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헨드릭 릴링가, 캔버스에 에나멜로 그린 작품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아담한 규모의 영선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지난 8월 1일부터 이곳에서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 작가 헨드릭 릴랑가(Hendric Lilanga)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영선갤러리는 미술을 어렵게 여기기보다 일상 가까이에서 작품을 만나고, 주변의 평범한 것에서도 예술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다. 김형진 영선갤러리 대표는 상업적인 전시 운영에만 머무르지 않고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아카이빙과 현장 강의 등을 통해 작가와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왔다.
2016년 문을 연 영선갤러리는 지금까지 18회의 전시와 20회 이상의 현장 강의를 진행했으며,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아카이빙 영상도 제작하며 지역의 미술문화 저변을 넓혀왔다. 지난 19일 오후 2시경 갤러리를 찾았다. 2층 전시장에는 다양한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헨드릭 릴랑가의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독특한 인물 표현으로 눈길을 끌었다.

가죽 위에 채색
헨드릭 릴랑가는 아프리카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조지 릴랑가의 외손자다. 조지 릴랑가는 탄자니아의 전통미술과 현대적인 표현을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알려져 있으며, 헨드릭 릴랑가는 이러한 예술적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세계를 확장해왔다.
헨드릭 릴랑가의 작품에는 가족과 이웃, 시장과 일상생활 등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이 등장한다. 화려한 옷을 입은 인물들이 함께 춤을 추거나 시장을 찾고, 병원을 방문하는 모습 등 일상적인 장면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따뜻하게 표현한다.
그 배경에는 아프리카의 공동체 정신을 의미하는 '우자마(Ujamaa)'가 자리하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혼자 존재하기보다 서로 어울리고 함께 움직인다. 작품을 바라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조각상
헨드릭 릴랑가는 전통적인 아프리카 미술의 표현방식을 이어가면서도 휴대전화, 전자기타, 자동차, 골프장 등 현대적인 소재를 작품에 담는다. 과거의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아프리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면서도 화면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전통적인 팅가팅가 양식과 마콘데 조각의 영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헨드릭 릴랑가의 작품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미술 교과서에도 소개돼 있다.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실제 전시장에서 만난다는 점도 이번 전시를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작품 설명을 하는 김형진 대표
김형진 대표는 작품을 설명하며 "헨드릭 릴랑가의 작품에는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며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과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선갤러리가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하고 관람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김형진 대표는 "10년 전 처음 20여 명이 모여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200여 명이 넘는 모임으로 성장했다"며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작품이 좋아서 찾아오고 함께 공부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헨드릭 릴랑가의 작품(오른편 상단)
골목 안 작은 갤러리에서 만난 헨드릭 릴랑가의 작품은 화려한 색채만큼이나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가족과 이웃, 일상의 즐거움과 서로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작품 곳곳에 담겨 있어 무더운 여름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망포동 골목길에 자리한 영선갤러리에서 아프리카의 색과 사람들의 일상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익숙하지 않았던 아프리카 미술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