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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기록이 '역사'…수원 최초 엘리베이터 건물, '상공회의소'
부국원에서 열린, '기록과 축적의 가치에 대한 공동 연수'
2019-11-23 12:52:18최종 업데이트 : 2019-11-26 07:37:33 작성자 : 시민기자   강봉춘

팔달구 교동에 있는 부국원의 현재 모습. 일제강점기 종자·종묘·농기구·비료 등을 판매했던 일본인 회사로, 나라를 부유하게 한다는 뜻으로 지어졌다.

팔달구 향교로에 있는 부국원.(사진 정면) 일제 강점기 종묘 회사였던 부국원은 이후 관공서, 의원, 인쇄소 등으로 쓰였다. 지금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인문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지난 22일와 23일, 부국원 3층에서는 마을의 기록과 축적의 의미를 새겨보는 공동연수가 이틀에 걸쳐 열렸다. 수원미디어 센터는 넘쳐나는 디지털 미디어의 세상에서 기록의 가치를 되새겨보고, 시민 개개인들이 소장하거나 남겨놓은 기록들을 축적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자 이번 워크숍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1978년, 경인일보(당시 경기신문)에 입사해 수원지역 취재를 담당했었던 조형기 기자는 22일 워크숍의 첫 강의를 열며 사진 한 장이 담고 있는 가치를 전했다. 보도사진을 찍었던 조 기자는 디지털 카메라가 1970년대에 코닥에서 처음 선보였다며, 당시 팔달구 교동 근처에서 보증 20만원에 월 5000원짜리 방에서 살았던 과거 자신을 회상하며 수원 지역의 옛사진들을 소개했다.
'마을의 기록이 역사입니다' 공동 연수에 참가한 시민들. 뒤에 팔짱끼고 있는 사람이 전 경인일보 조형기 기자.

부국원 3층에서 열린 수원 미디어 아카이브 워크숍. 뒤에 팔짱 낀 경인일보 조형기 기자는 '사진으로 본 수원의 어제와 오늘'을 강의했다.

1905년 이전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수원 팔달문 사진. 프랑스에서 사진엽서 형태로 제작되었다.

1905년 이전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수원 팔달문 사진. 프랑스에서 사진 엽서 형태로 제작되었다. 사진에 '서울-남문-제물포로 가는 길' 이라고 불어로 적혀 있다.

2006년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되며 잘 알려진 독일인 장교 헤르만 산더(Hermann Sander, 1868~1945. 당시 주일본 독일대사관 무관)가 찍은 사진들과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으로 남아 있는 독일인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1870~1956)씨의 기록들처럼, 일제강점기부터 6.25까지의 사진들은 주로 외국인들에 의해 남겨진 것이었다.

"수원 어르신들이 그 때 얘기 하면,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있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졌다는 말부터 하셨습니다. 그 말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여기 화성 주변이 집단 피난민처였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때에도 상상이 잘 안 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진을 보고 나니 그 말씀이 맞았구나 했죠." 

부국원 2층과 3층에는 그 당시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부국원 3층 액자에 놓인 1981년대 사진. 무적차량 일제 신고 기간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지금의 향교로 거리를 가로질러 걸려있다. 현수막 아래로 자동차와 리어카 자전거가 지나고 있다. 뒤편으로 부국원 건물이 보인다.

부국원 3층에 놓인 1981년대 지금의 향교로 사진. 뒤편으로 부국원 건물이 보인다.

수원과 여주를 잇던 수여선 안의 승객 사진.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공간만 남겨두고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 있다. 1970년대 사진.

수원과 여주를 잇던 수여선(수려선) 안의 승객들. 수려선은 1930년대에 만들어져 1972년 폐쇄되었다.

6.25 전후로는 미군들이 남긴 사진들이 많았지만, 이후에는 수원 사람이 찍은 사진도 남아 있었다. 보구산부인과를 운영했던 김동휘 박사와 사진 공예사로 알려진 홍의선 씨는 1956년 수원 사우회를 결성해 서호에서 사진 촬영대회를 열 정도였다. 당시 카메라는 지금의 고급자동차처럼 부의 상징이었다. 제대로된 보도사진이 나온 것도 1960년대가 지나서였다.

"1960년 3월,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수원 시민들의 시위 모습이 동아일보에 실렸습니다. 이건 중동사거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인 사진입니다. 옆 알림판에 특무대가 써 있네요. 당시 권력의 최상위였던 특무대입니다. 제가 수원여중을 나온 여운계 씨를 만나 어떻게 배우가 되었는지 인터뷰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1969년 삼성전자 개토식에서 이병철씨를 바로 옆에서 찍은 것입니다." 

"아주대를 세운 사람은 김우중 씨가 아니라 박창원 씨입니다. 516 쿠데타의 멤버였죠. 정자동에 있는 수원 상공회의소는 6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처음 생긴 건물입니다. 영통지역 항공사진을 볼까요? 12년 만에 건물이 이렇게 많아졌습니다. 수원천 주변 노점들이 선거를 앞두고 개선됐습니다. 그런데 그 무허가 건물에 세금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나중에 철거가 어려워졌습니다. 여기 부국원은 신민당사로 쓰였던 적이 있습니다." 

유리 원판에 찍어 어렵게 나왔던 사진 한 장을 보며 원로 기자는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것은 사진 한 장에 의미와 가치를 담아내려고 얼마나 고민했겠느냐는 사실을 반증했다. 

 

"지금와서 생각되는 거지만, 제가 기관에서 내는 보도자료만 썼다면 아마 여기 없을 것입니다. 문화 역사적 맥락을 잃은 기사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려져야 합니다."
구술의 기록의 중요성을 강의하는 김형아 강사

구술의 기록의 중요성을 강의하는 김형아 강사

이어진 강의는 행궁동에서 구술사를 기록하는 김형아 연구원이었다. 구술사는 쉽게 말해 우리 주변을 들여다 보는 일상 아카이브(Archive)였다. 
 

"동네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어요. 신의주가 고향이시래요. 신의주가 그렇게 멋진 도시였데요. 그러다 하얼빈으로 이사가셨다는 거예요. 제가 거기서 느꼈어요. 아, 나는 남한이라는 섬에서 살고 있었구나!"

 

우리 역사는 실증주의 영향을 받아 확인된 사실만 역사로 인정받고, 확인되지 않은 구술들은 역사로 남지 못했다. 할머니의 삶은 사실 확인을 할 순 없지만 엄연한 우리의 역사라고 긴 머리의 연구원이 말했다.  

"인계동 재개발 지역에 살고 계신 두 분을 만났어요. 한 분은 무농사로 시작해 땅주인이 되셨고, 한 분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 재개발 대책위를 맡게 되셨죠. 한 공간의 이야기가 이렇게 다릅니다.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관광보다 이야기를 통해 가치를 느끼는 관광을 해야 합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날라주는 분을 만났습니다. 짬짬이 다방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밥도 드셨데요. 돈은 도매상이 대줬답니다. 시장 한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

수원의 극장에서 그림을 그렸던 이윤엽씨와 영사기사 이상만씨

수원의 극장에서 그림을 그렸던 이윤엽씨와 영사기사 이상만씨

김형아 씨는 ​​​​​​​극장 간판에 그림 그려주시는 분을 만나기 위해 계속 물어물어 찾아갔던 경험을 들려줬다. 그래서 똑똑함보다 끈기가 필요하다고 하며 구술 기록을 하며 깨달은 것들을 전했다. 

 

"지금은 내가 잘해서 번다고 생각들 하잖아요. 그런데 시장에서 일하시는 분의 말씀이 내가 먹을 건 다른 사람이 가져다 주는 것이랍니다. 돈은 사람 관계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란 말씀이셨죠." 

"내가 지금 왜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가, 이 자리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돌아보는 것이 역사적 고찰입니다. 이런 고찰이 없어지면 진실이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진실이 중요하지 않게 되면 아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행궁동 구술사 김형아 씨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구술사 축제를 열며 책을 발간했다. 부국원과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에도 민중자서전과 민중생활사를 담아낸 책들이 꽂혀 있었다. 부국원에서는 수원에 있었던 극장들과 벽돌공장 영신연와의 기록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가치를 알고 찾는 사람들은 아직 드물었다. 

23일엔 '수원의 극장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라는 주제로 워크숍이 이어졌다. 마을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이제 제대로 정리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수원 미디어 센터는 시민들에 의한, 시민들의 기록을 계속 돕기 위해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기록하고 축적하는 일의 가치 공감이 확산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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