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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화홍문에 왜 이무기가 있을까
이무기, 화홍문으로 들어오는 수마 다스려
2020-01-28 14:28:22최종 업데이트 : 2020-01-29 14:06:20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화성 화홍문, 동쪽과 서쪽에 이무기 기둥돌이 마주보고 있다.

수원화성 화홍문, 동쪽과 서쪽에 이무기 기둥돌이 마주보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을 답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의 대화를 듣는 경우가 있다. 화홍문에서 해태같이 생긴 돌조각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는데 다리를 건너던 여학생들이 한마디씩 한다. "어머 여기에 왜 해태가 앉아 있을까?", "아니야 양같이 생겼는데."

화홍문에 있는 돌조각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화성성역의궤 도설에는 이무기 머리돌 석이두(石螭頭)는 용연에 보이고 이무기 기둥돌 이주석(螭柱石)은 북수문에 보인다며 그림으로 그렸고 북수문 내도(北水門 內圖)에도 한 쌍의 이무기 기둥돌이 보인다. 화홍문 다리 동서 양 끝에는 8면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이무기를 새겼다는 설명이 있다. 용연 서쪽에 석각 이두(石刻 螭頭)를 설치하였는데, 물이 많이 차면 이 이두로 물을 화홍문 밖으로 뿜어내게 되어 있다. 이무기에 대한 그림 및 설명은 이것이 전부다. 왜 세웠는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현재 이무기는 성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무기의 정체성으로 봤을 때 성 안쪽을 바라보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이무기는 벽사(辟邪)의 의미로, 해마다 수원천이 범람하는 환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치수(治水)에 대한 희망과 백성들을 편안케 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세운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수원천 상류 방향인 성 밖을 바라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북수문 내도(北水門 內圖)속의 이무기는 성 밖을 바라보고 있다.

수원화성 화홍문 이무기 기둥돌, 왼쪽은 서쪽에 있는데 돌기둥 아래 위가 부러졌고, 오른쪽은 동쪽에 있는데 돌기둥 아래가 부러졌다.

수원화성 화홍문 이무기 기둥돌, 왼쪽은 서쪽에 있는데 돌기둥 아래 위가 부러졌고, 오른쪽은 동쪽에 있는데 돌기둥 아래가 부러졌다.

 
화홍문은 1794년 2월 28일 터를 닦았고 3월 1일부터 도랑 치는 일을 시작했다. 도랑 치는 일이란 수원천을 준설하면서 개천을 깊게 파고 넓힌 것인데 화홍문 밖 5~6백보(586~703m)에서 시작해 남수문 밖까지 한 것이다. 수원화성 축성에서 도랑 치는 일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여름 장마 때마다 범람하던 수원천의 치수가 해결되어야만 북수문과 남수문을 안전하게 건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준설을 통해 나온 막대한 양의 자갈과 모래는 성을 쌓는데 이용되었다. 성을 쌓은 뒤에도 매년 여름 장마가 걷히면 개울을 쳐서 소통시키는 것을 연중행사로 한 것을 보면 치수(治水)야말로 가장 중요했던 일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치수에 공을 들였음에도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수원천의 범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화홍문은 1795년 1월 13일 준공되었는데 1846년 6월 9일 하루 종일 400mm 가량의 집중호우로 북수문, 매향교, 남수문이 무너지는 등 수원화성이 전체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수원부계록에는 "이번 9일의 비는 밤낮으로 하루 종일 쏟아졌는데 거의 2척 가량이나 되었으며 하천물이 크게 불어나서 북수문 아래에 깔린 전돌이 뒤로 밀려서 떠내려갔고 내홍예석문 및 그 위에 포설한 청판석이 모두 무너졌으니 문루는 전체가 무너져 내렸습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무너진 다리와 건축물들은 1848년 봄이 지나서야 보수를 완료했다. 1846년의 홍수로 이무기 돌도 쓸려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1906년 헤르만산더가 찍은 화홍문 사진, 서쪽의 이무기 기둥돌에는 이무기가 부러져 나가 없다.

1906년 헤르만산더가 찍은 화홍문 사진, 서쪽의 이무기 기둥돌에는 이무기가 부러져 나가 없다.


1906년 헤르만산더가 찍은 화홍문 사진 2장이 있다. 1장은 왼쪽의 이무기 기둥돌만 있을 뿐 이무기가 없다. 1장은 오른쪽의 이무기가 보이는데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이무기 엉덩이가 보인다.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1909년에 찍은 화홍문 사진이 있는데 오른쪽의 이무기가 성 밖을 바라보고 있다. 로베르트 베버가 찍은 사진 등 1910년대 당시의 사진 여러 장을 비교해보면 왼쪽에는 이무기 기둥돌만 있었고 오른쪽에는 성 밖을 바라보는 이무기가 있었다.

1922년 7월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또다시 북수문, 매향교, 남수문이 무너졌다. 화홍문은 1933년에 복원되었는데 이후의 사진을 보면 이무기가 바라보는 방향이 성 안쪽으로 바뀌었다. 성 안쪽에서 봤을 때 왼쪽의 이무기 기둥돌은 돌기둥 아랫부분과 윗부분이 부러진 것을 붙인 흔적이 보이며, 오른쪽의 이무기 기둥돌도 돌기둥 아랫부분이 부러진 것을 붙였다. 두 번의 홍수 피해를 당하면서 이무기 기둥돌이 부러진 것이며 보수 과정에서 방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1909년에 찍은 화홍문 사진, 동쪽의 이무기 기둥돌은 온전한 모습으로 성 밖을 향하고 있다.

1909년에 찍은 화홍문 사진, 동쪽의 이무기 기둥돌은 온전한 모습으로 성 밖을 향하고 있다.

 
화성성역의궤 도설 속 이무기 기둥돌에 앉아있는 이무기는 몸의 방향과 머리 방향이 90도 틀어져있다. 화홍문에 있는 이무기 돌조각도 도설의 모양과 같다. 도설과 사진속의 이무기 기둥돌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봤을 때 원래 이무기 몸의 방향은 성 밖을 향한 것이고 얼굴은 서로 마주본 것으로 보인다. 다리 동쪽에 있는 이무기는 서쪽을 바라보고 다리 서쪽에 있는 이무기는 동쪽을 바라본 것이다.

현재 화홍문에 있는 서쪽의 이무기 기둥돌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90도, 동쪽의 이무기 기둥돌을 시계방향으로 90도 틀면 원래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한 쌍의 이무기는 몸은 성 밖을 향하고 있지만 서로 마주보면서 다리에 접근하는 수마의 기세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수원화성 화홍문, 이무기 기둥돌, 이무기,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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