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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시설의 적막 속에서 예술을 만나다, 고색뉴지엄 《고색찬란》
폐수처리시설의 흔적을 간직한 지하 전시장…산업의 재료와 노동, 작가의 시선이 한 공간에서 만나다
2026-09-30 11:25:46최종 업데이트 : 2026-09-30 11:25:43 작성자 : 시민기자   강남철
콘크리트 벽과 천장의 배관, 녹색 배관이 길게 이어진 고색뉴지엄 지하 전시장. 산업시설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의 고요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전해진다.

콘크리트 벽과 천장의 배관, 녹색 배관이 길게 이어진 고색뉴지엄 지하 전시장. 산업시설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의 고요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전해진다.


수원산업단지 안 고색뉴지엄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자, 분위기가 한층 가라앉았다. 취재 당시 작품 사이를 오가는 관람객은 보이지 않았다. 노출된 콘크리트 벽과 천장의 배관, 작품을 비추는 낮은 조명 속에서 발걸음 소리까지 크게 느껴졌다.

이 고요함은 현재 열리고 있는 《고색찬란: 산업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조금 다르게 보게 했다. 산업 시설의 흔적을 지운 전시장에 작품을 들여놓은 것이 아니라, 과거 시설의 구조와 흔적 사이에 지금의 수원산업단지에서 건너온 재료와 이야기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고색뉴지엄은 수원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들어선 폐수처리시설을 문화공간으로 바꾼 곳이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산업 시설은 2017년 복합문화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지하 전시장에는 콘크리트 벽과 배관 등 당시 시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번 전시는 고색뉴지엄과 수원산업단지관리공단이 산업과 예술의 접점을 찾으며 마련했다. 가영, 구동하, 김경지, 김지연, 라미, 안진호, 윤지훈, 이주형, 이화섭, 추가디 등 10명의 작가가 산업단지 5개 기업의 현장을 찾아 재료와 생산공정, 일하는 사람들을 살폈다.

전시는 단순히 버려진 산업 재료를 작품으로 바꾸는 데 머물지 않는다. 작가들은 생산과정에서 나온 재료뿐 아니라 기계가 반복하는 움직임, 작업자의 손과 자세, 공장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바라봤다. 산업현장에서 익숙했던 것들이 전시장에서는 낯선 대상으로 다시 나타난다.

산업현장에서 사용한 폐방진복으로 제작한 이주형 작가의 〈BLUE DRESS〉가 전시장에 놓여 있다. 산업재료가 새로운 형태와 쓰임을 얻은 모습을 보여준다.

산업현장에서 사용한 폐방진복으로 제작한 이주형 작가의 〈BLUE DRESS〉가 전시장에 놓여 있다. 산업재료가 새로운 형태와 쓰임을 얻은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장 한쪽의 이주형 작가 〈BLUE DRESS〉는 산업현장에서 사용하던 폐방진복으로 만든 드레스다.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작업복이 풍성한 치마와 장식이 있는 의상으로 바뀌었다. 작업자를 보호하던 재료가 전시장에서는 형태와 색을 먼저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 됐다.

추가디 작가의 〈ERROR : MATERIAL〉은 반도체 전자부품 공정에서 쓰인 PCB와 캐리어 테이프, 폐전선 등을 작업에 끌어들였다. 규격과 정밀함을 요구받던 산업재료가 작가의 손을 거치며 반복과 균열, 우연이 공존하는 화면으로 옮겨졌다.

흰 가벽에 설치된 작품과 노출된 콘크리트 기둥이 함께 보이는 전시장. 일반적인 화이트큐브와 산업시설을 재생한 고색뉴지엄의 공간적 특징이 대비된다.

흰 가벽에 설치된 작품과 노출된 콘크리트 기둥이 함께 보이는 전시장. 일반적인 화이트큐브와 산업시설을 재생한 고색뉴지엄의 공간적 특징이 대비된다.


작품만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시장 자체다. 안쪽 통로에는 굵은 녹색 배관이 콘크리트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새 전시장이라면 가렸을 설비를 그대로 남겨 놓아 이곳의 과거를 보여준다. 어두운 통로와 배관을 지나며 작품을 보는 경험도 전시의 한 부분처럼 다가온다.

산업시설의 녹색 배관 위로 산업단지 직원들이 그린 '나의 작업도구' 그림이 이어진다. 오랜 시간 손에 익은 작업도구를 통해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산업시설의 녹색 배관 위로 산업단지 직원들이 그린 '나의 작업도구' 그림이 이어진다. 오랜 시간 손에 익은 작업도구를 통해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배관 위쪽 벽에는 '나의 작업도구'라는 글과 함께 산업단지 직원들이 손에 익은 도구를 그린 작은 그림들이 이어진다. 거창한 기계가 아니라 매일 쥐고 사용하는 도구를 바라본 기록이다. 작품과 실제 산업시설의 흔적이 한 공간에서 만나면서 노동하는 사람의 존재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기존 산업시설의 구조를 남겨둔 공간에서 전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작품뿐 아니라 산업현장과 제작과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기존 산업시설의 구조를 남겨둔 공간에서 전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작품뿐 아니라 산업현장과 제작과정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영상이 놓인 공간에서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현장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완성된 결과만 보여주는 대신 기업의 생산 현장과 작가가 재료를 살피고 작업하는 과정을 함께 보여준다. 무엇이 예술이 되었는지보다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되짚게 하는 구성이다. 

전시장을 돌다 보면 흰 임시 벽에 놓인 작품과 거친 콘크리트 공간의 차이도 선명하다. 밝은 파랑과 흰색의 드레스는 어두운 공간에서 더욱 도드라지고, 금속과 전자부품을 활용한 작업은 배관과 기둥 사이에서 산업현장의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취재 당시 관람객이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그 적막 덕분에 평소라면 작품 뒤 배경으로 지나쳤을 벽의 얼룩과 배관, 기계설비의 흔적까지 천천히 바라보게 됐다. 고색뉴지엄에서는 전시장과 작품을 떼어 놓고 보기 어렵다는 사실도 현장에서 더욱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번 전시는 산업단지가 시민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생산공간만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뒤에는 재료와 기술, 반복되는 공정과 사람의 시간이 있다. 작가들은 그 익숙한 산업의 장면을 미술관 안으로 옮겨 시민이 다른 눈으로 바라볼 계기를 만든다.

수원산업단지 안에 자리한 고색뉴지엄 전경. 산업시설에서 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쓰이고 있는 장소에서 《고색찬란》이 열리고 있다.

수원산업단지 안에 자리한 고색뉴지엄 전경. 산업시설에서 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쓰이고 있는 장소에서 《고색찬란》이 열리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오자, 다시 공장과 차량이 오가는 산업단지 풍경이 이어졌다. 《고색찬란》은 산업의 흔적을 지우고 예술을 채운 전시라기보다 그 흔적 위에 오늘의 산업과 예술을 겹쳐 놓은 전시에 가깝다. 고요한 지하 전시실에서 산업단지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고색뉴지엄 《고색찬란: 산업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전시와 연계 시민 프로그램 안내. 전시는 10월 11일까지 이어진다.

고색뉴지엄 《고색찬란: 산업이 예술이 되는 순간》 전시와 연계 시민 프로그램 안내. 전시는 10월 11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안내
○ 전시명 : 《고색찬란: 산업이 예술이 되는 순간》
○ 기간 : 2026년 9월 10일~10월 11일
○ 장소 : 고색뉴지엄(수원시 권선구 산업로 85)
○ 참여기업 : ㈜스카, ㈜STC, ㈜테크웰, ㈜디엠피, ㈜그린텍시스템
○ 참여작가 : 가영, 구동하, 김경지, 김지연, 라미, 안진호, 윤지훈, 이주형, 이화섭, 추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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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뉴지엄, 수원전시, 수원산업단지, 고색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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