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버스비가 없어서 사과봉지를 놓고 내렸다
2012-11-01 14:35:31최종 업데이트 : 2012-11-01 14:35:31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희

충청북도 영동으로 귀농한 친구가 감 농사가 풍년이 났다며 싱글벙글 전화를 한건 한 달 전쯤이었다. 

충북 영동은 원래 감으로 유명한 고장이라 홍시, 연시에 곶감까지 그걸로 큰 수확을 올리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풍년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닌 듯하다. 농민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 바로 풍년 든 농작물의 가격이 폭락 하는 일이다. 오죽하면 김장철에 무 배추 가격이 대폭락해서 수확할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아 농민들이 애써 가꾼 김장채소를 트랙타로 갈아엎을까.

귀농한 친구 역시 감은 풍작이었으나 막상 수확을 하고 보니 가격이 영 아니올시다여서 고민 끝에 그걸 트럭에 싣고 와서 직접 팔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많은 감을 다 팔겠다는 욕심을 낸 게 아니고, 직접 한번 팔아보면서 가격이 어떻게 나가는지, 사 먹는 사람들의 생각은 농산물 가격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친구는 지난 토요일, 정말 트럭에 감을 잔뜩 싣고 와서 일단 도매로 넘길 건 넘기고 길거리에서 직접 팔아보기 위해 올라왔다는 전화를 했다.

이웃집 주부의 승용차를 얻어 타고 친구가 감을 싣고 온 정자동 아파트 단지 앞으로 가 보니 정말 붉고 때깔 좋게 잘 익은 감을 잔뜩 싣고 온 친구가 남편과 함께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감이야 많이 팔리든 안 팔리든 이렇게 하루나들이 삼아 나온 것도 과히 나쁘지 않다며.

버스비가 없어서 사과봉지를 놓고 내렸다_1
버스비가 없어서 사과봉지를 놓고 내렸다_1

나는 친구 일이니 단감 3상자를 샀다. 1상자는 가까이 사는 시누이 집, 한 상자는 우리가 먹고, 또 한 상자는 내가 좀 드릴 곳이 있어서 모두 3상자를 구입한 것이다. 함께 간 이웃 주부의 차에 감을 실려 보낸 후 나는 친구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어 자리를 뜨려 하니 검은 봉지를 하나 쥐어 준다. 거기에는 씨알이 아주 굵은 사과가 여덟 개나 들어 있었다. 무거워서 들기 힘들 정도로 사과가 컸다.

친구는 가져다가 아이들 먹이라했다. 장사하는데 공짜로 먹을 수야 있겠냐며 돈을 지불한다고 하자 이미 감을 3상자나 산 걸로 충분하다며 자꾸만 등을 떠 밀기에 하는 수 없이 사과 봉지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무거운 사과 봉지를 들고 안쪽으로 들어가려다 보니 아차차...

지갑이 없다. 아니 지갑이 애초부터 없었다. 집에서 나올 때 이웃집 주부의 승용차를 얻어 타고 왔는데 내 지갑은 그 차안에 들어있고, 그 승용차는 이미 출발해 버렸다. 그것도 까맣게 잊은 채 그냥 사과 봉지만 얻어 들고 버스에 올랐으니. 이 일을 어쩌나, 버스요금을 낼 수 없잖아. 에그 칠칠맞기는... 난감한 가운데 기사님께 이실직고를 해야겠기에 눈치를 살피며 

"저기, 저... 죄송해서 어쩌죠?"하면서 말을 더듬적거렸다. 
그러자 순간 대충 눈치를 챈 기사님의 한마디가 나를 녹여버린다.
"다음번에 타실 때는 두 곱으로 내실 거죠? 허허허. 그냥 앉으세요"

단정한 머리에 잘 다려 입은 제복 차림, 하얀 장갑, 멋쟁이 구두를 신은 기사 아저씨는 그야말로 친절과 이해심으로 무장 하신 듯 했다. 일부러 그런 식으로 공짜 버스를 탈 위인은 아니라는 거 생각하셨는지 그냥 봐주셨다. 

고마운 마음에 기사님 바로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기사님은 버스를 타는 손님에게 일일이 웃는 얼굴로 "어서 오세요"하고 내릴 때는 운전석 앞에 있는 거울을 보며 "안녕히 가세요"를 잊지 않았다.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도 정거장마다 되풀이 하셨고, 그뿐 아니라 버스노선을 묻는 사람들에게도 몇 번 몇 번을 타시라고 창문 밖으로 크게 대답해 주었다.  

어찌 보면 버스 기사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거늘, 그러나 정말 그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거 다 알 것이다. 요즘 이런 기사님 보기 쉽지 않은데. 버스가 우리 목적지까지 다 왔을 때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사과 봉지를 운전석 쪽으로 슬쩍 밀어 놨다.

"기사님, 사과 요 녀석들이 아주 달다고 하네요. 시골에서 직접 따 들고 온 거거든요. 오늘 댁에 가셔서 예쁜 애기들하고 같이 드셔요!" 순간 기사 아저씨가 화들짝 놀랐으나 나는 이미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내가 먹을 사과를 기사님께 드린 기분은 기쁜 뭔가로 변해 있었다. 버스기사님은 고맙다는 표시로 비상깜빡이를 한동안 켜서 신호를 줬다.

감 팔러 수원 나들이를 나온 친구 덕분에 나도 유쾌한 나들이를 했다.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