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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한 한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다
영정사진 찍고 유언장작성…임종체험
2014-09-10 09:34:41최종 업데이트 : 2014-09-10 09:34:41 작성자 : 시민기자   이소영
요 며칠 포털사이트에는 '고은비', '권리세'라는 여성의 이름이 계속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왔다. 5인조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의 멤버인 이들을 애도 물결 때문이리라. 지난 3일 오전 1시20분께 레이디스 코드는 대구에서 열린 KBS 1TV '열린음악회' 스케줄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교통사고를 당했다. 
레이디스코드가 타고 있던 스타렉스 차량이 고속도로 방호벽을 들이받은 것. 사고 당일 같은 그룹 멤버 고은비(22·여)씨가 숨졌고, 권리세(23·여)씨는 사고로 혼수상태를 헤매며 10시간 넘게 수술을 받았지만 7일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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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그룹 '레이디스코드'가 타고 다닌 스타렉스 차량. (경기도 소방 재난본부 제공)

사고 후 공개된 차량(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있었다)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져, 그날 밤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막내작은아버지 생각이 안날 수 가 없었다. 두 분 다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그렇게 꺼이꺼이 우는 모습은 처음 봤다. 막내작은아버지가 뒤이어 가셨을 때 아버지는 그 좋아하시던 술을 단번에 끊으셨다. 막내작은아버지는 회식 후 신호등을 건너다가 차에 치이셨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는 막내아버지의 모습을 운전자가 못 봤다고 한다. 사고 직후 아주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머리를 크게 다치셔서 숨졌다. 

차 사고에 트라우마가 생기신 걸까. 아버지는 내가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할 때 무척 말리셨다. 아마도 '교통사고의 위험'보다 '예상치 못한 죽음의 두려움'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우리는 언제 갈지 모르고, 언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지 모른다. 죽음 앞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지만, 죽음을 나름 준비하는 방법은 있다. 

얼마 전 서울 개포동의 능인복지관에 위치한 임종체험 수련센터 '아름다운 삶'에서 내가 체험하고 온 '임종체험'이 대표적인 예다. 
방송인 노홍철씨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임종 체험을 하면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체험은 △영정사진 찍기 △내 인생 자서전 쓰기 △죽음 명상 △유언장·묘비명 쓰기 △입관하기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필자는 유언장을 쓰면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이 흘렸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가장 먼저 부모님이 떠올랐다. 갱년기에 아파하던 엄마를 뒤로한 채, 늘 놀러 다녔던 못난 딸, 카페 한 번 영화 한 편 엄마와 같이 보러 가지 않았던 딸, 일에 치여 힘들어하던 아빠의 어깨를 주물러주지 않은 매정한 딸. 늘 남을 챙기는 데만 급급하고, 정작 내 지지자인 '가족'은 뒷전이었던 삶이 후회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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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임종체험 유언장 작성 시간,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갔다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시신은 "화장을 해 좋아하는 산에 뿌려달라"고 썼고, 장례식은 "주변 사람들이 내게 편지를 읽어주는 식으로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입관 체험'은 임종 체험의 클라이막스다. 

실제 장례에 쓰이는 관 뚜껑에 누우면 장례지도사가 손과 발을 묶는다. 관 뚜껑이 닫히면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온다. 삶의 미련이 몰려오는 순간이다. 10여 분간의 어둠이 걷히고 관이 열리는 순간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유다. 빛조차 반갑다. 

다음 날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했다. 물론 임종 체험의 효과는 오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유언장도 작성해보고(민법상 효력이 있지는 않지만) 26년 남짓 산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 확실히 값졌다.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죽음학 강의'를 펴낸 최준식(58) 한국죽음학회의 회장(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는 말했다. '죽음'에 관해 한국인의 인식이 일천하다고. 
'죽음을 생각하자는 것은 죽음 자체나 죽음 이후에 대해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여기'는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항상 같이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둘을 항상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입니다. 모든 것은 지금 여기로 돌아와야 합니다.' 

'삶이 깊어지기 위해 죽음을 공부하라'는 그의 말처럼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싶다. 유난히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올해도 이제 마무리할 시점, 유언장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글을 적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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