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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수원연극 전성기 주역 김성열 떠났다
언론인 김우영
2019-09-27 19:07:46최종 업데이트 : 2019-09-27 19:08:10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수원연극 전성기 주역 김성열 떠났다

[공감칼럼] 수원연극 전성기 주역 김성열 떠났다

2019년 9월 24일 연극쟁이 김성열이 세상을 떠났다. 1954년생이니까, 올해 우리나이로 66세다.

그날 밤 부음을 받고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뭐가 좋은 지 싱긋이 웃고 있는 사진속의 그 모습. 이 사진은 그와 동갑내기인 사진가 이용창 씨가 찍어 놓았던 것을 내가 찾아 내 그의 후배 표수훈에게 보내준 것이다.

장례식장에선 술이 당기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나와 일행과 헤어져 혼자가 된 뒤에야 비로소 술 생각이 났다. 단골집인 행궁동 카페 다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맥주 두 잔을 시켰다. 내 앞에 한잔, 건너편에 한 잔 놓았다.

"자 한잔 하시오" 잔을 부딪치고 벌컥벌컥 마셨다. 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앞자리에 앉은 그도 그리 갈증을 해소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그제야 솟기 시작했다. 어허이, 김성열의 한생애가 이렇게 끝났구나. 그와 함께 했던 일들은 이제 진정 영원한 추억이 되고 말았구나.
26일 화서문에서 열린 연극인 김성열 노제에서 잔을 올리는 공동장례위원장들. 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26일 화서문에서 열린 연극인 김성열 노제에서 잔을 올리는 공동장례위원장들. 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김성렬은 수원연극계의 대들보였다. 그의 전성기가 바로 수원연극의 전성기였다. 지금은 '수원연극축제'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는 '수원화성국제연극제'를 창설한 인물이다. 김성열을 비롯한 극단 성 단원들이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했고 김성열의 술친구인 나와 이용창, 원치성 등도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수원화성국제연극제는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을 기념해 시작됐다. 처음엔 극단 성의 기획으로 개최됐다.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연극제로 성장시키겠다는 의욕으로 수원화성문화재단(초대 이사장 김동휘)을 설립하기도 했다. 김성열은 중심인물이었다.

첫 행사 반응은 뜨거웠다. 참가한 외국 극단은 중국 길림성 경극단, 미국 오하마매직시어터, 일본 신주쿠양산박, 러시아 유고자빠제 등이, 한국에서는 극단 성이 참가했다. 관객과 언론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특히 한겨레신문 이봉수 논설위원은 '수원성에 살고 싶다'라는 장문의 칼럼을 통해 이 행사를 극찬했다. 조선일보도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 못지않은 '옛날과 오늘이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뤘다'면서 공연장 분위기를 상세하게 전했다.

나는 1996년 제1회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행사를 지켜봤다. 초창기엔 관객의 입장이 아니라 극단 성 김성열 대표 등과 함께 집행위원으로서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했으며 때로는 외국공연단을 접대하는 일들을 하기도 했다. 2회 행사는 화홍문을 배경으로 수원천에서 열렸는데 세계적인 방송 CNN 뉴스를 통해 전 세계로 전해지기도 했다. 첫날 공연이 끝나자마자 폭우가 내려 무대와 객석이 떠내려갔다. 이것들이 화홍문을 막아버리면 유실될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를 치우기 위해 국내외 배우들과 함께 거센 물살에 뛰어 들어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1997년에는 독립투사 임면수 선생 손자 임병무, 극단 성 대표 김성열, 시조시인 정수자 등과 함께 정신대 할머니를 돕기 위한 문화예술행사 '정신대 아픔 나누기'를 개최한 적이 있다. 경비를 제외하고 남은 200여만 원을 수원시에 기탁했고 수원시는 당시 심재덕 시장이 안점순 할머니를 초청해 직접 전달했다.

수원화성축성 200주년 때 나와 함께 장안문 안에서 시 낭독회를 개최했던 기억도 또렷하다. 연극과 음악, 무용, 마임, 행위예술 등이 함께 한 수원 최초의 복합 시문학축제였는데 아직도 그때 행사가 생각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김성열에 대한 기억은 끝이 없다. 20대 때 만났지만 서로 큰 관심이 없었다가 내가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 다시 만난 후 막역한 사이가 됐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일어난 많은 일을 지켜봤다. 거의 매일 만나 술을 마시고 일을 만들었다.
 1999년 12월 3일 극단성 창립 17주년 공연에 함께 한 (사)화성연구회 회원들. 오른쪽으로부터 네번째가 고 김성열. 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1999년 12월 3일 극단성 창립 17주년 공연에 함께 한 (사)화성연구회 회원들. 오른쪽으로부터 네번째가 고 김성열. 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때로는 티격태격 다투기도 했다. 그러나 뭐, 거의 하루 이틀 만에 풀어지곤 했다. 그런데 이번은 좀 길었다. 무려 10여년 넘게 술자리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에 들은 소식이 암 투병 중이라는 것이었고 며칠이 지나자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몇몇이 문병을 가려고 날을 잡아 놓았지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죽음을 앞둔 그의 마지막 초췌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와 함께 했던 빛나는 날들만 간직하고 싶었다.

허어,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26일 그와 우리가 만들었던 첫 번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장소인 화서문에서의 노제를 끝으로 그의 유골조차도 수원 땅을 떠났다. 부디 잘 가시게. 그리고 다시 오시게.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공감칼럼, 김우영, 김성렬, 수원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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