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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부음조차 단문으로 날릴까 걱정
내용에 맞는 최소한의 '예'는 갖추는 문자와 e메일을 기대함
2013-02-13 02:12:12최종 업데이트 : 2013-02-13 02:12:12 작성자 : 시민기자   이학섭

'딩동, 문자 왔습니다'   
저녁 늦게 날아온 문자는 지인의 부친께서 작고하셨다는 부고였다. 헌데 장지가 쉽게 달려가기는 어려운 제주도였다. 
때문에 부음에 이어 덧붙여진 상주의 계좌번호가 다른 때 받았던 휴대폰 부고장과는 다른 점이었다.
장례식장까지 찾아가 멀리 떠나심에 대한 이승의 예를 다 드려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죄송스러움을 담아 부의금을 전송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인터넷 뱅킹으로 돈을 넣고 보니 참 편리해졌다는 생각과 함께 뭔가 썰렁하고 어떤 일을 마치긴 했으나 덜 깔끔하게 어물쩍 마무리 된 느낌이 들었다.
고인의 부음을 문자로 받아 본게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막상 단문으로 씌여진 부음과 계좌번호까지 받고 나니 영 개운치가 못했다.

지금이야 그런게 일반화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휴대폰 문자 메시지라는게 막 쓰이기 시작할 무렵 직장에서 직원을 해고 시키면서 문자로 통보한게 말썽이 된적이 있었다.
말썽의 하나는 오랫동안 몸 바쳐 열심히 일한 직원에게 문자 하나로 나가라고 하는게 말이 되냐며 매정함을 넘어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주는 회사에 대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던게 첫 번째 말썽이었다.

그 후로 언젠가는 또 휴대폰으로 해고 통보를 했으니 적법하다는 회사측과, 얼굴을 맞대고 구두로 하든지 아니면 문서로 했어야 하는데 문자로 날린 해고 통보는 효력이 없는거라며 법정 다툼을 벌인적도 있던게 두 번째 말썽이었다.
어쨌든 이 두가지 모두 결과는 어떻게 났는지 알수 없으나 휴대폰이 일상화 되고 문자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던 오래전의 일이었는데 이젠 부음도 문자로 하다 보니 다른것과는 느낌이 약간 이상했다.

과거에 부음은 어땠나.
옛날 시골집 사립문에 끼워져 있던 부고장. 그리고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 흙벽돌로 둘러쳐져 있던 담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들어선 시멘트 블록 벽돌로 쌓아진 후부터 벽돌의 구멍에 꽂혀져 있던 부고장. 아마도 지금 나이 40대 중반 이상의 성인이라면 그런 부고장 흔하게 봤을 것이다.

맨질맨질한 얇고 누런 봉투 안에 부고(訃告) 또는 부음(訃音)이라고 커다란 붓글씨로 쓴 후 그 뒤에 고인과 상주의 이름이 들어가고 빈소의 위치와 장례식장, 장지를 써 놓았던 90년대까지의 부고장. 휴대폰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 부고장이 대세였다.
돈 많은 기업인들이나 유명 정치인들은 아예 신문의 광고란을 빌려 거기에 크게 부고를 올리기도 했지만 서민들은 부고장을 만들어 우편을 통해 알리기도 하고 인편으로 직접 돌리기도 했다. 

아버지 부음조차 단문으로 날릴까 걱정_1
아버지 부음조차 단문으로 날릴까 걱정_1

그런 때와 비교해 볼때 우린 지금 편리하고 간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인터넷 뱅킹을 하느라 열어 본 컴퓨터에는 지난 1주일간 보지 않은 e메일이 수북히 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설을 맞아 안부를 묻는 인사도 많았다. 
무엇이든 폰으로도 날리는 메시지와 인터넷으로 보내는 e메일로 다 되는 시대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편지의 형식이 순식간에 이메일로 바뀐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국민들의 대명사인 '빨리빨리'문화의 결과물 아닌가 생각된다. 
그 덕분에 모든 이야기는 바로 지금 이루어지고 참으로 편리해졌으며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궁금한 것을 해소시키고 감정전달 역시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우체국에 가는 번거로움이 해소된 것은 이메일이 주는 가장 획기적인 서비스 중 으뜸이다. 

친구 사이는 물론 며느리들의 시부모님 안부도 이메일로 보내는 세상이고 자신을 가르쳐 준 스승에게도 이메일로 안부를 전한다.
그러나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마다 느끼는 허전함을 어찌 할 수가 없다. 편지의 형식이 무시되고, 하고 싶은 말만 간단히 하다 보니 참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거기다가  채팅 언어로 서너 줄 채우고 만 메일을 받으면 안 받는 것만 못하다. 무슨 말인지 해독이 불가능하고 무성의한 메일을 받고 나면 가슴속에 남아 있던 그 정겨운 모습마저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난다.

물론 이메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정말 편리한 체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켜야 할 예의가 사라진 체계는 너무나 삭막하다. 앞서 거론한 문자 해고 통보 같은...
하지만 그렇다고 21세기에 여전히 일일이 편지를 써서 통신을 하는건 불가능 하다. 그렇다면 이메일이나 문자라도 편지를 대신하는 매체이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슴 속에 넣어 둔 사연을 한올 한올 글자로 엮는 정겨운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종이로 된 편지지든 컴퓨터상의 편지지이든 매체만 다를 뿐 내용은 그대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편리하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대충 써서 메일을 띄우는 그런게 아니니까.
부음 같은 경우도 "OOO부친상, 장지 어디, 발인 언제, 빈소 어디, 전화번호 OOOO"이렇게 삭막하게 보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춰 "삼가 명복을 빕니다. OOO의 부친께서 영면하셨습니다" 정도의 인사는 올리고 시작해야 하는거 아닐까.
내 생각이 고루하다면 어쩔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고집스레 따지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이들이 제 아버지가 작고한 뒤에 다른 가족들에게 '아버지 부음'이라는 단문으로 메시지 날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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