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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세대간의 소통, 김장 담그기
2012-11-30 11:18:34최종 업데이트 : 2012-11-30 11:18:34 작성자 : 시민기자   오수금

이웃과 세대간의 소통, 김장 담그기_1
이웃과 세대간의 소통, 김장 담그기_1

엊그저께 저녁, 이웃집에서 큰 대접에 랩을 씌워 뭔가를 들고 왔다. 
김치였다. 맛있게 생긴 굴이 듬뿍 들어간 보쌈 김치. 받아 든 순간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반짝반짝 윤기까지 자르르 흐르는 보쌈김치를 가져다 주면서 시골에서 김장을 한 뒤 만들어 온건데 맛좀 보라며 건네준다.

빈 그릇만 돌려줄서 없어서 냉장고에 들어있던 사과와 배 몇 개를 봉지에 담아 주었더니 한사코 안받는단다. 그러면 나도 김치 안받는다고 버티자 그제서야 웃으면서 잘먹겠노라고 가져 간다.
그 집 보쌈 김치 지난 며칠간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앞으로 그 집 이사 안가면 해마다 얻어 먹자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입안에서 착착 감기던 그 보쌈에는 밤도 들어가고, 익힌 은행에 굴과 국산 참깨가 듬뿍 들어가 있었다.
김치맛의 기본은 뭐니뭐니 해도 원재료인 배추 맛인데 시골에서 재배한 배추를 금세 가져다가 절인후 바로 만들었다 해서인지 배추 자체가 고소하고 맛있었다.
덕분에 입맛이 행복했던 며칠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11월초부터 졸지에 돼지고기 보쌈김치를 자주 먹게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얻어온 김장김치 때문이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남김없이 먹어 치우더니 계속해서 먹게 되자 점차 고기를 남긴다.

우리 어릴 때의 김장 김치는 그 노오랗게 절여진 고갱이만으로도 맛있었다. 본격적으로 양념을 넣기 전에 간을 잘 맞추어 절여진 배추 잎에 양념을 돌돌 말아 입에 쏘옥 넣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맛을 그 어떤 맛에 비유할까. 
이렇게 해마다 철마다 김장은 계속되고 있는데 정작 김장하는 모습은 주변에서 눈에 잘 뜨이지 않고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야 김장철 뉴스로 보이니 그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 아파트마다 가만히 들어앉아 가족 단위의 소량 김치를 담그다 보니 조용한 김장철이 되는건지, 아니면 젊은 주부들이 김장 담그기가 번거로와서 어디선가 공장 김치를 사다가 김치 냉장고에 재어 놓고 겨우내 먹는건지.
예전에 아파트 살림이 아닐 때는 집집마다 크건 작건 마당 한켠에 김장독 자리를 파는 것으로 김장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동네 골목만 지나가도 김장 분위기가 왁자스러웠다. 

집의 울타리 너머 절인 배추가 산같이 쌓여 있고 동네 여인네들이 너나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속을 버무리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로운 행사였다.
떨어져 나온 배추 우거지와 마당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줄기가 골목길까지 이어져있기 일쑤였다. 얕은 담 너머, 열어놓은 대문 안으로 먹음직스럽게 쌓여 있는 포기김치는 지나는 손마저도 침이 삼켜지는 맛깔스런 풍경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 결혼후 몇 년만에 직접 도시에서 김장을 한적이 한번 있는데 나의 첫작품 김장의 기억은 지금도 잊을수 없다. 
학창시절 가정 가사 시간에 배운것, 평소에 친정엄마 하던 방식을 더듬어 가며 배추에 칼집 넣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쉬웠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한자리에 앉아서 한 자세로 일하는 게 힘들었다. 예부터 주부들 일이 등골 빠진다는 어른들 말씀, 하나도 그르지 않음이 그때 실감됐다. 시작부터 목덜미가 뻐근하고 어깨가 쑤셨다. 자주 자세를 바꿔 봐도 큰 효과는 없다.

콧물도 났다. 김치 담그는 과정은 실로 멀고도 험난했다. 전업주부들이 존경스러웠다. 배추 다듬고, 소금 치고, 날라서 재고(힘쓰는 일은 남편이 도맡아 해줘 그나마 나았다), 잠설치며 씻고(배추는 씻는 과정이 특히 중요하다고 해서 잠도 제대로 못잤다. 씻는 데만 5시간이 걸렸다), 갓, 미나리, 잔파, 무 다듬고 씻고 썰고, 생새우 굴 씻고, 생멸치젓 일일이 다지고, 양념버무리고, 드디어 배추에 양념 넣기까지...
옆에서 도와준 남편의 표현을 빌리면 실로 엄청난 작업이었다. 그날의 김장은 유달리 속재료가 많아서 그랬으리라.

힘들었노라 엄살 떨지만, 사실 그때의 첫 김장체험은 몸은 고달팠어도 몇줄로 요약해버리기엔 아깝다 싶을 만큼 재미도, 의미도 있었다.
그후 김장을 혼자 하기에는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다음부터는 친정에 가서 온 가족이 다같이 하고 거기서 각자 나눠 오고 있다. 친정 부모님이 살아계신 동안은 그렇게 할 작정이다. 그 덕분에 친정도 한번 더 가고, 다른 가족들도 만나고.

어쨌거나 우리에게 김장은 그때의 단순한 음식 만들기를 뛰어넘어 세대와 세대, 가족과 이웃간을 잇는 소통과 나눔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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