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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점 아이의 영어성적을 보노라니...
2012-11-30 01:58:15최종 업데이트 : 2012-11-30 01:58:15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희
학원에서 영어 시험을 치고 왔다는 아이의 표정이 참 밝아서 좋다. 시험을 잘 봤다며 염려 말란다.
우선 잘 치렀건 못 치렀건 시무룩하게 앉아 뭐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것 보다는 그래도 잘 치렀으면 잘 치른대로 잘한것이고, 못 치렀다면 앞으로 분발해서 열심히 잘 하겠다는 의미이니 씩씩한게 훨씬 나아 보였다.

시험 하나 가지고 방 구석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죽치고 앉아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달갑지 않다. 거기다가 정말 잘 치렀다니 기분이 좋은건 솔직히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가방을 던져 놓고 아이가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그래도 혹시나 싶어 궁금한건 모든 엄마들, 속 좁은 아녀자의 보통의 심성일 것이다.

"정말 잘 본거야?"
"네, 그렇다니까요. 염려 붙들어 매세요"
"이녀석이... 어디서 그런말은 배워가지고. 그래. 알았으니까 너무 늦지 않게 들어오렴. 저녁 먹어야 하니까"
"네"
후다닥 뛰어 나가는 아이. 그러나 아이의 말만 믿고 있기에는 영 켕기는(?) 느낌이 들어 아이 가방을 열어 보았다.  손에 잡히는 학원 자체평가 영어 시험지.
 
'그래, 평소에 영어는 참 재미있다고 한 녀석이니까, 90점쯤은 받았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시험지를 펼치는 순간... 이게 웬일? 
이게 점수야? 아니면 제녀석 아빠 출생년도(?)야? 64점? 이게 점수라고? 

시험지를 채점 한 뒤 위에다가 표시한 점수를 보고 나는 잘 치렀으면 잘 치른대로, 혹은 못 치렀으면 못치른대로 씩씩한 모습이 좋다는 잠시전의 생각이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60점대면 수우미양가로 쳤을때 낙제인 50점대를 간신히 넘긴건데... 이걸 가지고 와서 저렇게 뛰어 논단 말야? 그것도 의기양양하게?

머릿속이 복잡해 지고 슬금슬금 부아가 올라왔다. 그동안 돈 들여서 보낸 영어학원인데...  머리가 끓고 열이 받아 뚜껑 열린다는 남자들의 표현이 이게 딱 맞다 싶었다.
하지만 이건 우스갯소리라 해도, 아이의 점수는 정말 그렇게 우습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영어 과목이라는 중요성을 놓고 보면 더 그랬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아이 아빠의 주관적인 지론에 따라 학교성적이 아주 크게 떨어지지 않는 한 나도 신경 쓰지 않고 알아서 잘 하려니 하며 굳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공부 공부 하지 않은채 여태껏 키워왔다.

 
64점 아이의 영어성적을 보노라니..._1
64점 아이의 영어성적을 보노라니..._1

그런데도 6살 유치원때 컴퓨터를 만지며 영어를 저절로 익힌 아이라 당연히 '아주 잘하지는 않더라도 중간은 하겠지.'하고 믿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기대는 학원의 채점 점수가 적힌 시험지를 받아든 순간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영어 하나 때문에 온 나라 아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판에 점수 100점 만점에 64점이라니. 영어 한 과목이라 해도 이것은 도저히 내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영어교육은 필수가 아닌가. 내가 학교에 다닐 때도 국어 수학과 함께 영어가 가장 중요한 과목이었고 지금은 아예 "영어, 영어"만 외치는 세상인데. 
기본만 갖추고 조금만 노력하면 늘 90점 이상은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아왔는데....너무 기가 막혔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비단 영어만의 일이 아니라 다른 과목 역시 비슷한 수준일 것이고, 특히 아이가 내게 평소에 거짓말 하는 성격이 아닌걸 생각하면 더 문제가 심각했다.

즉 그 점수를 가지고 "너무 낮게 나왔으니 분발 해야겠다"는 경각심을 갖는게 아니라 "64점 정도면 잘 받은거지 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이 사실을 고하며 내가 심각하게 문제를 의논하자 놀랍게도 남편은 아이보다 더 심각(?)했다.
"아니 여보.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 아이 학원 시험성적 가지고 왜 난리야. 그냥 둬봐. 나중에 보자구. 그냥 뛰어 놀게 놔둬. 어디 가서 도둑질 하고 쌈박질 하며 다니는거 아니잖아. 잘 뛰놀고 씩씩하잖아 우리 아들. 여보, 당신도 그동안 애 믿고 잘 놔두더니만 갑자기 왜 그래? 그냥 계속 기다려 줘. 알았지?"

남편은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한참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또 그런것 같기도 했다. 
'그래, 남편 말도 일리는 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 아이 성적 가지고 호들갑을 떨게 뭐람'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를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또한 공부가 아니라 뭐든지, 정말 뭐든지 제녀석 하고 싶은걸 제대로만 해준다면야.
널 믿고 기다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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