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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여유 있는 골목길의 그리움
2013-01-23 00:55:08최종 업데이트 : 2013-01-23 00:55:08 작성자 : 시민기자   권혁조

누구나 연애를 하여 결혼을 할때는 상대 배우자와 결혼하겠다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그 안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남자인 내가 남자들의 기준을 말하자면 아내 될 사람이 미스코리아처럼 예쁘다든가, 처갓집에 돈이 많아서, 처갓집에서 사업자금을 대준다 해서, 아내의 심성이 무척 착해서, 아내가 나의 부모를 모시고 산다 해서, 아내의 직장이 튼튼하고 좋아서, 아내의 화끈한 성격이 맘에 들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다 있을텐데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아내와 연애를 하던중 아내의 고향 집이 있는 속리산 자락 아래 충북 보은에 가게 되었고 고향 집에서 뵌 예비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처남들을 보았을때 그 가정의 단란하고 화목한 모습이 좋아 보였다. 형제간의 우애가 무척 깊었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아내의 고향집에서 뵌 어르신들과 그 가족 형제들 사이에서 역력히 보였다.
나는 거기서 아내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이미 결혼할 결심을 굳힌 가운데 나로 하여금 또 하나 덤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처갓집의 오래되고 고풍스런 기와집이었다.
사랑방과 안채, 건너방으로 구성된, 단촐하지만 고풍스런 기와집, 참으로 풍류 있었고 아늑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는 그 집이 참 좋았다.
처가의 기와집과 그 이웃집인 옆 집의 또 다른 기와집 사이의 낮은 담벼락, 그리고 넓은 뜨락의 아늑함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도 한몫 한 것이다. 

처갓집에서 첫 인사를 드리고 나오던 길, 조금 나오자 보은 읍내가 있었다. 당시에는 승용차가 없어서 보은 읍내까지 나와서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헌데, 처갓집 가족들의 화목함과 기와집에서 느낀 만족감 외에 하나 더 나를 잡아당긴 무언가가 있었다. 
당시 보은 읍내의 한쪽에 자그마한 버스 정거장 풍경은 그 것만이 아니었다. 

이미 사라졌다고 여겼던 옛 주막집 같은 선술집이 주차장 한 쪽 골목길에 있었던 것이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제법 큰 길가에서 옆으로 난 조그만 골목길로 접어들어 가자 허름한 간판에 선술집이 있었다.
주로 막걸리만 팔았지만 안주는 모두 공짜였다. 김치, 두부, 파전, 그리고 시래기 국이 나왔는데, 대포잔 하나에 그 안주를 먹기에는 미안할 지경이었다.

차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막걸리잔을 나누고, 그 나누는 시간이 지나쳐 차 시간을 놓쳐도 어느 누구 조급해하는 사람 없는 그런 넉넉한 선술집이었다. 그동안 직장 다니느라 나에게 익숙했던 도시의 큰 식당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난 그 선술집이 가지고 있는, 바쁘지 않는 그 넉넉함을 잊지 못해 자주 처갓집에 갈때마다 선술집을 찾았다.

우선 읍내에서 그래도 큰 대로를 지나 한적하게 들어가는 골목길의 풍경이 좋았다. 뭔가 서서히 걷는 여유로움에, 누구라도 마주치면 편하게 인사라도 나눌수 있는 여유있는 걸음걸이만 허락될 것 같은 골목길. 그 안에서 반겨 맞아주는 대폿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선술집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사방으로 잘 정리된 아스팔트, 그 차가운 무표정의 바쁜 도로만 있을 뿐이다. 
그 선술집과, 선술집으로 들어오도록 안내해준 골목길이 죄다 사라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동안 잊고 있었다. 결혼 초 한동안 처갓집 갈때마다 들렀는데 어느 순간 승용차를 구입하게 되었고, 승용차를 가지고 다니다 보니 자연히 읍내 버스터미널에 갈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처럼 그런 골목길의 옛정을 못잊어 찾아주던 단골 고객들의 발걸음이 끊어지다 보니 선술집도 파리만 날리다가 문을 닫은것 아닐까.
승용차를 타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발길을 끊어버린 나도 그런 대포집과 골목길이 사라지게 한 죄인이다.

선술집 말고도 신작로가 죽죽 뻗다 보니 마을마다 자리잡고 있었던 정겹고 그리운 골목길마저 죄다 사라진 것이다.  바쁠 것 하나 없는 그 시절의 그 흔한 골목길이 지금은 귀한 보석처럼 찾기 어려운 길이 되고 말았다. 
골목길은 꼬불꼬불이 기본 원리다. 꼬불어지지 않으면 그건 골목이라기보다 잘 닦인 신작로에 가깝다. 
우리에게 그래서 직선보다는 꼬불거리는 골목길이 더 잘 어울리고 익숙하다. 그 덕분에 골목길은 빠름만 재촉하는 요즘의 우리에게 그나마 느림과 여유를 준다. 

느림과 여유 있는 골목길의 그리움_1
느림과 여유 있는 골목길의 그리움_1

그나마 그런 골목길이 소리 소문 없이, 아무 생각없이 곳곳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오늘의 삶이 과연 정겹고 살가운 삶이기는 한가.
골목길을 걸으면서 바쁘게 걷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기억도 직선으로 넓게, 곧게 이루어진 길보다, 좀 느리지만 곡선으로 이루어진 골목길에 더 익숙해져 있었기에 처갓집에 갈때마다 찾은 것이다.

어릴적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며 놀던 골목길. 지금 그 골목길은 어딜 가야 찾을수 있을까. 
빠르고 단순하고 편리함만 생각만 하는 요즘, 차 소리 안 들리고 한가함과 느림의 시간이 있는 그런 골목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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