미술관의 핵심은 건물이 아니라 작품이고, 작품은 곧 도시의 기억이 된다.

동숭갤러리 부스 전경. 회화와 조각 작품이 어우러져 전시 공간에 깊이를 더했다.
알아가는 재미, 마음에 남는 짙은 여운
동숭갤러리 부스에는 김구림, 김채용, 여소현, 조문자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었다. 이행로 대표는 김구림 작가에 대해 특별히 오래 설명했다. 그는 김구림 작가를 "1950~60년대부터 실험미술과 퍼포먼스를 선보인 천재적인 예술가"라고 소개했다.
이 대표는 한강 둑에서 불을 이용해 작업했던 실험적 사례를 들며, 당시에는 그런 작업을 한다고 해서 당장 밥이 나오거나 돈이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앞서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런 앞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한국 미술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먼저 한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설명을 듣기 전과 후, 작품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낯선 이름과 이미지였지만, 그 뒤에 담긴 작가의 삶과 시대의 맥락을 듣고 나니 작품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한 기록처럼 느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 순간 실감났다. 미술을 잘 몰라도 괜찮지만, 누군가의 설명을 통해 작품을 다시 바라보면 마음에 들어오는 깊이가 달라진다. 전시장은 그렇게 배움의 공간이자 감상의 공간이 되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그림자는 빛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작품 안에서는 오래 남는 여운이 된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문영서 작가의 작품이 유독 발걸음을 붙잡았다. 함께 간 지인은 전시장을 한 바퀴 다 돈 뒤에도 "그 그림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며 다시 작품 앞으로 돌아왔다. 마침 현장에 문영서 작가가 있어 직접 작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문 작가는 그림자를 소재로 작업한 이유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그림자는 늘 무언가의 뒤에 있고, 빛이 사라지면 곧 사라지는 불완전한 소재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림자를 오히려 주인공으로 삼으면, 불완전한 것에서 오는 독특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은 거친 질감 위에 에어브러시로 부드러운 그림자를 표현한 듯했다. 가까이에서 보아도, 멀리서 보아도 묘한 여운이 남았다. 실물을 그대로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사라질 것 같은 존재를 화면 위에 붙잡아 둔 그림이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늘 뒤에 머무는 것, 곧 사라질 것 같은 것들도 예술 안에서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문영서 작가의 그림자는 그래서 더욱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우리 삶에도 그런 존재들이 많기 때문일지 모른다.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곁을 지키는 것들, 사라질 듯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말없이 마음에 남는 것들 말이다.

화랑미술제는 시민들이 예술과 가까워지는 열린 문화의 장이 됐다.
예술과 가까워지는 다정한 시간을 선물 받다
이날 '2026 화랑미술제 in 수원'에서 마주한 작품들은 미술의 문법을 잘 모르는 시민에게도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작품 가격이나 작가의 유명세보다 먼저 마음에 닿은 것은 직관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작가와 갤러리 대표의 설명을 거치며 더 깊은 이해로 이어졌다.
이번 행사는 단순히 미술품이 거래되는 아트페어에 그치지 않았다.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과 처음 만나는 입구였고, 수원이 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날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말 없는 그림 앞에서 마음을 쉬어간 치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2026 화랑미술제 in 수원 전시장. 관람객이 작품 앞에 멈춰 서서 휴대전화로 작품을 기록하고 있다.
미술은 어렵고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작품 앞에 서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잘 몰라도,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설명을 듣고 다시 보면, 보이지 않던 이야기가 보인다. 그렇게 예술은 조금씩 시민의 일상 안으로 들어온다.
"미술, 잘 몰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작품 앞에 서보는 일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설명을 듣고, 다시 한 번 마음에 남는 작품을 찾아가는 일이다. 수원컨벤션센터를 가득 채운 이번 화랑미술제는 시민들에게 그렇게 예술과 조금 더 친밀해지는 시간을 선물했다.
문화도시는 거창한 구호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 한 사람이 그림 앞에 멈춰 서고,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 작품이 마음에 남는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번 화랑미술제는 그 시작을 수원에서 보여준 뜻깊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