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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매다 시 쓰고 그림 그리는 여든둘
'여든, 꽃' 김선순 작가와의 만남
2018-09-08 19:19:29최종 업데이트 : 2018-09-09 10:27:51 작성자 : 시민기자   유미희
2018수원한국지역 도서전이 9월 6일부터 10일까지 행궁광장과 행궁동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촘촘하게 기록하는 지역 출판을 매개로 팔도의 문화를 알리는 행사다. 전시, 공연, 체험과 강연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일상의 소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작가와의 만남이 행궁동 카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여든, 꽃'이라는 책을 낸 김선순 작가의 강연장으로 가보았다. 행사는 8일 11시부터 팔달구 화서문로에 위치한 찻집 다전에서 진행되었다. 일반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편안한 뜰이 펼쳐졌다. 더위가 가시고 바람이 서늘한 날이어서 마당에서 여는 행사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자갈이 깔린 마당에 의자를 내놓고 참가자들이 앉거나 나무 그늘에 서기도 했다. 강연은 김선순 작가와 진행자가 묻고 대답하는 형식이었고 책마을 해리의 이대건 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강연 전  독자들과 작가의 담소하는 모습

강연 전 독자들과 작가의 담소하는 모습

 
작가 김선순 할머니 연세는 여든둘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학골 독실마을에서 성장하고 해리면 월봉 마을로 시집와 살았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독실댁으로 불린다. 평생 농사를 짓다가 이제는 책마을학교에서 글 배워 쓰고 그림을 그리며 지낸다. 도시로 떠나 사는 자녀들과 몇 년 전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로 쓰기도 한다.
 
작가의 첫 책인 '여든, 꽃'은 그림책이다. 그림과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문장들은 그림 설명이라기보다 작가의 속마음을 드러낸 말들이다. 투박한 그림에는 그리움과 정겨움이 가득 담겨있다. 그림에는 사람 둘이거나 새 두 마리가 종종 등장한다. 누구냐는 질문에 작가와 언니라고 한다. 어렸을 적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엄마처럼 키워준 언니에 대한 고마움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항상 두 사람을 그려서 남편인 줄 알았다는 사회자의 말에 "남편은 이제 보고 싶지도 않아요. 그런데 내가 일을 못한다고 맨날 남편과 싸우다가 세월 다 보낸 것이 제일 맘에 걸려요. 고생만 하다 돌아간 것 같아 생각하면 맘이 짠하고 아프지요." 정작 안 보고 싶다던 남편 얘기를 할 때는 목이 멨다. 글마다 그림마다 언니와 남편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카페 마당에서 진행된 강연회 모습

카페 마당에서 진행된 강연회 모습

 작가는 5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TV를 보든 무엇을 보든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꽃, 나비, 새, 동물, 과일나무를 즐겨 그렸는데 대상을 앞에 놓고 보면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관찰했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그린다. 그럼에도 그림은 사물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낸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보았던 것들을 그린 것이라 그렇다.
김선순 작가의 작품

김선순 작가의 작품

 작가가 글과 그림을 배운 책마을학교는 전북 고창군 해리면 나성리에 있는 폐교를 마을 도서관으로 꾸민 곳이다. 평생 그림이라는 것을 배운 적 없는 할머니들이 자신 안에만 묵혀 놓았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강연회에는 작가의 가족들이 함께했다. 며느리가 그림책을 낭독했다. 그림을 하나씩 넘겨가며 해설하는 작가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작가에게 그림은 에너지였다. 일하는 건 힘들어도 그림만 생각하면 피곤하지 않고 기운이 났다.
 
그림 해설이 끝나고 함께한 독자가 질문했다. 그림을 그리는 도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사인펜이라고 답했다. 색색의 사인펜으로만 그림책이 완성되었다. 글자를 모르고 사셨던 어르신들이 요즘 한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책으로 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출판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대답은 책마을 해리의 촌장인 이대건 대표가 대신했다.
"할머님들의 글과 그림을 알리고 지역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가치 있는 것을 알리는 방법이 출판이기도 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역사로 기록하는 것도 지역 출판의 일이기도 하고요. 기획하고 편집하고 만들어 내는 일을 책마을 해리에서 합니다." 
자신의 책에 사인하는 김선순 작가

자신의 책에 사인하는 김선순 작가

작가는 마침 인사를 했다. "지금 책마을학교 4학년인데 초등과정밖에 없으니 아쉬워요. 제가 책을 내보니 계속 더 배우고 싶어지네요. 책마을 학교에서 대학에도 가고 싶습니다. 제 나이 여든둘, 옛날 같으면 없는 나이인데 지금은 오래 살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시대네요. 감사한 일이죠."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강연이 모두 끝나고 저자 사인회가 이어졌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한 글자 한 글자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정성이 느껴졌다. 작가의 말처럼 지금은 오래 사는 시대다. 오늘 작가와의 만남은 살아가는 동안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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