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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해체·제거 공사,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영덕초등학교 석면 해체·제거 공사의 성공 비결
2020-02-22 09:55:01최종 업데이트 : 2020-02-22 09:54:57 작성자 : 시민기자   강봉춘

공사 허가가 나기 전에 급식실 천정 텍스를 뜯어내 석면이 유출이 우러 되자 영덕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공사 중단을 외치며 도교육청 앞을 찾아가 시위했다.(작년 12월 23일)안전 안내서를 따르지 않는 공사 상황에 뿔난 영덕초 학부모들 (작년 12월 23일)

"아니, 누가 급식실 천장 텍스를 뜯어냈어!"

작년 12월 14일, 흥분한 목소리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영통구에서 가스배달을 하는 김영진 씨였다. 동네에서 합리적 마을 활동가로 불리는 그가 이번엔 영덕초 석면해체제거공사의 학부모 모니터링을 맡았다. 흥분한 이유인 즉, 철거공사 허가도 아직 안 났는데, 사업자가 천정텍스를 뜯어냈다는 것이었다. 

"1군 발암물질을 우습게 본 거지."

학교 현장으로 함께 가보았다. 이동하는 영진 씨의 차 안에는 교육청에서 배포한 '학교시설 석면해체·제거안내서'가 놓여 있었다. 펼쳐보니 핵심 문장들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거기 해체 전에 어떻게 하라고 나와 있는 거 보이죠? 사람들이 이렇게 무심해. 아니, 1급 발암물질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이렇게 안내서까지 돈 들여 만들어놨으면 잘 지켜서 해야지 참... 이렇게 하니까 가습기 살균제 같은 참사가 일어나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아니, 아니'란 말로 시작하는 그에게서 화를 누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영덕초등학교에 도착하니 저 멀리 교장 선생님이 보였다. 관계자를 만나 상황 파악을 하고 있었다. 영진 씨는 내려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더니 다시 차에 탔다.

"이 공사의 총 책임자가 누군지 아세요? 교육청도 공사업자도 아니고 저 교장 선생님이에요."

석면 해체 제거 공사가 진행 중이던 영덕 초등학교(작년 12월 17일)

석면 해체 제거 공사가 진행 중이던 영덕 초등학교 (작년 12월 17일)

영진 씨는 지난 해 영덕초등학교 석면 해체 제거 공사를 앞두고 교장 선생님께 부탁을 받았다. 함께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평등교육실천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시민단체 위원으로 영덕초 학부모 모니터단에 참여했다. 

그는 동네에서 '저 양반 말은 틀린 데가 없어서 아무도 반박 못한다'는 칭찬인지 비판인지 모를 평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김 씨는 올 겨울에도 뜨개질 하는 엄마들을 설득해, 동네 길거리 나무들에게 털실 옷을 입혀 준 장본인이었다.

작년 12월 5일. 영덕초등학교는 석면해체·제거 사전설명회를 열었다. 학부모 모니터링단 멤버들과 공사 계획이 발표됐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김 씨가 강하게 항의했다. 모니터링단이 현장에 들어가 보는 날짜가 지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지겠냐는 항의였다. 모니터링하는 학부모들의 안전도 생각해야 한다는 학교 측 설명이 그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그는 매일 공사 현장을 찾아와 둘러보았다.

그러던 12월 13일. 급식실의 배기팬 후드를 떼는 작업을 하다 석면이 포함된 천정 텍스가 뜯어져 있던 현장이 영진 씨에게 발각됐다. 그는 사안의 경위를 밝히기 위해 바로 사법경찰을 불렀다. 자신은 급식실 천정에서 떨어진 석면 잔해들을 찾기 위해 동네 폐기물처리장과 쓰레기 집하장을 찾아갔다. 다행히도 잔재물은 학교지정장소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래도 사업자가 폐기물 처리 절차는 지킨 덕분이었다. 그러나 영진 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부모들에게 이 상황을 심각히 알렸다. 

12월 23일, 영덕초 학부모들은 경기도교육청 앞에 모여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학부모들의 우려는 언론 보도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학교가 술렁였다. 저 극성스러운 학부모 한 명 때문에 학교가 난리 났다는 비난의 시간이 영진 씨에게 계속되었다.

석면 해체 제거 작업 사전 설명회를 열고 공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건 영덕 초등학교 (작년 12월 5일)

석면 해체 제거 작업 사전 설명회를 열고 공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건 영덕 초등학교 (작년 12월 5일)

작년 12월 16일. 김경호 영덕초 교장은 출장을 갔다 오는 길에 급식실 천장텍스가 깨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석면이 유출됐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을 파악한 공사 총 책임자는 즉각 급식실을 폐쇄했다.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오자 '석면해체공사 하기 전에 학교를 옮겼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열성적인 학부모들의 바람을 그냥 지나친다는 건 더더욱 해선 안되는 일이었다. 영덕초 교장은 교직의 마지막 봉사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날, 총 책임자는 떨어진 잔재물을 찾아내고 사업자에게 경고를 했다. 그리곤 학부모과 수원교육지원청 관계자, 감리업체와 상황을 공유하고 수습을 논의했다. 학부모 모니터단은 급식실 잔여물의 전자현미경 검사를 원했다. 김경호 씨는 예산 지원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수원교육장을 찾아갔다. 그리곤 모든 과정을 모두에게 알렸다. 영덕초 학교 홈페이지에는 석면 공사 전에 학교를 옮길 생각도 했었다는 김경호 교장의 솔직한 심정이 담긴 글까지 올라왔다.

행정실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학교 홈페이지를 석면해체공사 상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비하고 모든 내용들을 게시했다. 학교장터 S2B에 전자현미경 검사 업체를 찾는 입찰 공고가 올라갔다. 모든 일들이 운동장에 갖다 놓은 콘테이너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운동장에 설치된 임시 교무실 행정실 컨테이너

운동장에 설치된 임시 교무실 행정실 컨테이너

학교 석면 해체 공사는 1군 발암 물질인 석면의 유출을 완벽히 차단하기 위해 현장을 음압실로 만들어야 했다. 철거 중 떨어지는 비산물을 모조리 잡기 위해 보양작업을 철저히 하고, 내부 공기가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고, 내부에는 정화시설을 설치해 공기를 정화한 후에야 외부로 유출했다. 석면 해체 공사 안내서에는 보양 작업시 쓰는 비닐과 테이프의 인장강도와 접착력까지 지정돼 있었다.

영덕초 교실마다 음압기가 설치됐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음압수치를 보니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지정 수치가 아니었다. 모니터링단이 지적하며 작업을 중지시켰다. 감리업체가 모니터링 단에 욕을 먹었다.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음압이 잡히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야 했다. 마침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의 원인이 발견됐다. 복도와 교실을 막아놓은 천정 쪽 벽이 문제였다.

벽을 뜯어보니 속이 비어있었다. 음압이 유지될 수 없는 상태였다. 23년 전에 했던 부실공사가 갈 길 바쁜 영덕초등학교의 안전을 발목잡았다. 김경호 교장은 경기일보에 기고글을 실어 개탄스러움을 토로했다.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 공사현장에서 뼈저리게 느낀 소회는 23년 전 학교 천장 공사는?기초·기본 안전공사를 제대로 안 했다는 것이다. (중략) 조명기구설치팀에서 천장 전등을 떼어내는 순간 음압이 0.2mmH2O 정도로 떨어졌다.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원인을 찾아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비닐보양을 제거한 후, 살펴보니 복도 쪽 창틀 위와 천장 골조 사이에 3~5cm 정도의 틈이 있어 텍스 위쪽은 복도와 교실 천장이 열려 있었다. 꼼꼼한 마무리를 안 한 부실공사였다. 급식실 석면해체·제거작업을 했더니 천장에서 단열재로 사용된 스티로폼이 떨어져 나뒹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스티로폼을 천장에 부착하지 않고 철사로 얼기설기 묶어 두었다. 역시 부실공사였다. 그동안 급식실이 너무 더워 조리하기 힘들다고 했던 조리실무사님들의 고충이 이해가 되었다.(중략)

지난 60여 일 동안 학교공사 현장을 지키면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학교장이 주관하는 남은 공사는 기초·기본 안전공사를 충실히 해야겠다. 

- "23년 전 학교 천장 공사의 민낯을 보며", 김경호 영덕초등학교장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


안전모를 쓴 영덕 초등학교 교장 김경호 씨가 공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안전모를 쓴 영덕 초등학교 교장 김경호 씨

부실공사를 발견한 교장과 모니터단은 즉시 수원교육지원청에 추가 공사를 요청했다. 발빠르게 현장을 찾아와 확인한 지원청이 곧바로 요청을 받아들였다. 공사 기간이 길어져 학사일정에 차질이 생긴다해도 이대로 두고 갈 순 없기 때문이었다. 김경호 교장은 공사 과정을 돌아보며 수원교육지원청과 도교육청의 협조도 빼놓지 않고 강조했다. 누구하나라도 삐걱댔으면 문제를 해결하고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니터링에 참여했던 영덕초 학교운영위원장 장옥현 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 신청할 땐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하게 될 줄 몰랐죠. 처음엔 참여 시간표를 균등하게 짰어요. 그런데 공사기간이 길어지니 누군가가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발생했어요."

지친 말들이 나올 법했지만 누구도 아무탓을 하지 않았다. 자진해서 모니티링에 신청한 학부모였기 때문이었을까? 도리어 서로를 격려했다. 모니터링단은 음압기 설치와 보양작업이 실시되는 교실마다 사전 청소를 돕고 작업을 점검했다. 공사 업체의 스케줄을 방해하지 않게 매일매일 아침 7시와 저녁 5시 하루 두 번 현장을 찾았다. 작년 12월 말부터 올 2월 5일까지 근 50 여일 간을 매일매일 학교로 출근해 방진복을 입었다.  

해체 공사 후 잔여물 검사를 하는 영덕초 학부모 모니터링단

해체 공사 후 잔여물 검사를 하는 영덕초 학부모 모니터링단영덕초등학교 석면 해체 공사 학부모 모니터링단이 창문틀에 잔여물 검사를 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하루 2~3시간만 있었지만, 교장 교감 선생은 우리보다 먼저 나와 밤늦게까지 계셨어요. 얼마나 피곤할까 다들 걱정했어요."

김현숙 교감 선생은 7시에 나오는 학부모들을 생각해 새벽 6시에 나와 따뜻한 차를 준비했다. 공사가 길어지며 고생한다며 먹을 것을 가져오는 학부모님들이 나타났다. 컨테이너의 탁한 공기가 안쓰럽다고 임시로 공기청정기를 설치해주는 사건도 벌어졌다. 

모니터링단이 자꾸 예고없이 현장에 나타나자 감리업체가 지적했다. 공사현장의 노동자들이 신경을 쓰면 작업이 더뎌지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모들은 제 할 일을 했다. 갈등이 생기자 총 책임자가 나섰다. 모니터링 후에 다같이 매일 모여 그 날 얘길 나눴다. 오간 대화들은 홈페이지와 모니터링 단체톡방에 공유됐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모니터링단 학부모들을 보며, 공사업체와 노동자들도 더 잘해놓고 가자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철거업체 사장은 인력을 더 투입해 공사의 속도를 높였다. 감리업체 소장도 '이런 부모들 처음 봤다'며 자신은 한 게 없다고 겸손을 보였다. 영덕초의 겨울이 그렇게 지나갔다. 
석면 해체 완공! 케이크

석면 해체 완공! 케잌으로 축하해요

2020년 2월 5일, 잔재물 전자현미경 검사 결과가 영덕초 홈페이지에 공지되었다.

영덕초등학교 1, 2, 3층 잔재물 전자현미경 검사 결과 

- 27 point 중 5 학년 6반 창틀 고형물 한 포인트에'석면함유', 나머지 26 point '석면함유 없음'
(특히, 조리실 3 point '석면함유 없음')

 

4,5층 잔재물 전자현미경 검사 결과
- 23 point '석면함유 없음'

출처: 영덕초 홈페이지 (http://www.young-duk.es.kr)

전체 교실 지정 검사 포인트 중에서 딱 한 곳에서만 석면이 검출됐다. 사실상 완벽한 공사였다. 감리업체 관계자는 이런 결과 처음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선생님들과 철거업체, 교육지원청 관계자 등 참여했던 모두가 크게 만족해 했다. 콘테이너 안에 놓인 탁자에 케익이 올라왔다. 서로를 위한 작은 축하였다. 모니터링단 학부모 한 분이 말했다.

"축하해요! 그런데 나 왠지 저기서 나올 거 같더라고......"

영덕초의 석면 해체 철거 공사는 끝났다. 아직도 LED교체 작업과 기타 공사들이 남아 있다.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쳤지만 해야할 일들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영덕초에 벌써 45명의 전학생이 몰려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행복하고 안전한 학교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문제를 대하고 풀어가는 태도에 있다고 영덕초등학교 교육 공동체가 답한다. 
케이크를 나누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는 감리업체 관계자와 모니터링단 학부모, 그리고 영덕초 선생님들

수고했어요,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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