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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멀리 계신 아버지가 그립다
2012-12-30 12:11:23최종 업데이트 : 2012-12-30 12:11:23 작성자 : 시민기자   김대환

생일을 맞은 토요일 아침. 아내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노라니 생일의 기쁨보다 청승맞은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청승이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다. 왜 기쁜 생일날 아버지가 자꾸만 떠오르는 걸까.

그렇잖아도 어젯밤 꿈에 아버지를 뵈었다.  안되겠다 싶어 아내와 함께 아버지 좋아하시던 음식 몇가지를 차려 올리기로 했다. 기일날은 아니지만, 나를 낳아서 길러주시느라 힘드셨을걸 생각해 내 생일날 당신 누워계신 고향 선산으로 가기로 했다. 

장을 보러 갔다. 장이라고 해서 당신 기일날 제상 차리는 수준으로 볼 건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귤과 사과, 그리고 반찬가게에서 고사리 무침을 좀 사다가 상을 차리리라 마음 먹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당신 제사라면 고사리는 말려둔걸 사다가 집에서 삶아 맛나게 음식을 해야 하지만, 남편이 자기 생일날 느닷없이 아버지를 뵈러 간다 하니 아내가 음식을 할 시간이 없었기에 부득이 요리해 놓은걸 사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가 '맛있다' 하시던 음식은 왜 이리 값 싸고 흔한 것들뿐인지, 가슴이 먹먹해 왔다. 사과, 귤, 고사리 무침. 이 외의 음식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간단한 음식이나마 아버지를 직접 모셔서 조리해 드린 적이 얼마나 있던가. 
아버지 임종 직전, 나는 미음 약간을 입안에 흘려드렸을 뿐이다. 세상에 수많은 음식이 있건만 아버지는 병석에 계시느라 부드러운 음식만 좋아하셨다. 임종이 가까웠다는 의사 말을 듣고 뭔가 더 드려야겠다는걸 생각해낸게 고사리 나물 무침이었다. 

아버지는 고사리 무침을 참 좋아하셨다.
그래서 평소에 고사리를 즐겨 드시던걸 기억해 낸 내가 기특했다. 그만큼 아버지와 고사리는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아버지는 고사리 나물을 입 안에서 몇 번 씹으시기는 했지만 마저 다 넘기지 못하셨다. 나는 야윈 아버지 손을 잡고 "아버지 아들로 태어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꼭 아버지 아들로 태어날께요"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나의 울음 섞인 약속을 들으며 서서히 혼을 거두시며 손을 놓으셨다. 고사리나물  때문에 기도가 막혀 돌아가신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고사리를 드린 건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라고, 지금도 그리 생각한다.

간단한 제상 음식을 꾸려 차를 몰고 나섰다.
날씨가 꾸물꾸물 어둡다. 비가 오려나, 눈이 오려나 싶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겨울 들녘의 풍경. 생경하면서도 푸근하고 아름다웠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들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어머니는 웃으셨다.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서 고맙다 하셨다.

지금 아버지 뵈러 가고 있다 하니 놀라신다. 금세 도착해 같이 점심 드시자고 했더니 아들이 온다는 기대감에 목소리가 밝아지셨다. 부모들은 다 그렇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한동안은 슬픔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밥을 먹을 수도, 일상 생활을 할수도, 말을 하거나 웃을수도 없었던 수많은 날들.
그런 몇해가 지나고 지금은 아버지 생각을 하는 날보다 안하는 날이 몇배 더 되는 날을 보내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그리움으로 슬퍼했던 당시와는 달리. 당신 떠난 후 그렇게 슬프게 울었던 때와 달리 이제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사는 얘기와 걱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떤 때는 정말 불현듯 당신 생각이 떠올라 혼자서라도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눈물을 쥐어 짜내고 싶어도 그렇게 마르도록 쏟아지던 눈물이, 이제는 흐르지 않았다.

불효 막심한 아들놈...스스로의 자책을 하면서 다른이들에게 물었더니 원래 그런거라며 위로를 한다.
사람의 삶과 죽음, 부모와 자식의 삶과 이별이 그런것 같다.
잊혀지는 것. 인정하기 싫어도 잊혀짐을 받아들여야 하는것.

몇해 전 봄, 지방에 갔다 오는 길에 도로변 노점에서 어느 할머니가 싱싱해 보이는 풋 고사리를 뜯어다 놓고 팔기에 한 봉지를 샀다. 그해에는 내가 번 돈으로 산 고사리를 (직접 산에서 뜯지는 못했지만) 집에서 말려서 보관해 두었다가 당신 기일날 그걸로 무침을 해서 제사상에 올렸었다. 
아버지가 제사상에 찾아와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효도의 기쁨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설거지 때 젓가락만 서너 뭉치일 만큼 대지주 집안이었고, 그래서 공산당에게 알몸으로 쫓겨나는 바람에 제대로 못 먹어 키가 크지 못했다며 조용히 웃으시던 아버지. 
병석에 계실때는 못난 자식들이 병원비 걱정할까봐, 늘 마음 졸이시던 아버지셨다.

 

생일날, 멀리 계신 아버지가 그립다_1
생일날, 멀리 계신 아버지가 그립다_1

고향에 도착해 어머니를 뵈러 가기전에 먼저 아버지께 갔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 차를 두고 쉬엄 쉬엄 구비 돌아 산을 오르자니 며칠전 내린 눈이 여전히 남아 잔설이 하얗게 산을 덮고 있었다.
아버지가 내 어릴 때 들에 갔다 오실 때마다 지게를 한쪽에 세워 두시고 산 딸기를 따던 곳이다.  

싸 들고 간 고사리 무침과 사과와 귤을 펼쳐 놓고 아버지께 절을 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아버지, 좋은 세상에서 잘 계시지요? 저희들 잘되도록 돌봐주셔야 해요. 다시 태어나도 아버지 아들로 태어날겁니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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