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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골시장 칼국수…어려웠던 시절 추억 떠올리게 해
춘궁기 보리고개 면해준 미국 잉여농산물 밀가루…국수집이나 빵집 팔기도
2019-12-16 22:18:52최종 업데이트 : 2019-12-17 16:55:49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밀가루 반죽을 얇게밀어 둥글대로 굴리고 있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밀어 둥글대로 굴리고 있다

우리나라 겨울은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게 있었다.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복 없이 살던 옛날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홋옷(한겹으로된 옷)을 입고도 겨울을 버텨냈다. 산업화 시대가 열리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각종 공해로 인해 오존을 파괴 시켜 삼한사온이 이상 기온으로 바뀌어 북풍한설도 옛말이 되었다.


삼한사온인지 이상기온인지 며칠째 따뜻한날이 이어진다. 오늘도 바람한점 없는 12도의  따뜻한 날씨다.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따뜻한 날에 방콕(방에만 처밖혀있다는 말)만 하지말고 못골시장에가면 옛날 어렸을적 먹던 손칼수집이 있다는데 칼수나 먹고 장구경이나 하자고 한다. 귀가 번쩍뜨이는 소리다. 수원역에서 만나 버스를타고 못골시장에 12시반쯤 도착했다. '못골시장도 식후경' 이라 칼국수집을 찾아 들어갔다.

 

문을열고 들어서니 약 20여평 남짓한 홀이 손님들로 꽉찼다. 시장을보고 점심을 때우는 장꾼들이다. 우리 일행도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방쪽에서는 중국집 주방장 차림을한 남성이 옛날식 칼국수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기자의 근성이 발동한다. 염치불구 하고 찾아가 말을 건넸다. e수원뉴스에서 옛 추억거리에 대해서 글을 쓰는 사람인데 칼국수 만드는 과정을 사진 촬영좀 하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여 승락을 한다. 
 

사진 몇컷을 촬영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차림표를 보니 칼국수(3500원)뿐만 아니라 수제비( 4000원) 국수(3000원)등 옛날에 먹든 밀가루 음식은 다 있다. 7080 대가 넘는 노인들은 어려웠던 시절 누구나 꽁보리밥, 국수, 수제비, 칼국수의 추억을 갖고 있다. 요즘 칼국수집을 가보면 옛날식 칼국수가 아니다.옛날 칼국수는 밀가루를 손으로 몇십번씩 치댄 반죽을 둥근 밥상에 놓고 둥글대로 늘려서 몇겹으로 접은 다음 부엌 칼로 고르게 썰어서 펄펄 끓는 멸치국물에 삶아 그대로 먹었다.

치댄 반죽을 둥글대로 늘려서 몇겹으로 접은 다음 부엌 칼로 고르게 썰고 있다.

치댄 반죽을 둥글대로 늘려서 몇겹으로 접은 다음 부엌 칼로 고르게 썰고 있다.

요즘은 칼국수집이라고 가보면 말만 칼국수지 기계로 면을 뽑아 면발이 우동가락 처럼 둥글고 쫄깃쫄깃 하니 씹히는 촉감도 좋고 조개국물이라 국물맛도 시원하니 먹기는 좋다. 옛날에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끼니가 어려워 배를 채우던 시절이라 맛보다 양(量)만 많이 주면 최고였다. 갈국수가 나왔다. 국물을 물어보니 멸치국물이라고 한다. 옛날식 그대로다.

우리 옆자리에는 여성노인 둘이서 수제비를 시켜 먹는다. 검정 비닐봉지가 빵빵한 것을 보니 시장을 보고 점심 먹으러 온 장꾼 노인들이다. 머리가 백발인 한 노인에게 어디사는지를 물었더니 고색동에서 장보러 왔다가 옛날 수제비가 먹고싶어 왔다고 한다. 나이를 물었더니 90세라고 한다. 보리밥이나 밀가루 음식만을 먹던 시절에는 쌀밥 생각이 간절하더니 삼시세끼 쌀밥만 먹으니 옛추억을 떠올리며 보리밥이나 칼국수를 찾게된다.


지금은 과학 영농으로 계절에 관계없이 재배되는 과일류나 채소류 음식들을 사먹을수 있지만 옛날에는 자연농법이라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식품만을 먹고 살았다. 칼국수는 보리밥과 마찬가지로 계절식품으로 여름철 음식이었다. 밀과 보리는 10월하순 부터 11월 초순에 파종 하고 이듬해 6월 중하순에 수확을 한다. 그래서 보리나 밀은 여름철에 먹는 식량이었다.

부자들은 사철 쌀밥을 먹지만 어려운 사람들은 여름철에는 꽁보리밥 이나  국수,  칼국수나 수제비를 많이 먹었다. 저녁에는 마당에 모기불을 피워놓고 밀집 방석을 깔고 온식구들이 밥상에 둘러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칼국수를 호호 불어가며 먹으면 어머니는 이따금 부채질을 하시지만 이마에는 땀이 뻘뻘 흘리며 얼른 한그릇을 비우고 일어난다.

멸치국물에 끓인 옛날 칼국수

멸치국물에 끓인 옛날 칼국수.

기자가 군대 제대 3개월 앞두고 516 군사 혁명이 일어났다.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장도영 참모총장)혁명공약 6개항도 발표 했다. 혁명공약 4항에는  "절망과 기아(饑餓)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民生苦)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대목이 들어 있었다. 그시대 나라경제의 어려움과 국민들의 생활고를 반영한 것이다.


그시절에는 '보리고개'라는 춘궁기(春窮期)를 넘겨야만 하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보리고개는 가을에 수확한 식량은 바닥나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4~6월 보리를 수확할때 까지 먹고 살 식량이 없어  며칠씩 굶어 부황(浮黃,얼굴이 누렇게 붓는것) 이 나거나  굶어죽은 사람들도 많았던 살기가 힘들었던 시절을 말한다.

우리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어려운(논,밭 없는집들) 사람들은 '봄도 봄이고 가을도 봄' 이라고 하셨다. 봄에는 보리고개를 넘겨야 하고 가을에도 거둬들일 양식거리가 없으니 가을이 되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후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된 박정희 소장은  대통령이 되어 미국에 식량원조를 요청했고 미국은 480 양곡 (잉여농산물,밀과 밀가루)을 원조했다. 정부는 생활보호 대상자들에게는 밀가루 구호배급을 주고 일반 영세민들은 벌거벗은 산에 장마철 산사태 예방책으로 산에 떼를 심는 사방사업을 전개하고 품삯으로 밀가루를 주었다. 나중에는 집집마다 밀가루가 넘쳐나 국수집이나 빵집에 팔아 가용돈을 쓰기도 했다.

 

원조물자인 밀가루로 국수를 빼거나 수제비나 칼국수를 만들어 먹고 빵을 쪄서 간식도 해먹는 등 보리고개를 면하게 됐다. 그래서 박 대통령을 일명 밀가루 대통령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 따끈한 칼국수 한그릇을 먹으면서 어려웠던 시절 추억담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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