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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 인문학의 즐거움에 빠지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강화도 전등사와 광성보를 찾아서
2018-10-20 11:44:31최종 업데이트 : 2018-10-26 09:27:16 작성자 : 시민기자   유미희

일월도서관에서 진행한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일월도서관은 자연과 환경이라는 주제에 특화된 도서관이다. '인문학, 자연과 호흡하다'라는 큰 주제로 올해 8월부터 이미 두 차례나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이 3차로 올해 마지막 길 위의 인문학 행사다. 10월 4일과 11일에는 도서관에서 강연이 선행되었고 18일에는 자연을 찾아 떠난 일정이다.

 

이번 강연은 함민복 시인이 맡았다. 함 시인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눈물은 왜 짠가' 등의 저서를 냈고 윤동주 문학대상을 받기도 했다.

 

강연과 탐방이 결합된 길위의 인문학 인기 끌어

1회 강연은 '문학 속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소 주제를 놓고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참여자들이 시를 낭송하는 시간이 있었다. 시의 분위기를 살려서 멋스럽게 낭송한 남성분도 있었다.
 

2회는 '시가 된 자연'이라는 주제였다. 자연을 느끼게 하는 여러 편의 시를 시인과 참여자가 읽었다. 함 시인은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라는 글을 쓴 이우환 선생의 일화를 소개했다. 사물의 본질을 보려 하지 않고 단지 자기의 믿음으로만 볼 때 발생하는 오류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권했다.
 

강연 말미에 참여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김치찌개를 예로 들었다. 좋은 재료만 많이 넣는다고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퇴고 과정도 중요하다고 일러 주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힘은, 개인의 내면에 품고 있는 것의 총합과 관계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길 위의 인문학이 매력적인 이유는 강연과 탐방이 결합된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계절에 자연 속으로 떠나는 것만큼 좋을 것도 없으니 말이다. 탐방 일정은 강화도 전등사와 광성보이다. 일월도서관에서 모여 45인승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 전등사에 도착했다.

전등사 남문에서 노란 단풍과 맑은 하늘이 탐방객을 맞이한다

전등사 남문에서 노란 단풍과 맑은 하늘이 탐방객을 맞이한다

자연속으로 들어간 인문학, 전등사의 가을에 빠지다


전등사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초기에 지어졌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건축되었으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전등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등사는 호국불교의 결정체인 팔만대장경을 조성하는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려 시대 몽골군의 강화도 침입에도 사찰이 굳건하게 유지되었다. 조선 광해군 때 건물이 전소되자 재건했다. 고려 시대에는 가궐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사고와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각이 있었다.

 

전등사는 정족산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건국신화의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성을 쌓았다고 해서 삼량성이라고도 한다. 고종 3년에 프랑스군이 강화성을 공격했던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이때 양헌수 등 무장들이 정족산성을 수비하여 프랑스군을 물리쳤고 이곳에 보관하던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보를 지켰다. 동문 쪽에 이를 기념한 양헌수 비가 있다.

전등사 내에 있는 찻집. 넉넉한 뜰이 아름다운 가을색으로 색이 짙어간다

전등사 내에 있는 찻집. 넉넉한 뜰이 아름다운 가을색으로 짙어간다

남문으로 올라가니 노랗게 물들어가는 숲이 시원하게 반긴다. 경내에는 넉넉한 정원을 갖춘 찻집이 있다. 찻집에 앉아 조용히 숲을 보면 좋겠지만 탐방 일정이 그리 넉넉하진 않다. 향기로운 차 한잔을 아쉬워하며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떡 하니 마주친 것은 대조루였다. 사찰의 본당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이다. 대조루를 통과하니 대웅전이다. 대개의 사찰에서 보았던 짙은 단청의 건축물이 아니라서 좋았다. 수수해 보이지만 오래된 건물의 기품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대웅전 근처에는 우리와 같은 단체 관람객들이 해설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경내를 거닐며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대웅전 앞에서 함민복 시인이 사찰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웅전 앞에서 함민복 시인이 사찰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족사고지로 향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지인 만큼 산성안의 가장 위 쪽에 있었다. 사고지 앞은 전등사의 빼어난 사진 명소이기도 하다. 멀리 초지진이 내려다보인다. 이날은 구름이 끼고 햇볕이 나오기를 반복해서 밝은 사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정족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외부 침탈에서 보존하기 위해 보관했던 곳이다

정족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외부 침탈에서 보존하기 위해 보관했던 곳이다

정족사고지에서 내려오면서 함 시인은 근처에 있는 오규원 시인과 김영태 시인의 수목장을 소개했다. 시인 친구들이 두 선배 시인의 수목장을 잘 보살피라는 의미로 함민복 시인에게 능참봉이라는 직위를 주었다는 에피소드를 얘기해 모두 웃게 만들었다.

 

광성보에서 구한말 역사의 현장을 생각하다

오후에는 광성보를 탐방했다.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새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로 천도한 후에 지었다.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다.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용감하게 항전했으나 무기의 열세로 크게 패했다.

우리 군사들은 미군의 무기에 대항하기 위해 6월임에도 여러 겹의 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전투에 나갔다. 총알이 쉽게 솜을 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총알을 막는 효과는 있었으나 화력으로 인하여 솜옷에 불이 붙었다. 물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물에 빠진 군사들은 미군에게 쉽게 당하고 말았다.  미군은 약간의 병력 손실을 보았지만 우리 군사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통상수교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철수해야만 했다. 우리 민중의 목숨을 건 처절한 방어 의지에 병인양요의 프랑스나 신미양요의 미국이 기가 질려 돌아갔다는 얘기도 있다.
 

이때 순절한 무명용사들의 무덤이 있다. 신미 순의총이다. 7개의 봉분이 올망졸망 모여있다. 한 개의 분묘에 여러 명의 시신을 합장했다. 묘역 옆에는 크게 자란 배롱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150년 전 광성보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던 안타까운 넋들이 해마다 배롱꽃으로 붉게 타올랐을까.

 

손돌목돈대 쪽으로 걸었다. 돈대는 변방의 요지에 구축하는 초소 같은 것이다. 총구를 설치하고 방위시설로 사용되었다. 강화도에 53개의 돈대가 있고 그중 3개가 광성보에 있다. 이 날 광성보에는 초등학생들이 단체 탐방을 왔다. 역사의 현장이고 야외 활동으로서 광성보는 좋은 학습장이다.

용두돈대는 물살이 거세서 자연적 교두보 역할을 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던 장소다.

용두돈대는 물살이 거세서 자연적 교두보 역할을 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장소다.

손돌목돈대에서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니 해안에 용두돈대가 나타난다. 용두돈대 아래 바다는 물살이 세다. 심할 때는 천둥소리가 날 정도로 사나워서 천연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용두돈대를 둘러보고 돌아올 때는 구름이 물러가고 해가 나왔다. 바람도 서늘하게 불어 걸어 나오는 숲길이 청량했다. 광성보 주변 들녘은 가을로 짙어가고 있었다.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라고 가을을 노래한 시인의 감성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인문학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있다. 조용히 앉아 강의를 듣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으로만 여겼던 종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참여와 활동으로 연결한다. 더 많은 시민이 인문학의 즐거움에 빠져보기를 권한다. 

길위의인문학, 일월도서관, 강화도전등사, 광성보, 신미양요, 순돌목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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